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보건학을 공부하고 싶은 그대에게
저는 올 여름2년 간의 공부를 마치고 공중보건학 석사 학위를 땄습니다.석사 공부를 시작한 이후 가장 많이 들은 질문 중 하나는 “그래서 넌 정확하게 뭘 공부하는데?”였습니다. 공중보건은 미국이나 프랑스에서는 꽤 인기가 많은 학문이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생소한 분야인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설명을 하려니 너무 장황할 것 같아 웬만하면 얼버무리는 탓에 부모님도 아직 제가 뭘 하는지 정확하게 모르십니다.
그런데 지난 여름 인턴십을 구하는 법에 관한 글(링크)을 쓴 이후로 놀랍게도 같은 분야에 종사하시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들의 연락을 꽤 꾸준히 많이 받았습니다. 혼자서 심심풀이로 쓴 글에 이렇게까지 연락이 오는 걸 보면 그만큼 이 분야에 대한 한글로 된 공신력있는 소스가 부족한 것이 아닐까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저도 공부를 계속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이후로 순전히 저 혼자서 아는 외국어를 다 동원한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학교를 결정하고, 지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비록 이제 갓 석사를 졸업하고 커리어를 시작하려는 조무래기지만 능력있고 관심있는 사람들이 진로를 결정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하여 그 동안 받았던 질문들을 취합하여 답을 달아보았습니다. 글이 조금 길어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사람들에게 공중보건 석사를 한다고 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반응은 열에 아홉은 “보건? 의사나 간호사같은거야?” 입니다. 공중 보건학은 의학과는 밀접하게 연관이 있으면서도 다른 학문입니다. 의사가 “개인”의 질병 치료와 건강 향상을 도모하는 직업이라면 공중보건전문가는 “집단”의 건강 향상을 도모합니다. 이 두가지는 얼핏 동일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전문성을 요구로 합니다. 쉬운 예를 들어 독감이 유행하는 지역에 해마다 사람들에게 독감 예방 주사를 접종하여 주거나, 독감에 걸린 환자를 치료하는 사람이 의사라면,공중보건전문가는 과거의 데이터를 가지고 독감이 올 시기와 규모 등을 국가, 시 등의 단위로 미리 예측하여 백신은 어떤 종류로 얼마나 미리 구비해두어야 하는지, 어떤 예방 캠페인을 하여 사람들이 좀 더 관심을 기울이고 접종을 받게 할 것인지 등을 고민하여 계획을 수립하고 진행하는 사람입니다. 혹은 해마다 독감 환자의 수와 독감이 유행하는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한 모니터링 시스템을 수립하고, 의사들에게서 발생하는 환자들에 대한 수, 증상 등의 정보를 수집하는 것도 공중보건전문가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여기서 공중보건 전문가가 향상시키고자 하는 건강은 신체적 건강, 정신적 건강, 사회적 건강 모두를 아우르는 포괄적인 용어입니다.에볼라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한 활동이나 소아비만율을 감소시키기 위한 프로그램들이 신체적 건강의 증진을 도모한다면,바쁜 현대 사회 늘어나는 스트레스나 우울증의 확산을 막는 프로그램도 공중보건의 일환이 될 수 있습니다.
