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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르키 Feb 13. 2024

연휴 마지막 날, 할머니댁을 그리워하다

이유식을 만들고, 일 하나를 끝내고, 할머니와 통화했다. 

오늘은 아침 6시쯤에 눈이 떠졌다. 내일까지 마감하는 기사가 있었는데 오늘까지 완성해야 했다. 설 연휴의 마지막 날이라 남편이 연두를 봐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간밤에 일한답시고 거실 바닥에 누워서 엎드려서 노트북을 하다가 역시나 잠들어버렸다. 에에잇. 


어쨌거나 잘 잤다. 일어난 김에 이유식을 미리 준비했다. 식탁에 앉아, 냉동해 둔 고기 2조각 (20g)을 썰었다. 마침 이유식에 얹어줄 채소가 모두 떨어진 상태였다. 냉장고에서 각종 채소를 꺼냈다. 새송이버섯, 브로콜리, 콩나물, 남은 방울무 1개. 베란다에 보관해 놓았던 흙당근도 가져왔다. 식초물에 담가 세척하고, 찜기에 다 올렸다. 20분쯤 쪘다. 핑거푸드로 주려고 브로콜리와 당근은 집어먹기 좋은 크기로 썰었다. 


다행히도 코로나 이후 연두는 입맛을 되찾았다. 지난 이틀 동안은 연두가 좋아하는 바나나와 치즈를 죽에 섞어줬더니 맛있게 잘 먹었다. 아침에 일어난 남편이 연두에게 이유식을 먹였다. 오늘 아침엔 갓 찐 채소를 올려줘서 그런가, 바나나와 치즈 없이도 싹싹 비웠다. 역시 엄마가 갓 쪄준 게 따끈따끈 맛있을 거다. 연두는 날 닮았는지 브로콜리도 좋아한다. 핑거푸드도 좋아한다. 아침엔 몸을 들썩이면서 신나게 당근과 브로콜리를 집어먹었다. 집중해서 당근을 집어 입안으로 가져가는 모습이 귀여웠다. 나날이 볼이 빵실 빵실해지고 있어서 흐뭇하다. 


남편에게 양해를 구하고, 노트북을 챙겨 오전 10시쯤 밖으로 나왔다. 오늘은 기사를 마무리해야 한다. 지난 추석에는 신문에 책 리뷰 기사를 쓰기 위해 엄마아빠가 며칠 동안 연두를 돌봐주셨다... 이번 설에는 남편의 손을 빌렸다. 미리 해뒀으면 좋았겠지만 그게 잘 안 된다. 여하튼 일을 이어가겠다는 나의 의지로 말미암아 일어난 일. '해내자, 몇 시간 뒤에는 어떻게든 해낼 것이다.'라고 나를 다독이며, 이사 오기 전에 살았던 동네에 있는 스타벅스로 향했다. 질리도록 자주 드나들었던 카페였다. 


망고바나나를 마시고, 토마토 수프를 먹고, 알밤도 한 봉지 먹고... 다 쓰고 나니 오후 5시였다. 5,000자 이상 쓸 것과, 설득력 있는 근거 자료를 보충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추가로 자료를 조사하는 데 시간이 많이 들어갔다. 다 쓰고 보니 분량도 A4로 5장쯤은 넘는 것 같았다. 사진 빼고 텍스트로만 이뤄졌는데 말이다. 와우. 어느 독자가 이 텍스트의 늪에 빠져줄 것인가. 여하튼 넘겼다. 이후의 진행 사항이나 게재 여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 


아까 카페에 앉아 있는데 수문할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가 안 왔길래 궁금해서 걸었지!" 새해와 명절마다 나와 동생은 할머니께 전화를 드린다. 이번에도 내가 먼저 새해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코로나에 걸려 골골댔고, 연휴 마지막 날엔 미뤄놨던 걸 한다며 스퍼트를 올리다가 안부 전화 드리는 것을 놓치고 말았다. 다행히 동생이 먼저 전화를 드려줬다. 매번 손녀인 내 몫까지 쌀과 해산물을 챙겨주시는 할머니, 고맙습니다... 이번에 보내주셨던 햅쌀엔 찹쌀까지 섞여 있어 윤기가 흐르고 밥을 지으면 쫀득쫀득하다. 연두도 할머니의 쌀로 이유식을 먹고 있다. 할머니는 내게 독감을 조심해야 한다고 하셨고, 연휴 기간에 컨디션이 떨어진 엄마를 걱정하셨다. 


