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르키 Apr 26. 2024

구순의 화가, 마흔의 바이올리니스트

글쓰기 모임 회원들과 김윤신 화가에 관해 얘기했다.

이번주 초는 바빴지만 흥미롭게 보냈다. 


월요일엔 삼청동에서 글쓰기 모임이 있었다. 웬일로 황사가 없었다. 그저 한없이, 네댓 시간이라도 걷고만  싶은 완벽한 날씨였다. 나는 정릉에서 162번 버스를 타고 안국역에서 내렸다. 공예박물관 앞과 송현길이 탁 트여 있었다. 작년까지도 송현길은 높은 담으로 둘러싸인 비밀스러운 공간이었다. 그래서 (어느덧 십수 년 전인) 대학생 땐 그 담 너머에 교도소(!)가 있다고도 믿었었다. 지금 그 자리에는 널따란 잔디밭과 산책로가 만들어졌다. 여하튼 그 뒤론 현대미술관과 경복궁이 이어져 있고, '여기가 서울이구나' 싶은 풍경이 쭉. 날이 맑아, 경복궁 뒤로 단정한 병풍처럼 자리 잡은 산의 바위 모양까지 선명했다. 나는 산 이름이 자주 궁금하다. 지도 앱을 켜고 보니 저 산은 아마도 '백악산'인 것 같다. 



낮 11시, 약속 장소는 정독도서관 근처의 <퀸스 베이커리>였다.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2층 테라스가 보이는 창가에 앉았다. 야외 테라스에서 손만 뻗으면 닿을 초록색 나무들이 보였다. 아름다운 풍경에 살짝 미간이 찡그려졌다. '오늘은 모임을 어서 마무리하고 일을 해야지.' 사실 이날은 내가 요즘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업체의 기사 마감을 하는 날이었다. 그런데 내가 글쓰기 모임 날짜를 그만 다른 날짜로 착각하고 말았다. 머릿속은 마감으로 복잡해졌다. 전, 은유 작가의 북토크에서 들은 말이 있었다. "저는 마감은 무조건 일주일 전에 끝내요." 와우, 어떻게 그럴 있지! 그의 준비성과 달성력이 대단하다. 나는 보통 마감에 임박해서야 허겁지겁... 미리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주 마감일에 허덕인다. 


곧이어 루씨 님과 누런콩 님도 도착했다. 루씨 님은 요즘 국제갤러리에서 전시한다는 김윤신 화가에 관해 이야기했다. 화가는 요즘 '90세의 전기톱 조각화가'로 불리며, 베니스 비엔날레에 초청받고 세계에 이름을 알리고 있다. 스스로 "이런 순간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라고 말할 정도다. 기대와 욕심을 다 내려놓았을 때 맞닥뜨렸을 놀라운 순간. 하지만 진짜로 아무런 기대가 없었다면 그런 순간을 만날 수 있었을까? 나는 아직 모르는 게 많다. 그리고 구순의 나이가 가늠이 안되어 눈이 휘둥그레졌다. 동시에 할머니가 된 나를 상상해 본다. 젊은 시절에 좋아했거나 신나게 누볐던 장소를 다시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그 느낌이 혹시라도 아쉽거나 슬프거나 비참할까 봐. 나는 아직 철이 없는지, 애수보다는 명랑한 분위기가 좋다. 


루씨 님이 말했다. "김윤신 화가는 90살에 베니스 비엔날레에 초청받았어요. 전기톱으로 나무를 조각해요. 상명대에서 교수로 일하다가 아르헨티나를 여행했고, 나무가 많다는 게 좋아 아르헨티나에서 40년을 살았대요. 다신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죠." 


나는 윤소영 바이올리니스트 얘기를 꺼냈다. 그녀의 인스타를 팔로우하고 있는데, 얼마 전 도쿄의 어떤 콩쿠르에서 우승했단 소식이 올라왔다. 사실 윤소영은 심사를 보면 봤지 콩쿠르 참가자로는 나가지 않는 경력과 연차가 쌓인 연주자다. "나이제한이 없다는 말에 심장이 뛰었다." 그리고 39살에 콩쿠르에 나가서 우승했다. 내가 피아노를 다시 배우게 된 계기는 그 인스타 게시물을 본 다음이었다. 


재밌게 산다는 건 뭘까? 어떻게든 누가 뭐래도 자기가 끌리는 대로 사는 것 같다. 하지만 끌린다는 것은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책임지지 못할 일을 마구 벌리는 게 아니다. 나무가 많아 좋아서 교수도 그만두고 아르헨티나에서 40년 살았다는 말이 내게 어떤 새로운 에너지를 주는 것 같았다. 


지금까진 머리로 생각하고 결정하려 했다. 해야 하니까, 해야만 하니까, 남들도 그렇게 하니까 한다는 생각으로. 하지만 그게 정말 차가운 머리와 이성으로 내린 결정이었을까? '해야 하니까, 남들도 그렇게 하니까'는 이성적인 생각이 아니다. 자기 머리로 한 치도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으려는 수동적인 태도,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폐쇄적인 태도일 뿐이다. 나는 무엇이든 마음이 끌리는 것을 배우고 싶고, 내가 필요한 곳에서 기여하며 일하고 싶다. 강해지고 싶고, 꾸준히 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연휴 마지막 날, 할머니댁을 그리워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