과거 공중보건학이라는 개념이 처음 생겼을 당시 인류의 가장 큰 사망률의 원인은 주로 전쟁,전염병, 위생문제로 인한 질병이었습니다.그래서 공중보건학의 주된 관심사도 자연스레 질병과 부상의 치료와 퇴치가 되었고, 이 시기에 생긴 공중보건학과들은 의과대학 밑에 소속되어 의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들만 배울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실제로 의학적 지식이 있다면 공중보건학의 특정 세부 전공들은 배우는 것이 훨씬 수월하고,향후 진로 선택에서도 많은 시너지가 작용할 수 있습니다.하지만 공중보건학은 의학 이외에도 생명과학,통계학, 약학, 심리학, 법학, 사회과학 등 다양한 학문들과 서로 크게 상호보완적인 작용을 합니다. 질병의 원인이나 백신의 개발에 대한 생물학적 지식이 있다면 질병 퇴치를 위한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수행하는데 도움이 되고, 대중들의 심리와 소통하는 법을 잘 이해한다면 예방 캠페인을 좀 더 효율적으로 디자인할 수 있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공중보건학 석사과정은 흔히 지원자의 학부 전공에 제한을 두지 않습니다. 저와 함께 공부한 동기들 중에는 의사가 많긴 했지만,간호사, 약사, 저처럼 생명과학을 전공한 사람, 사회과학이나 심리학을 전공한 사람 뿐만 아니라 미디어를 전공한 사람,국제법을 전공한 사람, 헬스 트레이너도 있었습니다. 학부에서 배운 전공이 무엇이 되었건 공중보건학을 배우는데 도움이 되는 기초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공중보건학은 워낙 많은 것을 아우르는 학문이기 때문에 전공과 관심사에 따라 세부 전공과 진로는 천차만별로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나이와 경력 역시 학부를 바로 졸업하고 온 어린 학생들부터 실무 경험이 10년이 넘는 베테랑들까지 다양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공중보건학 석사는 통계 등의 테크니컬한 전공을 제외하고는 기초과학 분야처럼 학부를 졸업하고 바로 석사에 진학하기 보다 MBA처럼 실무 경력을 좀 더 쌓은 후 들어왔을 때 같은 내용을 배우면서도 얻어갈 수 있는 점이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배움에서 케이스 스터디, 팀 프로젝트 등이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어느 분야건 실제로 프로젝트에 참여하거나,일을 해본 경험에 따라 이러한 수업을 이해하는 깊이에 개개인의 차이가 큰 것 같습니다.
학교에 따라 세부 전공을 나누는 기준이나 포함시키는 범주가 조금씩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제가 다녔던 학교를 기준으로 공중보건은 크게 아래와 같은 세부 분야들로 나누어집니다.
질병역학 (Epidemiology) : 공중보건학의 개념이 처음 생겼을 때부터 존재했던 전통적인 분야로 기존에 잘 알려진 에이즈, 말라리아 등의 전염병 퇴치를 위한 구호 프로그램, 백신 개발 및 분포 이외에도 암이나 성인병같은 만성 질환의 발병율/사망율 감소를 위한 방안 등을 다루기도 합니다. 의학, 간호학, 약학이나 생명과학에 선행 지식이 있으면 유리하기 때문에 그 분야 전공자들이 현업에 많이 포진해있는 분야인 것 같습니다.
보건통계학 (Biostatistics) : 컴퓨터와 빅데이터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비교적 최근에 각광받기 시작한 분야로 통계 소프트웨어와 코딩을 이용한 데이터의 분석, 모델링 등의 전문가들을 양성하는 분야입니다.코딩이나 수학에 대한 기초지식이 필수이기 때문에 진입 장벽이 있다보니 중요도에 비하여 다수의 학생들에게 인기를 얻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사회보건과학 (Social and BehavioralScience) : 주로 사회과학, 심리학 등을 전공한 사람들이 많이 선택하는 분야이며 사람들의 행동,심리, 인지 성향 등을 분석하여 어떻게 하면 효과적인 메세지를 전달하고 공중보건 프로그램의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지 등을 연구하는 분야입니다. 인문학적이고 정성적인(Qualitative) 연구 뿐만 아니라 최근 경제학, 머신 러닝, 인공 지능 등을 적극적으로 접목하면서 앞선 두 분야에 비해 학문의 융합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 분야인 것 같습니다.
보건정책 및 경영학(Health Policy and Management) :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정책을 결정하고, 보건의료 시스템을 디자인하며 병원 및 보건 시설, 조직의 경영 등을 할 수 있는지를 연구하는 분야입니다. 정책과 경영학이라는 단어가 주는 묘한 권력감 때문인지(?) 대다수의 학생들이 처음 들어와서 가장 많이 관심을 보이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단순한 병원 경영 이외에도 각 나라의 서로 다른 의료복지 시스템의 디자인을 분석하여 의료 시스템이 없는 개발 도상국에 도입할 의료보험 시스템을 디자인한다거나,사보험 위주의 의료 시스템을 국민건강보험으로 바꾸는 등의 일을 하기도 하고, 의약 분업, 장기 요양보험 등의 보건복지 관련 주요 정책을 디자인하는 일 등을 할 수도 있습니다.
