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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경준 Jan 22. 2017

VC에게 실적 전망을 제시하는 노하우

2017년은 국내 스타트업에게 혹한기가 될 걸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는 단 하나의 이유는 경기 침체. 잠재 소비자의 주머니가 여유 있어야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에 눈이 가고 손이 가는데 대한민국 국민들의 주머니가 너무 얇아졌습니다. 그 이유는 누가 보나 정부의 리더십 부재. 대한민국 정책의 특성상 경기 침체기에는 정부의 리더십이 중요한데 더 늘어난 세금은 정작 국민을 위해서 쓰이지 않고 있고, 경기 부양을 위한 혁신적인 정책은 눈을 씻고 봐도 보이지 않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상황에서 스타트업의 구원자는 정부입니다. 스타트업을 위한 정책성 지원 자금과 펀드가 혹한기의 스타트업에게 그나마 바람막이의 역할을 해주고 있으니까요. 정부의 금전적 지원을 전혀 받지 않는 실리콘밸리가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아마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날 텐데 그나마 국내 스타트업은 복 받은 상황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 경기가 좋든 나쁘든 돈 없이 꿈과 기술만으로 시작한 스타트업이 의지할 수 있는 자금줄은 역시나 투자입니다. 여러 번 얘기한 바 있지만, 자금 조달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매출을 일으켜서 스스로 현금흐름을 창출하는 것입니다. 2순위가 투자유치이고 마지막이 대출입니다. 상환 가능한 현금흐름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면 대출은 받아서는 안 된다고 여러 번 강조해 왔습니다. 투자와 대출이 매출과 다른 점은 매출이 현재의 현금흐름에 의존하는 것이라면 투자와 대출은 미래의 현금흐름에 의존한다는 것입니다. 투자는 미래의  현금흐름 창출 가능성을 보고 이루어집니다. 담보 대출과 달리 스타트업에게 주어지는 신용 대출 역시 미래의 현금흐름 창출 가능성을 담보로 합니다. 따라서 미래의 현금흐름 창출 가능성이 없다면 투자나 대출은 아주 빠른 속도로 감당할 수 없는 빚으로 돌아옵니다.  


개인적으로 자금조달의 세 가지 방법 중 어느 정도의 매출, 즉 현금흐름을 스스로 창출하고 있는 스타트업이 투자에 접근할 것을 추천합니다. 아무런 매출 없이 사업계획만으로 투자를 받는 기업도 종종 있긴 한데 그건 어디까지나 선의의 투자자를 만났기 때문이라고 저는 단언할 수 있습니다. 특히 전문적인 VC에게 '숫자'를 보여주지 않고서 투자를 받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처음에 제시하지 않더라도 투자를 유치하는 과정에서는 반드시 실적 전망치를 제시하거나 만들어내야 합니다. VC의 투자 프로세스상 투자심사보고서를 작성하게 되어 있고 어느 VC의 투자심사보고서든 반드시 실적 전망치를 포함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실적 전망은 어떻게 제시하면 될까요?


실적 전망치를 작성하는 기준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 소설을 쓰지 마라.

둘, 애써 겸손하지 마라. 


소설을 쓰지 마라


우주를 정복하겠다는 원대한 구호만으로 투자를 받은 회사는 전세계 어디에도 없을 겁니다. 국내에서 VC는 금융의 영역이기 때문에 통상 향후 3년간의 추정 실적을 요구합니다. 첫 해에는 10억을 하고, 두 번째 해에는 30억을 하고, 세 번째 해에는 100억을 하겠다 정도로 되지 않고 첫 해에 10억을 하면 그 근거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제시할 것을 요구합니다. 일단 이 단계까지 올 수 있는 스타트업도 많지 않겠지만 사업을 처음 해보는 스타트업들은 대개 사업계획을 수립하는 방법 자체를 잘 모르기 때문에 실적 전망을 잡는 건 더더욱 어려워합니다. 하지만 굳이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VC가 10억 매출의 근거로 요구하는 수준은 10억을 break down해서 어떤 거래처에 각각 얼마의 매출을 올릴 것이고 그 매출은 가격 x 공급 수량일 테니 그 수치를 엑셀로 작성해달라는 것입니다. 물론 아직 발생하지 않은 매출이고 시뮬레이션일 뿐이지만 이 테이블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스타트업은 자신의 사업모델과 매출에 대해 학습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머리는 아프겠지만 큰 도움이 됩니다. 실력이 좋은 기업일수록 시뮬레이션(실적 전망) 값과 달성한 값의 차이가 적게 됩니다. 


