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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정현 Jul 16. 2018

이발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2)

미용실만 가면 YES 맨이 되는 남자들.


우리는 모두 미용실에 가면 YES 맨이 된다.
(샴푸 할 때) 물 온도 괜찮으세요? 네! 
머리 어때요? 괜찮은 거 같으세요? 네!

9미리로 해드릴까요? 네!  

미용실에 가면 자아를 잃는 듯하다. 그리고 다듬어주세요라는 굉장히 추상적이고, 모호한 주문을 한다.

미용사는 신기하게 그걸 또 알아듣는다. 


단 한 번도 미용실에 만족한 적이 없다.

진심으로 태어나서 미용실에 가서 단 한 번도 만족한 적 이 없다. 지저분 한 머리만 정리되면 내가 왁스로 만져야지가 기본 마인드 세팅이었다. 심지어는 맘에 든다고 하고 와서 집에서 내가 앞머리를 컷 한적도 있다..

그렇다면 왜 대체 내가 만족하지 못하는 , 대다수의 남성이 예스맨이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내 판단은 

첫 번째로 분위기. 전체적으로 여성에게 맞추어진 인테리어, 조도, 거울 디자인, 다수의 여성잡지, 스크린광고에서는 올리브 tv 겟 잇 뷰티가 틀어져 있다. 우리도 모르게 위와 같은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당연하다. 미용실은 원래 여자만의, 여자들만의 살롱이었으니까.

두 번째로 남자 머리에 대한 이해 부족. 기본적인 컷은 모든 미용사가 할 수 있겠지만 디테일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다. 개인적으로 (짧은) 남자 머리에서는 디테일이 굉장히 중요한 영역이다. 내 사례를 들면 옆통수의 밸런스가 안 맞는 두상의 경우이다. 오른쪽 왼쪽을 같은 9미리로 밀면 한쪽은 허옇게 밀리고, 한쪽은 조금 남기 때문이다. 이러한 디테일은 대부분의 미용사는 갖추고 있지 못하다. 미용실에서 짧은 머리 남자 컷은 보통 20~30분이 소요되고, 바버샵에서는 50~60분이 소요된다. 이렇게 헤어컷에 들이는 (정성 ) 물리적 시간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이용사 자격증과 미용사 자격증이 따로 존재하는 것에서도 남자 머리에 대한 이해의 차이를 알 수 있다.


셀프 컷을 해보기로 했다.

아니, 이렇게 만족을 못 하고 심지어 불편하기까지 한 미용실을 2,3주에 한 번씩 가는 게 맞나? 불만이 생겼다.

그래서 2015년 처음 이발기(바리깡)을 샀다. 투블럭 스타일을 고수하다 보니 옆머리, 뒷머리가 지저분하면 2,3주 후에 바리깡으로 정리를 한 번 하고, 그 뒤 3주 후에 전체적으로 기장감을 줄여야 할 때만 미용실에 갔다. 

가위로 앞뒤 옆머리 자르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컸고, 중간에 이발기로 정리 2달 간격으로 미용실 가는 것이 절충안이었다. 

그러다가 이발병 출신 직원이 들어왔고, 숱가위를 하나 사서 서로 잘라주기 시작했다. 부족한 부분이 있었지만

미용실 갈 때보다 심적으로 편했고, 심지어 머리도 더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내 머리 상태는 대충대충 대강대강 흘러갔다.

찰스 바버샵을 만나기 전까지


돈지랄이라고 생각한 바버샵

찰스 이전에도 바버샵과의 인연은 있었다. 

MBC 경제매거진에서 꽃중년, 그리고 헬로우젠틀에 대해 소개하는 자리였다. 

이전 모델 헤어스타일은 장발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왔다. 머리카락을 댕강 다 잘라버렸다는 것이다.

바로 HERR라는 초 럭셔리 바버샵에서... 신 중년은 이런 곳에서 머리 한다는 콘셉트이었다.

장발이 모델 시그니쳐라고 생각해서 머리를 짧게 자른 모델이 상상이 안됐다. 우리 이제 망하는 거 아닌가 했다.

그란데 말입니다..??? 어??

괜찮았다. 패완얼.패완분위기인 건, 세상이 불공평하단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여하튼 내 생에 첫 바버샵은 사업 때문에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컷 가격은 10만 원에 육박한다는 소리를 듣고, 뜨악했다. 나에게 바버샵의 첫인상은 돈지랄 그 자체였다. 