환경 보건학 (Environmental Health) : 기후 변화 및 환경 오염이 인구의 건강에 주는 영향 등을 분석하고 대책을 수립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현재의 환경 보건학은 주로 기초과학 연구에 많이 의존하여 있기 때문에 관련 전공자들이 많이 선택하는 분야인 것 같습니다.
모자보건학 (Maternal andReproductive Health) : 태아와 산모의 사망은 공중보건 및 위생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어 있고, 여러 질병의 감염 및 증상,치료 등이 태아나 유아에게서는 성인과 다르게 적용되기 때문에 모자보건학을 따로 떼어 세부 전공으로 두는 학교들이 더러 있습니다.개발도상국에서 특히 비중있게 다루어지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런 세부분야끼리 서로 겹치고 상충되는 부분이 많습니다.예를 들어 제가 일하고 있는 보건 경제학 (Health Economics) 분야는 각종 경제학적 원리들을 기초로하여 직접 비용 및 기회 비용,건강 지표 등의 데이터를 분석하여고,모델링 등의 테크닉을 통하여 크게는 국가의 정책 혹은 작게는 기업의 신약 개발, 가격 결정,유통 등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데 도움을 주는 학문입니다.통계학 소프트웨어와 보건통계학적 분석법을 많이 사용하지만 제가 공부했던 프랑스의 학교에서는 이 분야를 사회보건학으로 분류를 하였고,지금 일을 하는 콜럼비아 대학교에서는 정책 대학원 밑의 세부 전공으로 분류를 하고 있습니다.
공중보건분야에서는 석사 학위가 필수 요소처럼 여겨집니다. 아래의 질문들은 공부를 시작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지만 개개인의 선호도와 가치관에 따라 천차만별의 답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여 가장 답하기 어려웠던 질문이기도 합니다. 저의 지원 당시 경험을 바탕으로 객관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몇 가지 사항들을 나열하고, 개인적인 답변을 추가해보았습니다.
제가 취득한 학위의 정확한 명칭은 MPH(Master of Public Health)이며 공중보건 및 국제보건, 국제 구호 등의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MBA(Masterof Business Administration)만큼 통용되고 인정받는 학위입니다. 그만큼 인지도가 높고, 향후 취업 시 특정 기업이나 단체에서 MPH 학위를 필수 조건으로 내거는 곳도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MPH 학위를 수료하는 것을 선호하는 편 같습니다. 하지만 비슷한 학문을 다루거나, 공중보건학 중 특정 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프로그램의 경우 Master of Science (MS)나 Master in Management (MIM)같은 학위를 주기도 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배움의 내용이니 학위의 타이틀에는 너무 집착하지 않는 것이 맞겠지만 진로에 연관이 될 수도 있고, 학비에 차이가 나는 원인이 될 수도 있으니 지원 전에 미리 알고 체크를 해볼 수 있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앞서 나열한 세부 전공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공중보건학은 소위 말하는 공학 또는 의학과 비슷한 정도의 포괄적인 개념이고, 그 안에서 본인의 장기와 개성을 살려 다양한 진로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대다수의 MPH는 자율전공 형식으로 모든 학문을 다양하게 접해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거나, 두번 째 해에 전공을 선택하게 하고 있지만, 지원할 때 부터 세부 전공을 미리 선택하여야 하는 경우 내가 관심있는 분야가 무엇인지, 졸업 후 가능한 진로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충분히 미리 고민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잘 모를 경우에는 자율전공 형식의 MPH 프로그램을 선택하여 일단 공부를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저는 생명과학을 전공하던 학부생 시절부터 백신에 관심이 많아 질병역학 중에서도 전염병과 백신 콜드체인을 다루는 국제기구에 취업을 하고 싶은 마음으로 석사 학위를 시작하였으나, 자율 전공 프로그램에서 접한 통계학과 보건경제학에 매료되어 데이터를 이용하여 정책 결정 등을 분석하고 연구하는 현재의 일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나라의 어떤 학교에서 공부를 하느냐에 따라 학비와 생활비의 규모가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미국의 석사 프로그램은 높은 등록금으로 악명 높지만 전액 장학금을 받고 갈 수 있는 기회가 매우 적기 때문에 자비로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여야 할 확률이 높습니다.유럽의 경우 대학원 학비는 미국에 비해 월등히 낮은 편입니다. 장학금 역시 국내에서 유명한 장학금들 뿐만 아니라 공부하려는 국가에서 제공하는 장학금의 기회도 많으니 지원을 하며 미리 알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블레즈파스칼 장학금(링크)를 받아 학비부터 생활비까지 모두 2년간 지원을 받았습니다.
