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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예슬 Jun 09. 2017

여행의 끝자락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아무리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더라도 하루에서 이틀 정도의 첫 적응기만 지나면 금세 그 숙소가 나의 집인 듯, 그 거리가 늘 내가 휘적거리고 다니던 거리인 듯 익숙해진다. 어디로 여행을 가든 여행이 아닌 생활을 하려는 여행 스타일을 가진 사람으로써 나는 남들 보다 조금 더 빠른 시간 안에, 조금 더 깊은 익숙함을 느끼고는 하는데. 처음엔 그렇게 신기하고 특별해 보였던 것들이 어느 순간 특별함이 아닌 '일상'이 되어 템즈강에 우뚝 솟은 타워브릿지나 파리의 밤을 반짝여주는 에펠탑 같은 것들도 그저 하나의 다리, 하나의 탑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렇지만 모든 여행은 언젠가 끝이 나니까. 하루가 되었든, 한달이 되었든, 일년이 되었든 어쨌든 이 여행엔 끝이 있으니까. 여행의 끝자락에 다다라 '진짜 일상'으로 돌아가기 까지 하루, 이틀 정도의 시간이 남기 시작할 때면 그제서야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처음 보았을 때 보다도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지금 내 눈에 담기고 있는 너무도 익숙한 이 풍경들이 며칠 뒤면 또 한동안은, 어쩌면 평생을 살면서 다시 만질 수 없을 그림이 되어 내 기억 한 켠에 꼭꼭 담겨질 거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 왠지 모르게 모든 것들이 미치도록 아련하게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한 가지 또 신기한 건, 그때 정말 내 눈에 밟히는 건 타워브릿지도 에펠탑도 아닌. 항상 같은 골목에서 연주를 하던 버스커라던지, 자주 들르던 집앞 슈퍼 주인 할아버지의 얼굴이라던지,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던 집 앞 도로의 표지판 같은 것들이라는 것. 내가 잠시 떠나온 그 시간들을 가장 일상적인 것으로 만들어 준 그 모든 아주 작은 것들 하나 하나가 애틋하여 무엇 하나 쉽게 지나치지 못 하고 아주 천천히, 천천히, 담아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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