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좋아하지 않는 것을 좋아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저는 이제 무언가를 좋아할 기력이 없어요. 그냥 하면 안 돼요?"
책 읽기 모임에서 만난 어느 40대 여성이 말했다. 좋아하기까지 해야 하나요? 그 말이 머리에 맴돌았다. 그 여성은 암 수술을 마치고 회복기를 보내는 중이다. 아프고 나니 주위 사람들이 무척이나 친절해져서 부담스럽다고 했다.
"다들 제게 말해요. 좋아하는 것만 하면서 이기적으로 살라고요. 사실 저는 아프기 전에도 좋아하는 것 하면서 살았거든요. 그런데 앞으로도 좋아하는 것만 하면서 살라고요? 그러고 싶진 않아요. 게다가 뭘 좋아하는지 생각하는 것도 피곤해요."
좋아하는 마음은 강요할 수 없다. 돈 주고도 살 수 없다. 그러나 언제부턴가는 ‘좋아할 줄 아는 능력’이 스펙이 되어버렸다.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말함으로써, 나의 취향과 탐구 능력을 증명해야 할 것만 같다.
좋아하는 게 뭐야? 그걸 어디까지 좋아해 봤어? 얼마만큼 지독하게 덕질해 봤어?
나도 그런 말이 사실은 부담스러웠다.
좋아서 한 것도 있다. 엄청 좋아하진 않았지만 할만해서 그냥 했던 일도 있다. 회사에서 원치 않는 일을 떠맡게 되었을 때 그 일을 좋아해 보려고 애썼지만, 그것만큼은 쉽지가 않았다. '좋아할 필요까진 없지. 그냥 하는 거야. 해보는 거야.' 그건 마음가짐이 오히려 내게 위안이 됐다. 돈을 벌기 위해, 공동체에 적응하기 위해, 썩 좋아하지도 않는 것을 좋아하는 척 애써야 할 때가 훨씬 비참했다.
무언가를 좋아해야만 한다거나, 인생의 목표를 어서 하나로 설정하라고 스스로 채근하지 않으려 한다. 내 마음이 어디에 자연스럽게 이끌리는지 지켜볼 시간을 나 자신에게 주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