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상담가
전화벨 소리가 울리고, 내담자의 어머니께서 전화가 오셨다. 안부를 묻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아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상담자에게 물으신다. '우리 아들은 어떤 생각인지 궁금해서 ... '
갑자기 슬퍼졌다. 한 집에 살면서 24시간을 함께 하는 아들의 생각을 돈 주고 상담사에게 묻는 다니 ... 가장 가까운 물리적 거리에 살면서도 그의 생각한번 묻기가 어려운 것이 가족이다. 언제부터 우리의 가족은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
옛날엔 그랬다. 같이 한 밥상에서 밥먹으면 식구라고... 그게 가족이었다. 요즘은 그냥 식구다. 가족이 아니라 그냥 같이 밥 먹는 사람이다. 상담을 하면서 매번 심각성을 느끼는 것은 가족의 변화이다. 같이 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지는 시대가 오고 있다. 연인들끼리도 서로 생각을 짐작하기가 어려운 것인데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함께 살며 그중에 하나는 나를 알아주겠지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요즘은 나를 알아주는 한 사람을 가족에게서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가끔 내 직업이 슬퍼질 때가 있다. 상담사를 통해서만 진심을 이야기하는 요즘 사람들의 세상에서 내 직업은 필요악인 것인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가족은 언제부터 이렇게 소통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일까.
오늘 아침에도 집이 편하지 않다는 한 대학생의 이야기를 들으며 같이 사는 것의 의미를 다시한번 되새기가 된다. 같이 사는 건 예나 지금이나 힘든 일이다. 전에는 그 보다 힘든 일이 너무 많아서 같이 사는 걸 고민해볼 여지도 없었다면 요즘은 가장 큰 이슈가 어떻게 하면 같이 잘 살수 있을까다 . 피가 섞였다고 같이 잘 살수 있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이색적인 주말드라마를 발견했다. 한번 다녀왔습니다라는 제목의 드라마가 가족들이 모두 둘러앉아 보는 시간에 맞춰 방영한다. 그리고 인기가 있다. 자녀 4명이 다 이혼을 하고 함께 사는 드라마인데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바가 있다. 함께 사는 것만큼 이혼도 쉽지 않다. 그런데 그 어려운 이혼이 함께 사는 것보다 쉬운 시대가 온 것이다.
'나를 알아 주세요'
대부분의 내담자는 이 말을 하고 싶어한다. 상담자에게는 이 말을 잘 하지만 가족에게 하는 사람은 한번도 보지 못했다. 이 말을 못해서 자신을 학대하기도 하고, 남을 폭행하기도 한다. 가족을 떠나기도 한다.
그래서 이말은 정말 어려운 말이다.
소통하는 가족, 내 상담의 방향이 될 것이다.
나는 소통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자리에 있을 것이다. 어제 사무실에 있다가 말라있는 꽃을 발견했다. 작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다. 지나가면서 눈으로 봤지만 계속 무시했던 것이다. 그 꽃을 잡아서 작은 화병에 넣어줬다. 마치 계속 내게 나를 봐주세요라는 듯이 매일 말하고 있었는데 더 바쁜 일들이 그것을 무시하게 했던 것이다. 일에게 대화를 빼앗기는 것만큼 힘든 일이 없다. 살기에 바빠서, 일이 바빠서 라는 말이 대화를 무시하는 이유기 되지 않아야 한다. 화병에 꽂아주고 나서 한참을 쳐다봤다. 꽂아주고 나야 쳐다봐 지는 구나.
내담자를 알아주고 나야 그에게 한참 시선을 둘 수 있다. 내담자를 알아주고 나야 무엇을 해줘야 할지 알수 있다. 내담자를 알아주고 나야 그의 마음과 정서가 어디에 있는지 맞출수 있는 것이다.
오늘도 내가 무시했던 많은 것들을 찾는 하루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