영어권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공부를 하고 싶다면 MPH 프로그램이 영어로 진행되는지 그 나라의 모국어로 진행되는지를 체크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스페인어나 프랑스어를 구사할 줄 안다면 국제기구를 비롯한 공중보건 분야에서 일하는데 큰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공중보건학은 여전히 유럽 선진국들과 미국에 학자들이 대거 포진하여 있고,학위 프로그램들도 집중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나라들은 국제 보건 및 구호 분야에서도 비중있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실무에 종사하는 사람들과의 접촉 기회도 많습니다.유럽과 미국의 학교는 각각 일장일단이 있는 것 같습니다.미국 학교의 경우 경제적 부담이 매우 큰 대신 한 해 선발하는 학생 수가 유럽 프로그램들에 비하여 월등히 많기 때문에 합격의 확률은 더 높다고 합니다. 또한 등록금이 비싼 만큼 학교에서 세미나 개최, 커리어 서비스 지원 등의 부수적인 지원을 유럽보다 많이 해주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학교를 졸업해도 요즘은 영주권이나 시민권이 없으면 미국 내 취업이 어려운 점과, 학생수가 많기 때문에 소수 정예로 수업하는 유럽의 프로그램들과는 수업의 질에 차이가 있을 수 있는 점 등이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학교의 인지도가 중요하다면 미국을 따라올 자가 없습니다. 북미 지역에는 공중보건학 석사 프로그램의 순위를 매겨놓은 웹사이트들이 꽤 있는데, 평가 기준마다 순위가 천차만별이기는 합니다. 물론 개인의 형편과 선호하는 세부 전공의 교수진을 보고 선택을 하여야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하버드,존스홉킨스, 예일, 노스캐롤라이나(UNC), 콜럼비아, 에이머리 등은 대부분이 반박할 수 없는 좋은 MPH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지 않나 조심스레 이야기해봅니다.
유럽에는 제가 공부한 프랑스의 EHESP(링크), 런던의 LSHTM(링크), 베를린의 Charité(링크) 이외에도 덴마크,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 각지에 영어로 운영되는 MPH 프로그램들이 있습니다.또 최소 2곳의 학교에서 공중보건학 과정을 이수하며, 졸업 후 복수 학위 (Dual Degree)를 취득할 수 있는 EuroPub Health (링크) 프로그램에 대부분의 유럽 국제/공중보건학 석사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학교들이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나라와 경험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고려해볼 만한 기회인 것 같습니다. 인턴을 하면서, 또 모의 WHO 프로그램을 참여하면서 미국와 유럽 각지에서 온 MPH 사람들을 만나 본 결과, 프로그램의 디자인과 수업들은 전반적으로 비슷하지만 같은 프로그램 안에서도 학생들 간의 개인차가 꽤 납니다. 결론적으로 어떤 프로그램을 선택하던 본인의 열정과 노력만 있다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낮은 학비와 학교의 위치, 장학금의 기회와 제2외국어를 배울 수 있다는 장점에 이끌려 프랑스 국립 보건대학원(EHESP; Ecole des hautes études en santé publique)을 선택하였습니다. 이 학교는 보건복지부 산하 공무원들의 교육을 전담으로 하는 교육기관으로 역사와 공신력이 있는 기관이고, 프랑스 및 유럽 등지와 아프리카 혹은 아시아 옛 프랑스 식민국가 등에서 활발하게 연구 및 실무 활동을 하고 있는 교수님과 박사님들이 많아 진로 상담이나 네트워킹에 도움이 많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또한 수업의 절반은 프랑스 교수님들이, 나머지 절반은 미국의 콜럼비아 대학교와 하버드 등에서 공중보건학 강의를 하는 교수님들이 출강을 오시기 때문에 적은 등록금을 내고 소수 정예의 그룹으로 미국 유수 대학 프로그램의 강의를 파리에서 들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비록 인지도가 미국 대학교에 비하면 떨어지기는 하지만 저는 결과적으로 최고의 가성비를 내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공중보건학 석사 프로그램들이 실무 경험을 쌓기 위한 인턴십을 적극 추천하거나 필수 과목으로 포함시키고 있습니다.앞서 말한 바와 같이 MPH는 MBA와도 같아서 이론만 배우는 것으로 끝나는 공부가 아닌 학습한 이론을 바탕으로 한 실무 적용 능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한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2년 동안 공부를 하면서 2번의 인턴 경험을 하였습니다. 처음 인턴 자리를 구하면서 썼던 구직 관련 글이 지금껏 많은 사람들로부터 질문을 받게 된 시발점이기도 합니다. 그 때 이후 추가로 알게 된 점이나 느낀 점들, 받은 질문에 대한 답변들을 정리하여 보았습니다.
