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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경준 Mar 05. 2017

유전자가 흘러갔다!

스반테 페보 <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

난해한 내용은 아니지만 유전자 분석에 대한 내용을 다루다 보니 읽기 어려웠다. 생물이 고등학교 때 제일 좋아했던 과목 중 하나였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이번 기회에 유전자 분석에 대한 기초라도 공부해야겠다. 


이 책은 연구서가 아니라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 분석 프로젝트를 담당한 학자로서 발견 과정을 자전적으로 서술한 논픽션이자 인간적인 관점에서 서술한 휴먼 드라마다. 그렇다 보니 전문적인 내용을 나름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노력했고 연구 세계에서도 피할 수 없는 경쟁 상황 등을 가감없이 서술하고 있다. 옮긴 이의 말대로 '일반인들이 쉽게 들여다볼 수 없는 내밀한 실험 풍경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는 것'이 이 책의 가장 인상적인 특징이라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읽는 내 입장에서는 과학적인 팩트 위주로 눈에 들어올 수 밖에 없었다. 


현생 인류와 다른 네안데르탈인의 뼈를 최초로 발굴한 시점이 지금으로부터 약 150년 전인 1856년이라는 건 신선했다. 이 책의 저자가 2014년에 이 뼈를 통해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으니까 무려 이 뼈를 다양한 연구자들이 150년 간이나 연구했다는 뜻이 된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내가 알고 있던 상식은 지금으로부터 3만 년 전 아프리카에 거주하던 호모 사피엔스가 유럽 쪽으로 이동을 시작하면서 네안데르탈인이 멸종했다는 것이었다. 이 책에 언급된 연구자들의 목표는 '네안데르탈인이 누구였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왜 3만 년 전에 사라졌는지, 현생인류와 유럽에서 수만 년 동안 공존하는 동안 그들과 어떻게 교류했는지, 그들이 친구였는지 적이었는지, 우리 조상이었는지 아니면 멸종한 사촌이었는지'를 밝히는 것이었다. 연구의 대상은 미토콘드리아 DNA(mtDNA)와 핵 게놈이었고 연구의 도구는 PCR(Polymerase Chain Reaction, 중합 효소 연쇄 반응, 다른 표현으로 핵산 증폭 검사)과 피로시퀀싱(Pyrosequencing) 같은 최첨단 분자생물학 도구였다 . 연구를 통해 확인된 놀라운 사실은 멸종한 것으로 알려진 네안데르탈인이 '완전히 멸종한 것이 아니라 DNA를 통해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계속 남아있다'는 것이다. 현대인에게 네안데르탈인의 피가 섞여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아프리카 외부 사람들의 DNA 가운데 5% 이하가 네안데르탈인에게서 왔다고 밝히고 있다. 네안데르탈인의 게놈 분석을 통해 획득한 지식을 통해 또 다른 멸종한 인류의 조상, 데니소바인의 실체도 확인하게 된다. 데니소바인 역시 네안데르탈인과 마찬가지로 현생 인류 안에 살아있었다. 


