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치라 불리던 내가 ‘부족함’에서 빠져나온 이야기
#1. 길 위에서 느꼈던 비난의 무게
어릴 적부터 내게 ‘길’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남들에겐 익숙한 풍경이 내게는 늘 낯선 미로 같았고, 몇 번을 간 길도 마치 처음인 듯 헤매기 일쑤였다. 사람들은 나를 ‘길치’, ‘방향치’라 부르며 웃어넘겼지만, 그 농담 섞인 말들은 내 안에 무거운 화살이 되어 박혔다. 누군가를 앞장서서 안내할 수 없다는 무력감은 나를 침묵하게 만들었고, 타인의 뒤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니며 내 목소리를 죽이는 법을 먼저 배우게 했다.
#2. 내가 진짜 무서워했던 것
문득 깨달았다. 내가 무서워했던 건 ‘길을 잃는 것’ 자체가 아니라, 길을 헤맬 때 쏟아지던 타인의 비난과 조롱 섞인 원망이었다는 것을. 그들의 시선은 나로 하여금 끊임없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나는 왜 남들처럼 평범하지 못할까?’
그 깨달음 끝에서, 나는 조심스럽게 용기를 내어 홀로 제주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3. 틀린 길에서 만난 뜻밖의 선물
혼자 떠난 여행은 예상대로 길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길을 잘못 들어섰음에도 눈치 줄 사람이 없으니 마음이 한없이 가벼워졌다. 오히려 잘못 든 그 길에서 우연히 마주한 이름 모를 꽃과 바다의 풍경은, 정해진 길로만 갔다면 절대 맛보지 못했을 황홀한 자유를 선사했다.
우리는 맞다고 믿는 길에서 벗어날 때마다 실망하거나 좌절한다. 하지만 그 길에서 벗어났기에 뜻밖의 기회와 만남, 때로는 운명을 바꾸는 선물을 받기도 한다.
‘틀린 길’이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선물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몸으로 알게 된 순간이었다.
#4. 결핍은 배분의 문제일 뿐이다
나의 뇌를 공부하며 비로소 나 자신과 화해했다. 인간의 뇌는 저마다 특화된 영역이 다르다. 나의 공간 인지 능력이 남들보다 조금 약하게 태어났다면, 그것은 결코 부족함이 아니라 ‘배분의 차이’ 일뿐이다.
어딘가가 덜 주어졌다는 것은, 반대로 다른 어딘가에 더 많은 것이 놓여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간이 완벽하지 않기에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고, 서로 다른 부분을 채우며 세상은 굴러간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탓하는 일이 아니라, 내게 더 주어진 것을 어떻게 쓰느냐라는 생각에 닿았다.
#5. 안경이 필요한 사람에게 소리치지 마세요
시력이 나쁜 사람에게 “왜 글씨를 제대로 읽지 못하느냐”라고 소리치는 것은 무지한 일이다. 그에게 필요한 건 호통이 아니라 ‘안경’이라는 도구다. 공간 인지력이 조금 부족한 나에게는 내비게이션이라는 도구가 있으면 그만이다.
나는 길을 찾는 능력 대신, 남들보다 깊은 공감력과 풍부한 언어, 그리고 창의라는 근사한 도구를 선물 받았다.
#6. 나는 나로서 이미 충분하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나를 부끄러워하거나 낙심하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기준으로만 보면, 나는 늘 부족한 쪽에 서 있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까지 더하고 빼보니,
나는 누구보다 잘나지도, 누구보다 부족하지도 않은 채
내가 가야 할 길에 필요한 지도를 이미 가지고 있었다.
어떤 것은 덜 주어진 대신, 어떤 것은 넘치도록 건네져 있었다.
어쩌면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공평한 방식으로
우리 각자에게 필요한 몫을 나눠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느리지만 깊게, 나는 오늘도 나만의 지도를 그려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