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해는 작년보다 조금 더 나아진 것 같다.
2019년 생일 이후로 한번도 글을 쓰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우울증 약 때문인 것 같다. 2년 정도 꾸준히 복용을 했더니 감정의 기복이 많이 줄어들었다. 슬픔과 어두운 생각에 둔해진 만큼 기쁨에도 무뎌졌고, 예전에는 나를 자극하던 글 쓸거리도, 그림을 그릴 소재에도 반응하지 않게 되었다.
그 사이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여 2월부터 여름까지는 잠도 제대로 못자고 미친듯이 일만 했고, 바빠지기 전 지원했던 대학원에 합격해서 8월부터는 하던 일을 그만두고 공부를 다시 시작하였고, 그 과정에서 스위스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다시 뉴욕으로 이사를 왔다.
대부분의 이들에게 그렇듯 2020년은 나에게도 참 이상한 해였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돌이켜보면 나쁜 일보다 좋은 일들이 더 많았고, 지난 한두해간 일어난 여러가지 안좋은 일들을 극복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되는 해였다. 코로나 바이러스 덕분에 다니던 직장에서 예상치 못한 좋은 기회를 얻어 과분한 관심과 인정을 받았고, 열심히 일한만큼 보람도 경력도 쌓고 칭찬도 많이 들었다. 마침 또 학업으로 돌아가기 위한 퇴사 시기와 맞물려 박수칠 때 떠날 수 있었던 점도 운이 참 좋았다.
공부를 시작하면서 오랫동안 장거리 연애를 했던 남자친구와 드디어 2년간의 기다림 끝에 동거를 시작했고, 코로나 바이러스 덕분에 등교를 하지 않아도 되어 전망 좋은 집에서 편안하게 수업을 들으며 첫 학기를 보냈다. 지금 사는 집은 강 건너로 맨하탄 스카이 라인이 보이고, 옆 쪽으로는 브루클린 시내가 꽤 멀리까지 보이는데, 일을 하다가도 잠시 고개를 돌리면 마음이 편안해 지는 경치가 있어 참 행복하다. 이사와 동시에 고양이 김영만이에게 동생도 만들어주어서 예쁜 고양이 두마리와 네 식구가 오손도손 잘 살고 있다. 둘 다 재택 근무를 하다보니 매일 삼시세끼를 요리하는 재미도 쏠쏠하고, 24시간을 붙어 있는 게 아직까지는 소꼽장난같고 좋기만 하다.
코로나로 인력이 많이 부족해지면서 내 나이 또래의 혹은 어린 친구들이 팀에 많이 들어왔는데, 그들과 거의 매일을 붙어 놀다시피 하며 일을 시작하고 나서 좀처럼 찾기 힘들던 마음맞는 친구들도 사귀게 되었다. 덕분에 격리 기간을 외롭지 않게 보냈고, 스위스의 자연을 적극 활용하여 등산도 많이 다녔다.
운이 좋게도 여름동안 잠시 유럽의 코로나가 잠잠해질 동안 (지금 생각해보면 모두가 휴가를 가고 싶어하는 마음에서 온 눈가리개식 잠잠함이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베를린과 그리스로 짧은 휴가도 다녀왔다. 판데믹 때문에 좋아하는 바다도 못가고 한해가 끝나나 걱정했었는데 생각해보면 2020년의 시작은 친구의 결혼식 때문에 필리핀에서 보냈고, 그리스도 다녀왔고, 두군데 모두에서 다이빙도 했으니 참 운이 좋았다.
그런 과정에서 여름에 처음으로 2년간 먹던 우울증약을 줄이기 시작했고, 뉴욕으로 이사를 오는 기점으로 완전히 약을 끊었다. 약을 줄이기 시작하면서부터 예전처럼 주변의 아름다운 것들이 다시 자극으로 다가왔고, 그래서 그림도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슬프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약의 도움을 받지 않고 견뎌낼 수 있을만큼의 내성이 생겼고, 남자친구도 많이 도와준다.
입생로랑은 새해가 밝을 때 마다 직접 그린 연하장을 고마운 사람들에게 돌렸다고 한다. 몇 년 전 모로코에 갔을 때부터 나도 연하장을 돌려야겠다 생각을 했었는데 올해 처음으로 그 생각을 실행에 옮겼다. 50장이 넘는 엽서에 손수 편지를 써서 전세계 곧곧의 보고싶은 사람들에게로 부쳤는데 팔은 많이 아팠지만 기분이 참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여기 저기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있다. 그것만으로도 그들에게 감사해야할 일이다. 엽서를 받은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에 왜 진작 하지 못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박사과정 공부는 직장다니던 것에 비하면 여유롭고 쉽다. 어렸을 적 만큼 욕심이 많지도, 나 스스로에 대한 기준이 높지도 않아서 마음도 한결 편하다. 지금처럼 잔잔하게 행복한 일상이 일년 내내 계속 되었으면 좋겠고, 올해는 아무도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