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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경준 May 01. 2016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올 1월부터 홍대 앞 연남동에서 클러스터(Kluster)라는 조그만 코워킹 스페이스를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직도 여기저기 뚝딱뚝딱하면서 그 자체로 스타트업스럽게 운영하고 있죠. 크지 않은 공간에 네 팀이 입주해 좋은 일이 생기면 함께 축하해주고 힘든 일이 있으면 함께 위로하면서 아기자기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입주팀 중 한 팀이 이번 주에 첫 매출이 생겼습니다. 지난 3월에 법인을 설립했으니 두 달만에 매출이 생긴 것입니다. 스타트업이라면 다들 아시겠지만 상당히 빠른 매출 실현이고 게다가 의미있는 규모였으니 더할 나위 없었죠. 이 스타트업의 창업자를 만난 건 지난 해 늦가을이었습니다. 스타트업 모임에서 처음 만나게 됐고 그 후 저에게 개인적으로 연락을 해와서 여러 번 만나게 됐습니다. 이 친구는 재밌는 이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은행에 취업을 했는데 어떤 계기가 있어서 직장을 그만두고 신학교를 갔고 대학원까지 6년간 신학을 공부하고 교회 전도사님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누군가를 축하해주기 위해 꽃을 사게 됐는데 꽃을 사는 경험이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꽃을 사는 사람들을 좀 더 행복하게 해줄 수 없을까를 고민하다가 페이스북에 페이지를 하나 만들게 됩니다. 컨텐츠를 만들어올렸고 팔로워가 어느 정도 모이자 가끔 꽃 판매 이벤트를 열었지만 돈을 벌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다 저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두 번, 세 번 만나면서 진정성과 순수함은 금새 보였습니다. 꽃에 대한 애정도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비즈니스 모델은 사실상 없었고 돈을 버는 방법도 잘 몰랐습니다. 무엇보다 본인이 하고자 하는 분야의 핵심적인 문제가 무엇인지를 몰랐습니다. 팀도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인큐베이터의 역할은 이 시점에서 중요하게 됩니다. 이 친구가 가진 몇 개의 장점과 많은 단점이 있는 상태에서 저는 이 친구가 가지고 있는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애정과 근성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알고 있는 이 분야의 문제점에 대해 알려주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들을 함께 나눴습니다. 그런 미팅을 거듭하면서 이 친구는 꽃을 재배하는 농가를 찾아 전국을 다니고 꽃 도매상, 소매상, 관련 기관의 담당자들을 부지런히 만나면서 함께 논의한 아이디어의 타당성을 하나하나 검증해갔습니다. 약 두 달 간 논의와 준비를 거쳐 사업모델을 확정해 지난 3월 법인을 설립했고 그로부터 또 두 달이 지나 첫 매출이 발생한 것입니다. 또 다른 좋은 거래처로부터 두 번째 매출이 발생했다는 기쁜 소식이 오늘 들려왔습니다.


인큐베이팅(incubating)의 원래 의미는 '알을 품는 것'입니다. 어미새는 정상적인 부화를 위해 알을 품고 우리들의 어머니 역시 정상적인 출산을 위해 뱃속에 열 달 동안 아이를 품습니다. 그러다 어떤 이유로 필요한 시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일찍 세상에 나오게 됐을 때 그 부족한 시간을 엄마 뱃속과 비슷한 환경을 갖춘 인큐베이터라는 기계 안에서 채우게 됩니다. 과거에 조산한 아이는 죽을 확률이 높았지만 이제는 임신 5개월만에 태어난 아이도 인큐베이터에서 살릴 수 있는 수준까지 기술이 발전했습니다. 인큐베이터는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일까요?


정상적으로 태어난 아이는 몸에 모든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합니다. 하지만 일찍 태어난 아이는 몸의 기관 중 일부가 아직 발달이 덜 된 상태입니다. 예를 들면 뇌, 심장, 폐 같은 기관이 아직 제 기능을 못하는 상태에서 세상에 나오게 된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 있는 아이를 인공 보육함으로써 각 기관이 정상적으로 기능을 하는 수준까지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 바로 인큐베이터의 역할입니다. 갓 태어난 아이를 케어하는데 사용되는 단어를 스타트업에 적용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같은 스타트업이라도 팀이 다 갖춰져있고, 아이템도 개발이 완료되었고, 자본도 이미 갖춘 스타트업이라면 인큐베이팅이 필요없습니다. 그런 팀들은 외부의 도움없이 자체적으로 운영되거나 성장할 수 있으며 일부 팀들에게만 엑셀러레이팅이 필요할 뿐입니다. 기업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갖춰야할 역할과 기능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다 갖춰지지 않았을 때 부족한 기능을 보충해주거나 정상적인 수준에 도달하도록 돕는 것을 스타트업 인큐베이팅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팀웍이 강조되는 요즘 트렌드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사업 성공에 필요한 팀을 구성하고 팀 워킹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상대적으로 엑셀러레이팅은 이미 필요한 모든 역할과 기능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장하지 못하는 팀을 성장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마치 느린 속도로 가고 있는 차에 엑셀을 밟아주듯이 말이죠.


모든 스타트업에게 동일한 인큐베이팅 방식을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현재 준비된 정도와 처한 상황이 다르고 하고자 하는 분야에 따라 필요한 팀 구성이 다르며 일을 하는 방식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스타트업은 세 명만으로도 팀을 안정화시킬 수 있고 어떤 사업모델은 최소한 스무 명이 있어야만 성과를 도출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인큐베이터는 획일적인 기준과 방법만을 고집해서는 안 되며 각각의 팀마다 최적의 프로그램을 설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큐베이팅은 현장 경험이 많은 베테랑들의 영역입니다. 창업을 직접 해서 엑싯을 했거나 혹은 망해봤거나 사업을 A부터 Z까지 수행해본 경험이 풍부하거나 벤처캐피탈리스트를 최소 10년은 해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야만 스타트업을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5년여 사이에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엑셀러레이팅을 하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대한민국 스타트업 생태계에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스타트업 생태계를 활성화시키는 것은 벤처캐피털 이전에 인큐베이터, 엑셀러레이터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숫자를 최대치로 잡아도 그런 분들이 20여 명에 불과할 겁니다. 매년 생겨나는 수 천개의 스타트업에게 도움을 줄 수 있으려면 지금보다 그 숫자가 열 배는 많아져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대한민국 스타트업(벤처) 생태계 조성이 시작된 지 30년이 조금 지난 지금, 대한민국 스타트업 생태계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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