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하나 용량이 적은 양도 아니었다.
저녁엔 먹이고 재운다지만 아침에 먹이고 나면 아이는 비몽사몽이 되었다.
생활을 안 할 수 없으니 일부러 유치원도 10시 넘어 보냈는데...
유치원이 끝나고 데리러 가면 아이 친구들은 나를 보면 다들 한목소리로 "얜 맨날 자요!" 하며 말했다.
그럴 때마다 아이는 멋쩍은 듯 웃었는데...
그걸 보는 나는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어떤 엄마가 저 많은 약을 아이 입에 털어넣어 주고 싶을까.
아이는 맨처음 오르필이라는 물약으로 약을 시작했었다.
나 이런 약 이름 모르고도 잘 살았는데...
아이 입에 이런 약을 왜 넣어줘야 하나...
한번 시작하면 끊기도 어렵다는데...
안 먹이면 안 되나...
온갖 걱정과 생각을 하며 약을 시작했는데...
그런 걱정따위 비웃듯이 아이의 경련은 멈출 줄을 몰랐다.
1년 동안 약이 또 추가되고 또 추가되었다.
경련을 잡기는커녕 약 부작용으로 아이의 눈동자에 생기는 사라졌고, 비틀대며 제대로 걷지도 못했고,
신경질이 극에 달하기도 했고, 식욕부진이 와서 제대로 먹지 못하기도 했다.
게다가 약으로는 도무지 아이의 증상이 잡히지 않았다.
절벽 앞에서 시작한 것이 케톤식이였고,
다행히 케톤식이 이후에 겨우 증상을 잡혔다.
케톤으로 잡히면 약을 금방 중단할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니었다.
한 가지 약을 초반에 줄이다가 아이 증상이 다시 보여 오히려 용량을 더 늘려야 했다.
안정기에 접어들고, 중간중간 뇌파검사로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며
약을 천천히 아주 조심스럽게 줄이고, 끊어가고 있다.
약을 줄일 때마다 나는 초긴장 상태가 된다.
케톤 초기, 약을 줄일 때 아이의 증상이 다시 나온 적이 있기도 하고
약을 시작하는 것보다 끊는 게 더 어렵다는 말을 듣기도 했기 때문이다.
약을 줄일 때 어떤 약은 신경질을 잘 부리기도 하고,
어떤 약은 새벽에 무섭다고 울면서 깨기도 하고,
또 어떤 약은 머리가 찌릿하다 하기도 했다.
그래도 무사히 두 가지 약은 중단하는 데 성공했고
하나는 11월까지 서서히 줄여가면서 중단하기로 했으니,
이제 한 가지만 남는다.
그 사이 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이 되어 시간이 되면 알아서 약을 챙겨먹고,
약 두 알을 한 번에 다 먹을 수 있다며 자랑까지 한다.
오늘도 약을 챙겨먹고 학교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니... 참 고맙고 안쓰럽고...
새삼 1학년 땐 저 많은 약을 먹고 어떻게 하루하루 버텨냈나... 싶다.
아직도 먹는 게 자유롭지 않은 아이인데 별탈 없이 하루빨리 약이라도 모두 끊기를...
오늘도 건강히 지나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