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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우주가 바라는 나의 행복

나는 엄마이기 전에 행복한 한 사람이 되고 싶다.

by 노르키

밤 열한 시, 간신히 재워놓은 아이가 침대에서 잠꼬대를 하듯이 바스락거리며 움직인다. 나는 그 옆에 누워 쉬, 쉬, 소리를 낸다. 아이가 깨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요즘 아이는 손가락 두 개를 펼쳐 보이면서 "세 살이에요."라고 말할 정도로 자랐다. 침대 옆 바닥에 깔아 둔 이불에는 둘째가 곤히 잠들어있다. 태어난 지 다섯 달이 됐다. 밤 수유를 막 마쳤으니 아마도 새벽에 한 번 더 깨어나 목을 축일 것이다. 나는 잠시 눈을 감고 갓난아기 냄새를 떠올린다. 꼭 껴안을 때 아기의 정수리와 귀에서 풍겨 나오는 고소하고 향긋한 냄새.


지금부터 새벽 첫 수유 전까지는 나만의 시간이다. 나는 침대에 누워 생각한다. '가장 행복했을 때는 언제였지?' 이 아이들을 만난 것만큼 내 인생에 벅찬 일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나 자신이 내 삶의 중심에서 밀려난 적도 없다. 내가 사라지고 있다. 내 목소리는 어디에도 들리지 않는다. 엄마에겐 힘들다고 하소연하고 남편에겐 잔소리를 한다. 하지만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분명히 따로 있다.


여기 사람이 있어요. 나이, 직업, 졸업한 학교, 엄마라는 역할만으로는 절대로 온전하게 설명할 수 없는, 꿈 많은 사람, 이 세상에 딱 하나뿐인 한 사람이 여기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간절한 외침은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혀 다시 나에게만 돌아온다.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일까? 이런 이야기는 흥미롭지 못해서일까? 내 목소리는 어디에도 가닿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한 달 전, 거리에 갈색 업라이트 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낡았지만 조율이 됐는지 치기엔 무리가 없었다. 나는 피아노 앞에 앉아서 출산 후에 틈틈이 내가 가장 열심히 연습해 온 곡을 쳤다. 쇼팽 발라드 1번 G단조였다. 세 살배기 첫째 아이가 내 옆에 찰싹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그 순간에 나는 오로지 나만을 위해 연주했다. 아이가 옆에서 같이 팡팡 피아노 건반을 두들겨도 괜찮았다. 나는 화려한 왈츠풍의 마지막 코다를 향해 갔다. 십분 넘게 걸리는 그 곡의 마지막 건반을 누른 다음 페달에서 발을 뗐을 때, 내 뒤에 일고여덟 명이 박수를 쳤다. 그저 내게 몰두해 나 자신만을 위해 쳤는데도,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십 분이나 그 신비로운 순간을 함께 공유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언제부턴가 내 음악 소리가 들을만해졌다는 사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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