똥매너, 지저분함, 힙합, 타투, 스케이트보드 타는 애들이 있는 곳

모델의 머리가 짧아졌고, 계속해서 촬영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었다. 주기적으로 관리해드릴 필요가 있었다. 수소문 끝에 찾은 곳이 바로 내가 경험했던 두 번째 바버샵이었다. CS 가 엉망이었고, 샵의 분위기도 나와는 맞지 않았다. 바닥에는 치우지 않은 머리카락이 수북이 쌓여있고, 매장 안에서는 담배냄새도 살짝 났으며, 매장에서 근무하는 바버는 모두 큼직큼직한, 온몸을 휘감은 타투를 하고 있었다. 그중 몇몇은 갑자기 동네 친구들과 스케이트 보드를 타러 나갔다. 응??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머리는 잘 나왔다. 하지만 분위기, 서비스, 바버의 태도 등에서 그다지 유쾌하지 못 한 경험이었다. 가격은 4만 원대 였던 것 같다. 비싸지도 싸지도 않은 가격이었다.

내가 셀프로 머리를 자르기 시작한 후에 바버샵을 간접적이나마 두 번 경험했지만 바버샵에 가고 싶은 마음이 일도 생기지 않았다. 어떤 곳은 드럽게 비쌌다(최근에 상황이 좋지 않다고 들었다.), 어떤 곳은 매너가 더럽게 없었고, 가게도 더러웠으며, 힙스터만의, 타투 없으면 입장 안될 것 같은 바버샵은 나에게는 너무도 먼 곳이었다.

그 뒤로 바버샵은 잊고 살았다.

찰스 바버샵을 만나기 전까지..


진짜 바버샵을 알게 됐다.

이전 글 이발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1)에서도 말했지만 찰스 바버샵은 우선 너무 편했다. 처음 뵙는 자리였기 때문에 불편할 수도 있었지만 뭔지 모르게 편하고 마음이 놓였다. 쉬러 온 느낌이 들었다.

너무 어둡지도 않고, 밝지도 않은 조명 젊은 친구들 취향으로 맞춰놓은 현대 바버샵 인테리어를 갖춘 룸과, VIP를 상대로 하는 원장님 룸으로 나뉘어 있었다. 각각의 매력이 있었다.


원장님께서 머리 좀 해야겠다며 내 머리를 만져주셨다.

목에 감는 건 위생 + 머리카락 들어가지 않게 하는 테이핑

분칠을 해가며 덜 잘린 부분들, 삐져나온 부분들을 체크하고, 다시 자르고 다시 자른다. 작품이 완성될 때까지. 그렇게 약 1시간가량 대한민국 최고의 이용기능명장에게  바버링 서비스를 받았다. 생소한 경험이었지만 기분이 좋았다. 대접받는 듯 한 기분이었다. 또 내 머리는 완성된 조각품처럼 훌륭한 형태를 지니게 되었다. 

왜 대한민국 최상류 층이 15년 20년 가까이 원장님께 머리를 맡기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컷 한 번에

이어서 스팀 쉐이빙을 받았다. 신세계였다. 여성분들이 왜 네일숍에 가는지, 마사지를 받는지, 미용실에 가서 수다를 떠는 게 힐링인지 이제야 알았다. 남자에게 바버샵은 지치고 팍팍한 일상에서 잠시나마 쉬어갈 수 있는 그런 공간이었다. 단순히 머리 자르는 곳이 아니었다. 


바버샵을 다니며 느낀 개인적 효용


1. 어디 북한 김정은이 머리 같이 잘랐냐고 그동안 뭐라 하던 엄마가 인정해줬다. 머리 이쁘게 깎았다고

2. 머리 스타일에 고민이 줄었다. 믿고 맡길 수 있는 전담 헤어 담당자가 생긴 것 같다.

3. 편하게 쉴 수 있는 남자만의 공간을 알게 됐다. 기다리면서 어색하게 여성 잡지 보고 있지 않아도 된다.

4. 내 두피, 모발, 피부 건강에 신경 쓰게 됐다. 나를 조금 더 아끼게 됐다.


당장 생각나는 효용을 적어봤다. 위의 기능적 효용 외에도 바버샵은 정말 우연한 기회에 내 인생에 스며들어, 내 인생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옷만 생각하던 내가 그루밍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고, 사업을 더 넓게 그릴 수 있게 됐고, 오프라인 베이스를 갖추게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 이발소를 다니기 시작한 내 이야기를 풀었다면 앞으로 이발소를 경영하기 시작했습니다 를 통해

내가 배운 바버샵 업계의 규모, 흐름, 성장 가능성, 기회, 확장 가능성 등에 대해 다뤄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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