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급한 발자국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연구소 문을 부술 듯 우당탕 문이 열린다. 헐레벌떡 한 학생이 뛰어오더니 다짜고짜 내 손을 부여잡고 이끈다.
“샘~ 지금 시간 되세요”
“왜? 무슨 일이야?”
“저랑 어디 좀 가셔야겠어요!”
다급한 목소리를 들으니 직감이 안 좋다. 뭔가 벌어진 게 틀림없다. 서둘러 신발을 갈아 신고 나갔다. 밖에는 이미 너 댓 명의 학생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학생이 이끄는 대로 따라갔더니 발걸음은 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 걸까? 가끔 올라가던 학교 뒤 등산로였다. 20분쯤 가는가 싶더니 갸우뚱 길을 헤맨다. 그리고는 마침내 환한 웃음으로 유레카를 외친다.
“바로 여기에요!”
“여기가 바로 중2 때 만든 아지트예요”
“빙 둘러앉으면 대여섯 명 충분히 쉴 수 있어요”
“와! 하나도 안 변했네!”
고3이 된 학생들이 4년 전의 추억을 속사포처럼 쏟아낸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등산로 옆에 소나무 사이로 둥글게 파진 웅덩이뿐이었다. 이 웅덩이에 어떤 사연이 있기에 나를 불렀을까? 자유가 그리울 때 서로 눈짓으로 신호를 하고 조용히 이곳에 올라와 마음껏 자유를 마셨다고 한다. 선생님 몰래 올라와 삽질하며 아지트도 만들고 간식도 먹었단다. 그때 비밀 유지가 잘 되어서인지 오늘 올라온 아이들 중에는 처음 와본 학생도 있었다. 왜 이곳에 온 걸까? 풋풋한 중학교 시절이 그리웠나? 이제 두 달 후면 졸업을 하는데 마지막으로 오고 싶었나? 그때 내 손을 처음 이끌었던 예성이가 외친다.
“샘! 우리 여기에 멋진 아지트 만들어요!”
“웬 아지트?”
“여기에 땅을 파고 기둥을 세워 비가 새지 않게 만들어요. 그리고 같이 책을 읽어요!”
내일 모래면 졸업인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지? 졸업을 앞둔 12학년 학생이 10월 초에 찾아와 아지트를 만들고 싶다고 했을 때 결론은 하나였다. 터무니없는 소리!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숲 속에 아지트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멋지기는 했지만 시기적으로 너무 늦었기 때문이다. 졸업을 겨우 두 달 앞두기도 했지만 곧 찬바람이 불면 밖에 서 있기도 어려운 겨울을 앞두고 찾아왔으니 말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도 어렸을 때 그런 놀이를 하며 행복하게 지냈다. 어설프지만 작은 아지트를 작전 본부라 칭하며 놀았다. 나무 위에 아지트를 만들어 친구들과 나무를 타고 올라가 전쟁놀이를 했다. 그 후 몇 번을 다시 찾아와 간청을 했지만 마음속에서는 점점 사라져 갔다.
그런데 내 마음속에 무언가 꿈틀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몇 번을 찾아온 그 학생의 열정에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무슨 동기에서 시작하려 했는지 더 궁금해졌다. 숲 속에 집을 지어 책을 읽을 읽고 싶다고?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든 거지? 지난 쿼터 독서 시간에 소로우의 ‘월든’을 읽더니 자연에서 삶을 고민하고 싶어 졌단다. 그 동기가 참 기특했다. 그런 학생에게 꿈을 포기하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여전히 내 안에는 과연 될까 라는 생각이 끝없이 떠올랐지만 마침내 나는 넘어갔다. 10월 하순경 5명의 학생들과 나는 독수리 오 형제가 되어 뭐라도 만들어 보기로 했다. 그 프로젝트 이름은 ‘월든’이다. 참여자들은 월든 ‘빌더’라고 불렀다. 그 주인공은 지예성, 정한겸, 이지우, 이선율, 고재은이다. 모두 고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