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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경준 Mar 06. 2017

왜 사피엔스는 어느날 '수퍼맨'이 됐을까

<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와 <사피엔스> 비교

<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의 저자 스반테 페보는 분자생물학자이다. 게놈 분석을 기반으로 인류의 진화를 연구한다. 이 책은 그의 네안데르탈인 연구 과정과 결과를 담고 있다. 그의 연구 목적은 '네안데르탈인이 누구였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왜 3만 년 전에 사라졌는지, 현생인류와 유럽에서 수만 년 동안 공존하는 동안 그들과 어떻게 교류했는지, 그들이 친구였는지 적이었는지, 우리 조상이었는지 아니면 멸종한 사촌이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었다. 그의 연구 대상은 네안데르탈인이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역사학자다. <총, 균, 쇠>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영향을 받은 그는 역사학과 생물학을 결합한 독특한 시각을 제시한다. 그의 연구 대상은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다. 한 사람은 멸종당한 인종을, 한 사람은 멸종시킨 인종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시각을 함께 보는 것은 매우 재미있는 일이다. 


기점은 지금으로부터 3만 년 전이다. 유발 하라리가 정리한 바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약 3만 년 전까지만 해도 지구상에는 최소한 여섯 종의 호모(사람) 종이 있었다. 동부 아프리카에는 호모 사피엔스가, 유럽에는 네안데르탈인이, 아시아 일부에는 직립원인이 거주했고 모두 호모 속(屬 , genus)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20여 만 년 전에 등장한 이후 아프리카를 벗어나지 않던 호모 사피엔스가 약 7만 년 전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대약진(Great Leap Forward)'라고 명명한 아프리카 밖으로의 이동을 시작하면서 그 때까지 존재했던 모든 다른 종을 멸망시켜버린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도대체 호모 사피엔스에게 다른 종보다 우월한 어떤 능력이 있었기에 그것이 가능했는가를 서술하고 있다. 그가 통찰한 호모 사피엔스의 능력은 상상 속의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협동 능력이다. 그는 '호모 사피엔스가 세상을 지배하게 된 것은 다수가 유연하게 협동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기 때문'이라고 단정한다. 즉 그의 표현대로라면 호모 사피엔스에게 '인지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인지 혁명은 언어를 이용한 의사 소통이 가능해지면서 일어났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의사소통이 가능해진 원인은 과학자들의 유력한 설을 근거로 유전자적 돌연변이로 지목한다. '뇌의 배선이 바뀌는 돌연변이'가 일어났을 것이라며 그 돌연변이를 '지식의 나무 돌연변이'로 명명하자고 한다. <사피엔스>를 읽으면서 느낀 약간의 공허함은 그의 주장에 과학적인 근거는 없고 다만 통찰일 뿐이라는 점이었다. 통찰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지만 그가 주장하는 거대한 담론은 과학적 근거가 약하다. 반면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의 관계를 과학적으로 명쾌하게 밝힌 스반테 테보는 그의 놀라운 연구 업적에도 불구하고 왜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켰는가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다만 책의 말미에서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또 우리가 언젠가는 무엇이 대체 집단을 동시대 고생인류 집단과 다르게 만들었는지, 그리고 왜 모든 영장류 중에서 하필 현생인류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가 지구의 환경을 고의적 또는 비고의적으로 바꾸었는지를 이해랄 수 있을 것이다.' 즉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가 단정적으로 결론 내린 것에 대해 과학자 스반테 테보는 '모른다'고 말한 것이다. 


그런데 스반테 테보는 유발 하라리가 애매하게 다룬 문제를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는데 바로 고고학자들이 오리냐시안 문화(Aurignacian culture)라고 명명한 것이다. 이 부분을 언급한 대목을 보자. 


"5만 년 전 직후에 이 모든 상황이 바뀌었다. 그 시점에 현생인류는 아프리카 밖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지고 구세계 전역으로 빠르게 퍼저 나가기 시작해 단 몇 천 년 만에 오스트레일리아까지 도달했다. 그때는 현생인류가 네안데르탈인과 교류한 방식이 바뀌었던 것 같다. 화석 기록이 특별히 잘 연구되어 있는 유럽을 살펴보면 현생인류가 한 지역에 출현하면 네안데르탈인은 그 즉시 또는 곧이어 사라진 것이 분명해 보인다. 결국 전세계에서 같은 일이 일어났다. 즉 현생인류가 등장할 때마다 고생인류 형태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사라졌다. 

