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오리 새끼

by 서예슬



나는 어릴 적부터 유난히 뻔한 것, 남들과 같은 것을 싫어했다.

단순히 싫은 것을 넘어 어찌 보면 병적일 정도로 거부감을 느꼈다.


다섯 살 쯤이었던 것 같다.

엄마랑 같이 마트에 갔다가 과일용 도마를 사려고 멈췄는데, 엄마가 두 종류의 디자인 중에서 무얼 살지 망설였던 때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하나는 귀여운 갈색 아기 고양이 세 마리가 그려져 있는 도마였고, 다른 하나는 시커멓고 어딘지 잔뜩 심통이 나 보이는 못난 고양이 한 마리가 그려져 있는 도마였다. 처음 얼핏 보았을 땐 당연히 귀여운 아기 고양이가 그려진 도마가 마음에 들었지만, 엄마가 그 도마를 앞으로 내밀며 '당연히 이걸 사자고 하겠지?' 라고 묻는 순간, 나는 아니라며. 검은색 고양이가 그려진 도마를 사자고 말했고 그 도마는 최근까지도 우리 집 부엌 한 켠을 차지했었다.


초등학생 때에는 사생대회 때마다 왜 포스터에 쓰이는 '불조심', '물을 아껴쓰자'와 같은 문구들은 늘 아주 바른 고딕체로만 쓰여져야 하는지 그게 또 불만스러운 거다. 그래서 당시 내가 즐겨 쓰던 꼬부랑체로 멋들어지게 표어를 적어놓고는 어찌됐든 눈에 띄는 작품을 그려내었다며 수상을 기대해 보았지만 늘 입상 조차 실패했었다. 중고등학생 때에는 학교나 학원에서 토론 시간만 되면 '안락사'라던가 '사형 제도'와 같은 주제에 대해 토론을 할 때 실제 내 의견과는 관계 없이 늘 대다수의 친구들이 선택한 의견의 반대편에 서서 토론을 즐겼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왜 모든 대학생들은 토익과 봉사활동과 각종 자격증들을 취득하는데 청춘을 할애해야만 하는가, 왜 모두 대기업 입사를 목표로 공장에서 찍어나온 기계 처럼 스펙을 쌓아야만 하는가에 대해 분노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기까지 했었다. 덕분에 나는 그렇게 높지 않은 학점과 그다지 화려하지 않은 스펙을 가졌지만, 인생에 있어 길이 길이 기억 될 소중한 경험과 추억들을 가질 수 있었다.


'A는 A여야만 한다' 식의 사고 방식은 예술을 하는 사람에게 있어 그 무엇보다 치명적인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에게 예술은, 사고의 틀을 확장시켜 주고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새롭고 혁신적인 무언가를 제시하여 주는 역할을 해 주는 유일한 창구와도 같기 때문이다. 그러한 예술의 역할을 소중히 여기는 나에게는 그 무엇도 '당연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되며, '원래부터 그랬다'는 말에 안주하는 것은 세상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이렇게 뻔한 것을 싫어하고, 항상 Why not에 대한 강박증에 가까운 버릇을 갖고 있는 것이 어찌보면 별나고 피곤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예술에 관련된 일을 하기로 마음 먹은 이상 나는 그런 버릇에 굉장히 고마움을 느낀다. 그리고 언젠가는 꼭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 했던 기발한 사고를 저지를 수 있도록 더욱 삐뚤게, 계속 해서 [미운 오리 새끼] 마인드를 소중히 품고 살아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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