애써 겸손하지 마라


어차피 추정일 뿐이니 이왕이면 전망치를 높게 제시하자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건 바람직하지 않은 생각입니다. 만약 투자가 이루어진다면 1년이란 시간이 긴 것 같지만 제시한 실적을 검증받을 시기가 금새 돌아옵니다. 설령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접촉을 했던 VC가 여전히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해당 기업이 제시한 실적을 달성했는지 여부를 계속 모니터링합니다. 1년이 지난 뒤 어느 날 그 VC로부터 연락이 와서는 '올해 매출을 10억 하신다고 했었는데 실제로 달성했나요?' 이렇게 물어볼 때 '그게 말이죠...' 이렇게 얼버무리면 VC는 '역시. 그 때 투자 안 하기를 잘 했어.'라고 결론을 내릴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보수적으로 작성할 필요도 없습니다. 보수적으로 작성하지 말라는 의미는 달성 가능하다고 판단되는 매출이 20억인데 그걸 보수적으로 10억으로 제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실적 전망에는 분명히 실현 가능성이 담겨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자본시장에서 겸손은 미덕이 아닙니다. 회사가 제시한 실적 전망치를 보는 VC의 시각은 이렇습니다. 회사가 10억 매출을 하겠다고 제시했을 때 그걸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는 VC는 없습니다. 투자심사보고서에도 '회사 제시 실적'과 '자체 추정 실적'을 비교해서 테이블을 작성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대개 회사가 매출 10억을 제시했으면 '아, 회사가 열심히 하면 제시한 실적의 80%는 달성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합니다. 즉, 회사가 제시한 실적에서 20%를 디스카운트한 수치를 실현 가능한 수치로 판단한다는 뜻입니다. 20억 매출이 가능한데 보수적으로 10억 매출을 제시하면 오히려 회사의 밸류에이션이 깍입니다. 또 보수적으로 10억을 제시하면 VC는 그걸 다시 20% 할인해서 회사가 8억 정도 매출이 가능할 걸로 봅니다. 정리해 보면, VC는 회사가 제시한 추정치에서 20%를 할인하는 습성이 있으므로 이에 맞게 수치를 제시하면 되지 너무 겸손하게 혹은 너무 허황되게 제시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지금까지 지켜본 기업 중 실적 전망치를 탁월하게 제시한 두 개의 사례가 기억납니다. 2015년에 투자를 유치한 G사는 투자자에게 월 단위의 매출 계획을 제시했고 2017년 현재까지 매월 목표 대비 100% 이상을 달성하면서 투자자를 기쁘게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는 이런 경우가 드뭅니다. 이 회사가 100% 이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은 달성 가능한 수치를 제시하고 실제로는 추가 매출을 위해서 더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회사는 투자자들의 절대 신뢰를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2016년 투자유치에 성공한 T사는 제시한 실적의 90% 수준을 달성했습니다. 그리고 제시한 실적 중 어떤 부분의 매출이 왜 적게 나왔는지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했고 그 매출이 2017년에 어떻게 발생할 것인지 역시 구체적으로 제시했습니다. 그 결과 2017년 매출은 당초 제시한 것보다 훨씬 더 올라갈 것이라는 전망까지 제시하면서 투자자들의 기대감을 더하게 만들었습니다. 


실적 전망치를 작성하는 팁


실적 전망치 혹은 추정치를 작성하는 건 투자유치 목적이 아니라도 회사 경영계획을 수립하고 학습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연습을 해두면 좋습니다. 


1. 향후 3년간 매출 추정치를 작성한다. 

2. 각 연도별 매출 추정치를 월 단위로 쪼개서 작성한다. 

3. 월 단위 매출은 거래처별로 각 거래처별(잠재 거래처 포함) 매출 금액을 작성한다. 

4. 월 단위 거래처별 매출은 '공급단가 x 수량'까지 계산한다. 

5. 비고란에 각 매출의 달성 가능성을 %로 표시한다. 

6. 연간 단위로 충원 인력수를 작성한다. 


이 정도만 해두면 매출 이외에 비용 구조까지 대략 예상할 수 있게 됩니다. 특히 각 매출의 달성 가능성을 %로 표시하는 건 작은 차이처럼 보일지 몰라도 투자자가 볼 때는 '오, 이 친구들 일 좀 할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좋은 스킬입니다. 이 테이블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거의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자신이 얼마나 사업을 나이브하게 생각해왔는지 깨닫게 됩니다. 창업을 하기 전까지 사업은 꿈일 수 있지만 일단 창업을 하고 난 후에는 매일이 전투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 정도도 제시하지 못하는 스타트업에게 투자할 용감한 투자자는 많지 않습니다. 당장 매출이 아니라 사업 단계상 트래픽(traffic)에 집중해야 하는 스타트업도 예외는 아닙니다. 최대 3년간 트래픽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하도록 투자자가 시간을 줄 수는 있지만 그 시간이 지나면 그 때부터는 수익모델을 요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굳이 투자자가 요구하지 않더라도 당연히 매출을 어떻게 올릴 것인지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두지 않는다면 시간이 지났을 때 '남의 돈 가지고 놀다가 망한 놈들'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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