팽창해 나가는 이 야심찬 현생인류을 5만~10만 년 전 아프리카와 중동을 배회하던 현생인류와 구별하기 위해 나는 그들을 '대체 집단(replacement crowd)'이라고 부르려고 한다. 이들은 고고학자들이 오리냐시안 문화라고 부르는 더 정교한 도구 문화를 발달시켰다. 이 문화는 다양한 돌날을 포함해 부싯돌로 만든 여러 전문화된 석기가 발달한 것이 특징이다. 오리냐시안 유적지들에서는 뼈로 만든 창촉과 화살이 자주 발견되는데 몇몇 고고학자들은 이것을 최초의 발사 무기로 본다. 그게 사실이라면 현생인류는 동물과 적을 먼 거리에서 죽일 수 있는 이 발명품 덕분에 네안데르탈인과 그 밖의 다른 고생인류를 만났을 때 그들을 이길 수 있었을 것이다.

또 오리냐시안 문화는 최초의 동굴 예술과 반인반수의 신화적 형상들을 포함한 최초의 동물 조각상을 생산했다. 이는 그들이 집단 내의 타인들과 소통하고 싶어하는 풍부한 내면을 소유했음을 암시한다."


역사의 동일한 시점을 유발 하라리는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하지만 약 7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는 매우 특별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무리를 지어 두 번째로 아프리카를 벗어난 것이다. 이번에 이들은 네안데르탈인을 비롯한 인간 종들을 중동에서만이 아니라 지구 전체에서 몰아냈다. 그리고 놀랍도록 짧은 시간 만에 유럽과 동아시아에 이르렀다. 약 45,000년 전 이들은 어떻게 해서인지는 몰라도 대양을 건너 그때까지 인간이 발길이 닿은 적 없는 호주에 상륙했다. 

그들은 약 7만 년 전부터 3만 년 전까지 배, 기름 등잔, 활과 화살, 바늘을 발명했다. 예술품이나 장신구라고 분명하게 이름 붙일 만한 최초의 물건들도 이 시기를 출발점으로 하고 있다. 종교와 상업, 사회의 계층화가 일어났다는 최초의 명백한 증거 역시 이 시기의 것이다.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이런 전례 없는 업적이 사피엔스의 인지능력에 혁명이 일어난 결과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 혁명적 변화의 원인이 유전자 돌연변이라는 것이다. 정작 이 문제를 연구하는 과학자는 명확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테보는 인지 능력의 변화보다는 네안데르탈인보다 앞선 도구 개발 능력에 무게를 두는 느낌이다. 정리해보면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이 만났고,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보다 어떤 면에서 우월해서 네안데르탈인이 멸종하게 되었는데, 왜 우월하게 되었는지는 모른다는 게 두 학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인데 유발 하라리는 유전적 돌연변이가 원인이라는 것이고 스반테 테보는 아직 모르겠다는 것이다. 유발 하라리가 말하는 유전적 돌연변이의 실체는 언어 구사 능력이고. 스반테 테보는 그 유전자가 'FOXP2'일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는데 옥스퍼드 대학교 연구팀이 인간의 언어 능력에 관연하는 유전자를 찾아냈다는 것이다. 만약 유전적인 변화가 원인이라면 FOXP2를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와 결합해 탄생시킨 인간은 호모 사피엔스가 될 것인가. 


결론적으로, 유발 하라리는 과학자들의 유력한 가설에 자신만의 통찰을 결합해 독특하고 설득력 있는 논리를 만들어냈지만 그 논리가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은 아니다. 스반테 테보의 과학적 발견은 이 문제까지는 접근하지 못하고 가능성만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핵심은 의사 소통 능력과 공감 능력에 있고 그것이 가능했기 때문에 협동이 가능했다는 유발 하라리의 논리는 설득력 있다. 하지만 네안데르탈인도 집단을 이루고 살았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그런 능력이 과연 없었을까. 그런 능력이 없는데도 집단을 이루고 살았다고? 네안데르탈인은 사피엔스와 분명 다른 인종이었지만 사피엔스와 교배가 가능했다. 네안데르탈인 집단 내부의 교배는 일정한 특징을 유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유발 하라리가 주장한, 사피엔스를 우월하게 만든 유전적 돌연변이가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 사이의 이종교배에 의해 탄생한 것이라면? 네안데르탈인 자체로는 열등했으나 네안데르탈인으로부터 제공된 5% 이하의 유전자가 이전의 호모 사피엔스와는 다른 '수퍼맨'을 탄생시킨 거라면? FOXP2 유전자에 일어난 두 개의 변화가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에게서도 똑같이 나타난다는 것을 이미 확인했음에도 페보는 이 부분에 답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감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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