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타 주 동부에 위치한 Arches National Park(아치스 국립공원)을 여행하기로 계획하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아치스 국립공원 내에서도 가장 유명한 Delicate Arch를 보기까지 왕복 3시간의 사암지대 하이킹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암지대라 하니 뭔가 특별해 보이지만, 아이들에게는 그저 그늘 한 점 없는 돌산일 뿐.
국립공원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트레킹 난이도(Difficulty)를 easy, moderate, strenuous 세 부류로 나누는데 Delicate Arch는 제일 험난한 코스에 해당한다. 실제로 목적지에 다다라서는 낭떠러지 옆 외길도 있다는 후기까지. 우리 2호 괜찮을까? 보통의 나는 안전하고 짧은 코스를 택해왔지만 Delicate Arch 만큼은 쉽게 포기되지 않는다. 유타 주 자동차 번호판에 새겨질 정도로 유명한 랜드마크가 아니던가. 2천여 개의 아치가 있는 곳이라던데, 다 버리고 여기 한 군데만 가보자!
국립공원 루틴
식당에 가면 일단 수저 놓고 물 한 컵 따르듯 국립공원 여행은 visitor center에 들러 주니어레인저 워크북을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주니어레인저’라 함은 국립공원을 방문하는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본인 연령대에 해당하는 페이지를 완성해 가면 레인저 배지를 선물 받는다. 언젠가부터 아이들보다 엄마가 더 집착하고 있는 또 하나의 배지를 모으기 위해 워크북을 야무지게 챙기고 Delicate Arch trail로 향한다.
2호와의 트래킹
모든 사람이 한 곳을 향해 걷고 있으니 지도 따위는 필요 없는 오늘의 트래킹. 4년 인생 선배 1호는 이게 뭐 그리 힘든 코스냐는 듯 아빠와 함께 기세 좋게 시야에서 멀어져 간다. 큰 아이라도 손이 안 가서 얼마나 다행인지. 나이 터울 탓에 자연관찰 전집을 이고 지고 살아야 하는 체증이 싹 내려가는 순간이다. 그때부터 시작된 숫자 세기 놀이와 100걸음 가서 젤리 하나 먹기 놀이. 고도가 높아질수록 숨 고르기를 빙자한 젤리 먹기 주기가 점점 짧아지긴 했지만 돌아가자고 하지 않는 것이 어딘가.
숨이 턱밑까지 차올라 겨우 숫자 세기조차 버거워질 때쯤이 되면 외길 하나가 나타난다. 이곳이구나. 한쪽은 벽인데, 나머지 한쪽은 낭떠러지인 탓에 좁은 외길이지만 모두의 양방통행이다. 오르는 길에 하산객과 마주치기라도 하면 날래게 몸을 놀려 벽 쪽 길을 선점하는 기지를 발휘해야 한다. 날쌘 나는, 아니 엄마인 나는 평소답지 않은 이기심을 발휘해 (상대적) 안전지대를 날래게 확보해 가며 외길을 빠져나간다. 아이의 손을 잡은 이기적인 엄마를 응원하는 하산객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속도를 낮추어 서로의 걸음을 응원한다.
대자연의 조각품
"아이 데리고 오느라 고생했어. 선물이야.”라고 말 해주 듯 시원한 바람과 함께 Delicate Arch가 모습을 드러낸다. 바닷물 증발로 드러난 사암들이 오랜 시간 밤낮의 온도차를 견디며 틈을 만들고, 그 틈에 비와 바람이 찾아와 이 독특한 모양의 아치를 빚어냈을 터. 그리고 수천 년이 지난 지금, 평범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고픈 이들이게 선물 같은 작품이 되어준다. 아이들이 돌바닥에 주저앉아 주니어레인저 워크북을 채우는 동안 연신 사진을 찍어 대 보지만 역시나 실물을 담아내지 못한다. 눈으로 찍고 마음에 저장하며 땀을 식힌다.
덧붙임. 찍을까 말까
낭떠러지 외길이 마지막 난관인 줄 알았는데 아치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려니 실족했다가는 델리케이트 아치가 우리 가족 고인돌이 될 판이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안 찍을 수 있겠는가. 기어가듯 아치 앞으로 가서 만세를 외치며 찰칵. 온 가족이 활짝 웃으며 만세를 한 것 같지만 사진 속 나의 왼쪽 팔은 2호를 꽉 잡고있다. 복화술로 조심조심을 읊조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