한편 나는 수문할머니댁 동네의 아름다운 풍경이 눈앞이 선했다. 할머니댁 동네는 정겹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정겹다기보다는 아름답다. 5분만 걸으면 바다가 나온다. 밀물 때는 해수욕장이고, 썰물 때면 과거에 아주 비옥했던 갯벌이 모습을 드러낸다. 할머니댁 옥상에서 보면 부드러운 남해가 펼쳐져 있고, 옥상에 말려놓은 생선에는 짭조름한 바닷바람이 알맞게 스며든다. 몇 해 전 여름, 나는 할머니댁 옥상 평상에 누워 별을 보다가 잠들어 새벽에 깬 적이 있다. (바로 그날, 마을회관에서 모기를 잡기 위해 곳곳에 방역차로 하얀 안개를 만들어내서 가능한 일이었다. 안 그랬으면 꼼짝없이 모기밥이 됐을 텐데.) 할머니댁 바로 옆에는 작은 다리가 있는데, 그 아래로는 바다로 곧장 이어지는 작은 천이 흐른다. 썰물이 되면 밀물 땐 보이지 않았던 작은 모래길이 나타난다. 물이 괴어 있는 그곳에 새들이 날아와 쉰다. 도요새려나? 수십 마리 새들이 옹기종기 모여, 햇볕에 반사돼 번쩍이는 갯벌 위에서 쉬는 걸 보면 이 세상이 참 아름다운 곳이란 생각이 든다. 


오소할머니도 계셨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아직도 할머니댁의 감나무와 마당이 떠오른다. 마당에서 감을 따서 먹을 수 있었는데, 번개를 두 번인가 맞은 뒤로는 감이 거의 열리지 않았다. 어쨌든 번개를 맞을 만큼 키가 큰 나무였다. 아주 어릴 적에는 그 마당에서 사촌언니 오빠들이 깡통에 불쏘시개를 넣어 깡통을 신나게 돌려가며 불놀이를 보여줬다. 나는 언니 오빠들과 포대자루를 하나씩 들고, 마당 앞에 보이는 선산에 올라가 썰매 타듯 내려온 적도 있었다. 어렸던 내 동생은 사촌형들에게 업혀서 놀 수 있는 명절을 손꼽아 기다렸다. 어느 해에는 마당에 가마솥을 놓고 큰아버지들이 불을 피우며 무언가를 끓였다. 보통 큰아버지들은 큰방에 말없이 앉아 있었고, 어린이들은 사랑방에 모여 있었다. 막내인 우리 아빠는 큰아버지들 사이에 앉아 있다가 어느새 어린이들 곁으로 와서 같이 놀았던 것 같다. 엄마와 큰어머니들은 할머니와 함께 부엌에 둘러앉아서 나물을 손질하거나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취업을 했던 10년 전 겨울, 설에 오소할머니댁에 갔다. 여느 해처럼 뜨끈뜨끈한 안방의 아랫목에서 다 같이 모여 잤다. 방바닥은  등이 덴 나머지 가려울 만큼 뜨거웠다. 밤에 할머니가 내 손을 잡으시면서, "네가 공부하고 취업해서 기쁘다."라고 말해주신 게 기억난다. 그 말씀에서 어쩐지 뿌듯함이 느껴졌다. 지금의 나였다면, 오소할머니께도 더 잘해드릴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아쉬움이 든다. 당시 20대였던 나는 갓 취업하고 돈을 벌고 여행하고 놀러 다니기에 바빴기 때문이다. 세상의 재밌는 것들에 눈이 휘둥그레져 여기저기 쏘다니느라 가족의 안부를 물을 틈도 없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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