우리 나라 대기업 공채와 달리 공중보건분야의 대부분의 일자리들은 수시 채용을 하며 공고 역시 크게 나지 않으므로 가고 싶은 곳의 홈페이지나 이메일 등을 통하여 수시로 채용 포지션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적극성이 필요합니다. 공고가 뜰 경우 고지된 절차대로 지원을 하면 되지만 인턴의 경우 채용 공고가 나지 않더라도 CV와 커버레터를 보낼 경우 긍정적인 답변을 보내오는 곳도 있습니다.일하고 싶은 곳에 조금이라도 아는 지인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어느 분야에서나 마찬가지겠지만 채용하는 포지션에서 요구하는 업무가 구체적으로 나와있을 경우 이를 수행하기 위한 기술과 능력이 있음을 CV와 커버레터를 통하여 어필하는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통계 분석 또는 프로그램 모니터링과 평가 등을 담당하는 직책의 경우 어떤 통계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줄 알며,어느 정도 난이도의 분석을 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것이 좋습니다.채용 공고가 없는 곳에 먼저 연락을 취하는 경우 관심사와 원하는 직무,이에 상응하는 능력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어필하면 답변을 받을 확률이 올라가게 됩니다.단순히 공중보건학을 전공하며 인턴십을 찾고 있다고 하는 것 보다, 질병 역학 중에서도 “만성 질환의 조기 예방에 관한 연구” 등의 구체적인 세부 전공분야를 밝힌 후 관련 과목 수강 경험, 업무 경험 등을 예로 들어 능력을 어필할 수 있겠습니다.여러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것도 큰 능력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WHO를 비롯한 각종 국제기구나 회사의 현 고위직 간부들 대부분이 개발도상국에서 일한 필드 경험이 있고, 그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책상에 앉아 정책을 만들고 가이드라인을 작성하는 일도 물론 중요하지만 공중보건 전문가들의 업무 중 필드에서의 프로젝트 수행은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필드 경험은 체력소모가 크고,위험요소들도 많기습니다.인턴은 이런 필드에서의 업무를 성과에 대한 부담이 비교적 없이 체험해 보고,적성에 맞는지의 유무도 판단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 같습니다. 설령 필드에서 일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도 공중보건의 목표가 인구의 건강을 증진하는 것이고,개발도상국의 국민들은 선진국보다 건강 증진에 대한 니즈가 큰 것을 생각하면 필드에서의 경험은 궁극적으로 공중보건을 공부하는 큰 목적을 이해하고 현실을 직시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2년간 2번의 인턴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첫 해의 인턴십은 필드에서(링크), 두 번째 해를 논문 작성 및 향후 진로와 연계될 수 있는 대학교 연구소에서 보내었습니다. 졸업하는 해의 인턴에서 수행하는 업무는 졸업 논문의 주제가 되기도 하고, 잡 오퍼로도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좀 더 신중하게 고민하여보고 결정할 것을 권하여 드립니다.
