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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경준 Feb 27. 2017

정말 그래서 지구의 지배자가 되었다고?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작년부터 지지부진하게 읽던 책인데 지난 일주일 사이에 남은 2/3를 빠른 속도로 완독했다. 대개 이런 두꺼운, 연구서에 가까운 책을 읽으면 중간중간 인사이트를 많이 얻지만 전체적으로는 정리가 안 됐는데 독후감을 쓰는 게 정리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이 책은 20만 년 전에 호모 속에 속하는 여러 인종 중 하나로 등장한 사피엔스가 왜 지구를 지배하는 유일한 인종이 됐으며 지구의 독점적 지배 이후에 과연 어디까지 진화할 것인가를 다루고 있다. '왜?'에 대한 저자의 대답은 상상의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능력 때문이라는 것이고 '어디까지?'에 대한 대답은 자신의 종을 스스로 멸종시키는 단계까지 진화할 것이라는 것이다. 책의 대부분을 지난 7만년 간 사피엔스가 '어떻게' 발전하고 진화해 왔는지를 설명하고 결론부에 가서야 사피엔스는 '왜' 무엇을 위해 진화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유는 행복. 그러나 그 행복이란 주관적이거나 화학적인 이유만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것이라고만 설명하고 결론을 내리는 건 회피한다. 대신 죽음의 문제를 언급하면서 지금까지의 모든 사피엔스가 죽음에서만큼은 평등했는데 그 평등이 앞으로는 깨질 수 있으며 죽지 않는 특권을 획득하는 개체들이라도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생물학적 방법으로 ,혹은 사이보그화를 통해 ,혹은 완전히 비생물적인 방법을 통해 신의 영역까지 도달하고자 하는 사피엔스는 도대체 왜 그런 노력을 하는가? 저자는 이 문제에 대한 답도 역시 회피하면서 현재의 사피엔스를 막강한 능력을 가졌으나 무책임한, 스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존재로 규정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놀라운 통찰로 가득차 있으나 결론에 있어서는 방향성을 잃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미 멸종해 버린 네안데르탈인에 대해서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저자가 총망라한 사피엔스의 역사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역사다. 제국을 이룩한 왕들 중 상당수는 영생을 사모했으나 이루지 못했고 어느 누구도 죽음을 피해가지 못했고 두려움도 떨쳐버리지 못했다. 어쩌면 네안데르탈인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던 종족인지도 모른다. 살기 위해 몸부림쳤다면 그 중에 일부는 살아남았을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저자가 정리한 내용을 다른 각도로 설명하면, 사피엔스는 태어날 때부터 죽음을 두려워했고 죽지 않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한 인종이다. 그것이 사피엔스 진화의 방향이었다. 종교의 탄생은 그것이 동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지난 20만 년 혹은 7만 년간 영생을 이루어낼 기술을 지속적으로 축적해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렇게 찾아낸 방법이 결국 사피엔스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라니. 7만 년의 역사와 학문과 인생을 통달한 철학자 혹은 지도자가 나타난다면 영생하되 행복이 보장되지 않는 신의 길이 아니라 사피엔스로서의 존엄을 유지하면서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는 길로 인류의 방향을 전환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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