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광야를 지나야 했을까?

지독한 광야의 끝에서 ‘나’라는 신이 보낸 가장 큰 선물, 자기사랑

by I am that

나는 교회를 다닌 적이 있다.
지금은 교회를 다니지 않지만, 분명 신을 믿는다.
그 신이 하나님이든, 부처님이든, 우주의 법칙이든,
혹은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질서든
존재한다는 감각만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


〈신의 악단〉이라는 영화를 보게 된 것도
종교적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그저 어떤 메시지가 있을지 궁금했고,
아무 기대 없이 편하게 보러 갔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이 계속 흘렀다.
슬퍼서도, 기뻐서도 아닌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진동 같은 감정 때문이었다.


영화의 줄거리는 잘 보이지 않았다.
대신 음악이, 가사가
누군가 나에게 직접 말을 걸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내가 이 영화를 보게 된 이유가
이 감각 하나 때문이었던 것처럼.


“왜 나를 깊은 어둠 속에 홀로 두시는지
어두운 밤은 왜 그리 길었는지
나를 고독하게, 나를 낮아지게
세상 어디도 기댈 곳이 없게 하셨네”


이 가사는
내가 지나온 과거의 고통과 상처가
얼마나 의미 있는 시간이었는지를
느낌이 아니라 ‘언어’로 건네받는 경험처럼 다가왔다.


세상에 정말 혼자라고 느껴질 만큼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었던 시간들.
죽음까지 떠올릴 만큼 고통스러웠던 그 시기에는
정말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죽을 만큼의 고통의 시간 덕분에
나는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 시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 상처를 들여다보는 것,
내 믿음을 바라보는 것,
그 아픔이 내게 전하려는 지혜를 듣는 것뿐이었다.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주께서 나를 사용하시려
나를 더 정결케 하시려
나를 택하여 보내신 그곳, 광야”.


나는 늘 남의 눈치를 보며 살아왔다.
인정받기 위해, 사랑받기 위해,
버려지지 않기 위해 애쓰느라
정작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한 번도 묻지 않았다.


광야를 지나는 시간 동안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
내가 진짜 원하는 것,
그리고 내가 남들과 다른 이유.


나는 이 땅에
남에게 인정받으러 온 존재가 아니었다.
내가 가지고 태어난 달란트가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 알기 위해
가짜 자아와 가짜 욕망이
산산이 깨져야 했던 것이다.


그것은
내가 어렴풋이 느끼고만 있던 메시지를
너무도 정확하게 언어로 말해주고 있었다.
그 어두운 과거가 내게 준 선물은
엄청난 자기 사랑이었다.
타인의 인정만을 갈구하던 내가
사실은 얼마나 오랫동안
나 자신의 사랑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그제야 알게 되었다.


그 시간에 나는
살아오며 처음으로
나에게 말했다.


“미안해.”


그리고 그 순간부터
조금씩 현실이 변하기 시작했다.
같은 상황이 와도
이제는 전과 다르게 느낀다.
나는 여전히 광야를 지나고 있지만,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 지나고 있다.


지금 광야를 지나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그 시간은
당신이 잘못해서도,
부족해서도 아니다.
어떤 가치가 있어서,
어떤 이유가 있어서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이라는 것을.


그 끔찍하게 고독했던
끝이 보이지 않던 광야의 밤들이
언젠가는 선물처럼 느껴질 때가
반드시 온다는 것을.


광야는
나를 단지 버리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진짜 나를 만나기 위한 시간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벌을 받은 게 아니라,
비로소 나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