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 응암동에 부모님 소유 건물이 있다. 당시 건물 담보 빚이 80% 최대치가 꽉 찬 상황 + a로 부모님 지인에게 빌린 돈이 있었다. 은행에 매 달 내야 하는 이자가 월세보다 많았다. 월세 말고 우리 가족 중, 경제생활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나 또 한 창업했으니 집을 도울 여력은 없었다.(손 안 벌리는 게 다행) 또 한 매 달 마이너스 이외에 더 큰 문제도 있었다. 소득세, 재산세, 전기세 등 의 각 종 공과금을 내야 했다. 거기에 우리 가족 생활비도 필요했다. 돈을 벌어내야 했다.
당시 우리 가족은 3층, 4층에 나누어 살고 있었다. 4층 확장공사하고 (이 때..또 빚을 짐) , 3층에서 무엇이 됐든 돈을 만들어야 했다. 첫 번째 시도, 3층을 전세로 내주고, 전세금으로 부모님 지인 빚 이자를 사정을 해서라도 눌러놓자. 잘 안 됐다. 가격은 저렴했지만 지나치게 넓었다. 60평 가까이 되는 집에 들어와서 살 가족이 없었다. 그렇게 또 2,3개월이 지났다. 다급해졌다.
그래서 생각한 두 번째 시도는 쉐어하우스, 기본적인 도배, 가구를 들여놓고 쉐어하우스 세팅을 하고,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때 귀인이 나타났다. 권오명 님께서 쉐어하우스 하기에는 가진 인프라가 아깝다는 의견을 주셨다.
이미 기본 인테리어를 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딱히 새로 준비할 것은 없었다. 영어로 된 호스팅 자료만 준비하면 됐다. 다른 에어비앤비 숙소의 글을 따와서 우리 집에 맞게 수정한 후 올렸다. 예약이 차기 시작했다.
총 방은 4개였고, 큰 방 2개는 에어비앤비, 작은 방은 우리가 쓰기도 하고 하숙(?)을 쳤다. 혼합형 에어비앤비가 되었다. (현재 에어비앤비로만 운영 중)
빅뱅 입대 전 마지막 콘서트가 상암에 열렸고, 상암동 인근 집을 찾았던 중국 모녀 게스트를 시작으로 명지대에서 공부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여학생을 둔 학부모 게스트, 홍콩에서 무역을 하는 친구, 지금 우리 집에 3개월째 묵으며 디지털 노마드 생활을 하는 싱가포르 부부까지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있다. 그동안 있었던 게스트들과의 스토리는 내 브런치 에어비앤비 매거진에서 소개해보려 한다.
모든 게스트 지하철역 픽업하고, 시간 될 때는 체크아웃 후 지하철역까지 짐을 옮겨주기도 했다. 단기간에 슈퍼 호스트를 달았다. 슈퍼 호스트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망했던 카페를 에어비앤비로 전환하면서 초기에 컴플레인이 많았다. 한국인 파티룸 이용자가 별점 1점 테러를 하고 갔다.(심지어 전액 환불해줬던 게스트) 이외에도 여러 일 때문에 한국 게스트를 지양하는 편이다.
운영 대행을 하기도 했다. 같이 일했던 직원이 뉴욕에 일이 있어서 3달 정도 우리 집 근처 원룸을 비우게 됐다.
3일 정도만에 글, 사진, 필요한 자료 세팅하고 시작했다. 원룸 형태의 집전체 카테고리(그동안은 개인실 운영만)를 경험할 수 있었다. 수익은 용돈 정도? 벌었다.
첫 번째 당연히 돈. 원래 놀고 있던 공간에서 매 월 충분한 수익을 거두고 있다. 드디어 월세-이자>0 이 되었다.
앞으로 내 인생 설계에 있어서 에어비앤비라는 또 하나의 수익모델을 발견했고 경험했고, 노하우가 생겼다. 특히 서울 변두리 지역(들어는 보셨나? 응암동? 다들 잘 몰라서 상암동 근처라고 한다.)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는 노하우가 생긴 것은 자랑할 만하다.
현재 한 집에서 방 4개를 운영 중이며 현시점 기준 4개월 정도 공실률 10% 미만 풀 부킹
두 번째 영어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했다.(영어 극복 아님, 영어 두려움 극복) 수능 영어는 기가 막히게 잘했던 나다 98점, 1등급이었다. 그런데 대학 와서는?? 처참했다. 영어는 내 콤플렉스 중 하나다 ( 다른 하나는 키, 얼굴 ㅜ) 한 가지 일화를 말하자면, 2013년 삼성 SDS sgen 캠퍼스 우승을 통해 실리콘밸리에 간 적이 있다. 팀장 형과 삼성 SDS 팻말 같은 것을 쪼개어, 현지 외국인에게 들게 하고, 그걸 이어 붙이면 삼성 SDS 가 짜잔하고 완성되는 아기자기한 기획을 했다. 문제가 뭐였냐고? "쿠주 테이크 어 픽쳐?" 요 한마디를 못 해서 , 서로 미루다가 싸웠다. 나이 27,28 먹고 남자 둘이 싸웠다. 반나절 정도 말을 안 했다. 여하튼 그 정도로 나는 영어에 트라우마가 있었다. 에어비앤비 하면서 생존형 , 먹고살기 위해 어떻게든 영어를 쓰다보니 계속 쓰게 됐고, 잘 하지 않지만 그냥저냥 음청 불편하지 않은 수준은 되었다.
세 번째 새로운 경험을 통한 사고의 확장. 난 여행을 싫어했다. 사치고 낭비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엄청 필요하다고 생각함) 그래서 여행 경험이라고는 sds에서 보내준 샌프란시스코, 학교에서 보내준 샌프란시스코, 루이까또즈에서 보내준 도쿄 + 누나랑 20살 때 간 도쿄가 끝이었다. 좁았던 시야, 세계에 대한 이해, 글로벌에 대한 꿈을 에어비앤비 호스팅을 하며 배우고 넓히고 익히고 꿈을 키우고 있다. 유럽에서 온 애, 디지털노마딩 하는 친구, 영국에서 온 친구, 매년 한국에 오는 몰도바 친구, 노르웨이, 네덜란드, 독일, 괌에서 온 친구 등 그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며 간접적으로 전 세계를 여행할 수 있었다.
1. 기억에 남는 게스트들과의 이야기
2. 운영시 애로 사항
3. 서울 외곽지역에서도 풀 부킹을 받는 노하우
4. 트립 호스팅 도전
5. 내가 이용해 본 에어비앤비 숙소 이야기
등에 관해서 일기 쓰듯이 남겨보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고맙다. 에어비앤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