이 책은 저자 스반테 페보가 막스플랑크협회로부터 지원을 받아 세계 각지의 뛰어난 과학자 수십 명을 모아 만든 '네안데르탈인 게놈 프로젝트'의 연구 결과를 다루고 있다. 그는 DNA를 통해 진화를 연구하는 'DNA 고고학'의 선두 주자로 화석의 형태학적 분석이 아니라 분자생물학적 분석을 통해 인류의 기원을 연구해 왔다. 그가 DNA 분석을 통해 네안데르탈인의 피가 현대인에게 섞여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전까지 현생 인류의 진화와 관련해 학자들은 시간차를 두고 몇 가지 가설을 발전시켜 왔다. 1970년까지는 인류가 네안데르탈인 단계를 거쳐 현생인류로 진화했다는 생각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이 연속선 상에서 1984년 고생물학자 밀포드 울포프가 현생인류가 호모 에렉투스로부터 여러 대륙에서 독립적으로 진화했다는 '다지역 기원설'을 발표했다. 1987년 분자진화학자 앨런 윌슨은 '미토콘드리아 이브' 연구를 통해 현존하는 모든 인류는 약 20만 년 전에 동아프리카 사바나 지역에 살았던 한 여성에서 기원했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밝혀냈다. 이를 근거로 그는 현생인류가 약 10만 년 전에서 20만 년 전 사이에 아프리카에서 기원했고 유럽의 네안데르탈인 같은 고생인류들과 이종교배 없이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는 '아프리카 기원설'을 주창했다. 이 때부터 고생물학자, 고고학자, 진화학자, 유전학자들 사이에 인류의 기원을 둘러싼 치열한 공방이 시작되는데 이 책의 주인공이 이 오랜 논쟁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미토콘드리아는 에너지를 생산하는 세포 내 소기관으로 세포의 핵에 존재하는 염색체 DNA와는 별도로 미토콘드리아 DNA(mtDNA)를 지니고 있다. 이것은 난자에만 존재하고 세포의 핵 밖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아버지의 유전자와 섞이지 않은 채 태초의 어머니의 mtDNA가 현존하는 모든 여성에게 유전된 것이다. 앨런 윌슨은 전세계 5대륙을 대표하는 200여 명 여성의 태반에서 얻은 mtDNA를 분석하여 이들 모두가 약 20만 년 전 아프리카에 살고 있었던 한 여성으로부터 유래되었음을 밝혔다. 학자들은 이 여성을 '미토콘드리아 이브'로 명명했고 '아프리카 이브'라고도 부르게 됐다. mtDNA는 구조가 비교적 짧고 쉽게 분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모계를 통해서만 유전되기 때문에 그 염기서열을 비교하는 것이 매우 편리해 분석을 통해 모계 조상을 알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세계 최초로 네안데르탈인의 mtDNA 염기 서열 해독에 성공했고 2006년 네안데르탈인 게놈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래 4년 만인 2010년 네안데르탈인의 핵 게놈 해독에도 성공했다.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적 실체가 밝혀진 후 데니소바인의 실체까지 확인되면서 저자는 현생 인류가 전세계로 퍼져 나가면서 초창기 인류와의 낮은 수준의 이종교배는 항상 있었던 일일 것이라고 잠정적인 결론을 내린다. 연구는 데니소바 소녀와 네안데르탈인은 조상이 같은 가까운 친척이었고 이 소녀가 속한 집단이 네안데르탈인과 갈라지고 난 후 한참 뒤에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가 만났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정리해 보면 이렇다. 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인과 이종교배(종간 교배)가 가능했다. 데니소바인과도 이종교배가 가능했다. 이종교배란 종이 다른 데도 교배가 가능했다는 뜻이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종(Species , 種)의 과학적 정의는 개체 사이에서 교배가 가능하고 다른 생물군과는 생식적으로 격리된 집단이다. 그렇다면 이종 교배는 불가능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명확하게 선이 그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은 분명 다른 종이다. 그러나 분명 같은 속( 屬 , genus)이다. 속은 공통의 조상을 가진 것으로 판단되는 종들을 묶어놓은 단위이다. 즉,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은 분명 같은 조상을 가지고 있고 어느 시점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다. 역으로 추적해가면 모든 사피엔스가 하나의 어머니에서 유래한 것과 동일하게 지구상에 살았던 모든 인간은 한 명의 이브에서 유래했다고 충분히 추론할 수 있다. 이는 네안데르탈인의 mtDNA와 사피엔스의 그것을 비교 분석해보면 될 일이다. 


네안데르탈인이 현생 인류와 섞였다는 결론보다 내가 더 궁금한 것은 70억에 달하는 현생 인류와 이미 멸종한 아마도 수 백만 명의 다른 종(인간)들이 아프리카 이브보다 수 백만 년 전에 살았던 태초의 어머니 한 명으로부터 기원했을 거라는 가능성이다. 옮긴이의 결론처럼 스반테 페보가 발견하고 정리한 것은 '고대 DNA 연구의 기본 틀일 뿐 현생인류의 생물학적 기원에 대한 완벽한 탐구는 이제 막 새로운 길을 향한 출발을 시작'했을 뿐인 것 같다. 과학기술의 기하급수적 발달 덕으로 내가 아직 살아있을 때 최종 결론에 도달하는 걸 보는 즐거움을 ㅜ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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