일반적으로 석사 지원 시 일정 수준의 영어 성적을 요구하기 때문에 석사 공부를 하며 토론과 과제 및 논문 작성을 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인턴십을 문제없이 수행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 학부생 때 하는 인턴은 전문적인 기술이나 배경지식 없이 하기 때문에 이력서에 넣어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니 석사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공중보건전문가의 업무를 체험해보고 싶다는 취지로 하는 인턴이라면 즐거운 경험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석사 공부를 하는동안 내가 하고싶은 것이 무엇인지,내가 가장 크게 기여할 수 있는 분야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졸업을 한지3달이 지난 지금 저는 보건 경제학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뉴욕에 있는 정책 분석 연구소에 연구원으로 1년 계약을 하였습니다. 저와 함께 공부한 동기들 중에서는 저와 비슷하게 연구원으로 취직을 한 사람들은 물론 소아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희귀병 치료약을 개발, 생산, 유통하는 프랑스 제약회사의 시장조사 컨설턴트로 1년 계약을 한 친구, 런던의 통계 기반 컨설팅 회사에 통계 전문가로 취업을 한 친구, 마다가스카르의 NGO에 필드 프로젝트 매니저로 간 친구도 있습니다. 개발 도상국에서 온 많은 동기들은 자기 나라로 돌아가 NGO나 정부 기관에 취직을 하였고, 책을 쓰고 있는 친구, 바로 박사 학위를 받기 위한 공부를 시작한 친구들도 있습니다.절반 정도의 졸업생들은 아직도 전 세계에 열려있는 구직의 가능성을 두고 취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선배들의 경험을 비추어 보았을 때 졸업 후 일을 시작하기까지의 유예기간을 1년 정도로 넉넉하게 두는 것 같습니다. 무한한 가능성만큼 많은 정보수집, 자기 어필, 노력이 필요할뿐만 아니라 해외로 취업을 할 경우의 준비기간, 행정처리 등에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공중보건학 및 국제 구호 분야에서는 대부분 국적과 인종을 구분하지 않고 채용을 합니다.석사 학위를 취득한 이후에는 공중보건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라면 전세계 어디든 구직을 할 수 있는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하지만 이 말은 반대로 일자리를 두고 전세계 모든 공중보건학 석사 졸업생들과 경쟁을 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 때 석사 학위 과정에서 배운 기술, 쌓은 네트워크,그리고 기존의 업무 경력 등의 여러 요소들이 원하는 곳으로의 취업을 돕는 무기가 됩니다.
다년 간의 해외 근무나 빈도 높은 필드 출장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물론 이런 힘든 요소들을 피할 수는 있지만 학문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의 특성상 선진국이나 제약 혹은 컨설팅 회사,기타 관리직에서만 일 하고 싶은 마음이 확고하여 타협이 어려울 경우에는 그만큼 취업의 문이 좁아진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또한 제약회사 및 큰 기업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제기구, 비영리기구, 연구소의 경우 최소 3-5년 이상의 경력을 쌓기 전까지는 짧게는 몇 개월,길게는 2-3년 단위의 계약직으로 채용을 하는 것이 관례입니다. 석사 졸업을 하더라도 몇 년간은 자신만의 경험과 특기를 기르기 위하여 늘 적극적인 “구직자 모드”에 있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단점들을 모두 극복할 만큼 공중보건학 전문가는 끊임없이 큰 보람과 뚜렷한 목표 의식을 느낄 수 있는 직업인 것 같습니다. 걸리는 시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떤 나라에서 어떤 분야의 일을 하건 내가 쏟아부은 열정과 노력이 이 세상을 좀 더 건강하고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하고 있음을 직접 느끼고,관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부와 일을 하면 할수록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책임감과 정의감이 커지는 것 같습니다.
처음 공부를 시작한 것은 막연한 공부에 대한 갈증과 도의적 책임감을 실현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바람에서였습니다.아무것도 모르던 제가 공부를 시작한 후 세부 진로 결정에 가장 많이 도움을 준 것도 이래저래 알게 된 같은 분야 선배들의 조언과 도움이었습니다. 이 곳에 쓰여진 대부분의 내용은 저의 경험에서 나온 답들이니 사실과 다른 내용은 지적해 주시고, 보충할 내용이 있다면 더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비슷한 진로에 관심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저의 글은 공중보건학 진로탐색101 정도로만 생각해주시고 다른 정보와 조언도 많이 들어보시길 바랍니다.앞으로 같은 분야에서 한국의 인재들을 더 많이 마주치고 함께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