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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정태리 Mar 20. 2023

꽃놀이 호강 여행

여행은 인생의 보람이자 보상이다

작년 11월에 구례를 처음으로 간 후, 꽃이 피면 다시 이곳에 오자 결심을 했다. 많은 물을 품고 있는 지리산과 아름답고 오래된 건축물의 화엄사를 보니 믿을만했다. 여기에 꽃까지 핀다면, 천국이 따로 없을 듯싶었다.


올 2월부터 3월 중순 꽃놀이 여행 계획을 세웠다. 봄처럼 빨리 가는 게 없는 것 같다. 예쁘다 하고 몇 번 쳐다보면 봄비 오고 후두둑 져버리는 게 봄꽃이다. 그래서, 꽃놀이 여행 간 기억이 50 평생 별로 없었다. 엄마도 그러실 테고. 봄은 뭔가 불완전하면서 바쁜 시절이었다. 이럴 때 꽃에 집중할 시간을 가져야 한다. 봄날은 간다.


아무도 휴가를 안 내는 3월 중순, 기어코 휴가를 내서 기차를 탔다. 네비에 산수유시목지를 찍고 운전을 하니, 길가에 노란색 산수유들이 반겨준다. 도착한 시목지는 깔끔한 공원으로 잘 조성되어 있다. 천년 되었다는 산수유 노거수는 다른 오래된 나무들과 다르다. 여리하고 하늘한 산수유 가지의 느낌이 오래되어도 남아 있다. 평소 오백 년 된 은행나무에서 보던 느낌과는 다르다. 난 나이 먹었지만, 마음 여린 산수유라우. 하고 말하는 것 같다. 기자회견에서나 볼 법한 카메라렌즈들 옆에서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산수유 문화관으로 갔다. 전국 팔도 사투리가 다 들리고, 주차하기 힘들 정도로 사람이 많다. 일부러 평일에 왔는데, 그간 코로나로 꽃에 목마른 사람들이 나처럼 왔나 보다. 그래도, 풍경화 같은 산수유마을 풍경이 파스텔화처럼 아름답다.



다음날은 광양매화마을에 가기로 했는데, 사람이 꽃처럼 많은 걸 보느니 한가한 곳에 가고 싶었다. 광양 이순신대교가 잘 보이는 투썸 카페로 목적지를 정했다. 2층 통창으로 보니, 이순신대교를 올라가는 자동차들은 장난감 같다. 크고 먼 풍경을 멍 때리고 바라보면 뇌가 쉴 수 있다.



숙소는 문수저수지가 내려다 보이는 산속 독채를 빌렸다. 작년에 묵어보고, 경치를 보고 있으면 몸과 마음이 한꺼번에 이완이 되는 걸 느껴서 엄마를 모시고 오고 싶었다. 나보다 몇 살 위 언니인 숙소 주인분께서는 우리 엄마를 보더니 미인이라고 칭찬하신다. 내가 엄마를 많이 닮았다고 하시면서.



우리 엄마는 나이가 있으셔도 귀여운 얼굴이라 어딜 가도 인기 있다. 키도 작고, 얼굴도 둥글하고, 코믹한 이야기도 잘하신다. 호호 아줌마라는 별명도 있으시다. 여행 가면 호기심이 많아 새로운 걸 보는 것도 적극적이라 사람들이 좋아한다. 이 숙소도 아침이면 저수지에 산그림자가 비치는 아름다운 풍경을 제공한다. 적극적으로 저수지 앞까지 가서 풍경을 바라보는 엄마. 거대한 대자연 앞에 선 작은 호호 아줌마라 더 귀여워 보인다.


가족 단톡방에 여행사진을 올리니 여동생이 엄마 호강한다고 한다. 그간 온 가족을 돌보느라 고생하셨으니 말년에 호강할 자격이 충분히 있으시다. 여행 가서 좋은 풍경 보면 인생이 모두 보상받는 것 같다. 과거 섭섭한 일이 있어도 이해되고 상쇄된다. 그래서, 기회 있을 때마다 여행시켜 드리려고 한다.

마지막 날은 구례 오일장이 서는 날이다. 평소 보리를 싹 틔워 엿기름을 좋아하는 엄마는 장터에서 보리를 사리라 벼르고 계셨다. 어느 곡물 상회에서 보리를 많이 주문하자, 상점주인도 신이 났다. 택배로 보내주겠다고 주소를 찍은 종이를 핸드폰으로 찍어갔다. 엄마는 서울보다 보리가 깨끗하다고 좋아하신다.


점심을 먹으러 우연히 들어간 부대찌개는 햄으로 장미를 접어 올려주셨다. 맛도 좋아 배 터지게 먹었다.


좋은 풍경과 음식이 몸과 마음을 보충시켜 주었다. 살만한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땅이 주는 풍요로움에 다시 감동하며 서울행 기차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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