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함이라는 오래된 오해에 관하여
한동안 글을 쓸 수가 없었다.
감당이 안 되고, 정리가 되지 않는 감정들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나의 평온함을 위해, 그리고 괜찮은 하루를 보내기 위해
일부러 안 좋은 소식이나 영상, 뉴스 등을 피하며 살아왔다.
그렇게 살다 보니 현실도 조금은 다르게 느껴졌고,
마음도 훨씬 편안해졌다.
현실에서 마주하는 안 좋은 말들과 상황들조차
애써 좋은 쪽으로만 보려고 했으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 문득,
이게 아닌 것 같았다.
괜찮은 게 아니라
그냥 억지로 덮어두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결국 이렇게 쌓인 감정들이
언젠가는 터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 안의 무언가가
이제는 그걸 마주할 힘이 생겼다고,
한 번 믿어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용기를 냈다.
뉴스를 보고, 슬픈 영화도 보고,
그동안 일부러 피했던 이야기들을
마주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정말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동안 억눌러왔던 분노, 억울함, 슬픔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고,
감당하기 힘들 만큼 이해할 수 없는 현실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전쟁으로 희생당하는 아이들, 학대받는 동물들,
가족들이 흩어지고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그 한 개인들에게는 삶이 무너지고 세상이 사라지는 일들이,
어떤 ‘대의’라는 이름으로 허용된다는 것이 견디기 힘들었다.
인간이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지도 보게 되었다.
그 감정들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이 분노와 슬픔은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내 안에 머물던 감정이었다는 것을.
어릴 적 느꼈던 억울함과 무력감을
나는 오랫동안 회피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그 밑바닥에는
“약한 존재는 지켜지지 못한다”는
뼈아픈 관념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래서 강해져야 한다고,
더 가져야 안전해질 수 있다고.
그 믿음 속에서 나는
약한 나를 부끄러워했고,
보이지 않게 숨기며 살아왔다.
약한 존재를 보며 유독 크게 반응했던 이유는,
그들 속에서 투영된 나의 아픈 모습 때문이었다.
내 안을 깊숙이 들여다본 그때,
스스로를 ‘약한 존재’라는 틀에 가두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건 사실
어린 시절의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낸 방어기제였다.
나는 그렇게 나를 보호하고 있었다.
약해 보이지 않기 위해 감정을 숨기고,
무서워도 괜찮은 척하며 버텨내는 방식으로.
하지만 그 모습이
나 스스로에게는 비겁하게 느껴졌고,
그래서 나는 그런 나를 오래도록 비난해 왔다.
그런데 이제는
그 시절의 나를 비난하는 대신,
이해로 마주하게 되었다.
무서워서, 두려워서
그렇게라도 나를 지키려고 했던 어린 나를
사랑으로 안아주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나는 약한 존재가 아니라,
그저 약해 보이는 상황과 강해 보이는 상황을
경험해 왔을 뿐이라는 것을.
약함과 강함은 좋고 나쁜 것이 아니라,
그저 필요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상태였다.
어떤 때는 약함을 드러내는 것이 강함이 되고,
어떤 때는 강함을 내려놓는 것이 더 큰 강함이 된다.
그래서 이제 선택한다.
지금, 어떤 모습으로 있을 것인지.
스스로를 약한 존재라고 믿고 있을 때는
절대 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현실은 변하지 않을 수 있고,
세상은 여전히 아프고 슬픈 일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 속에서
무엇을 선택할지는 결국 나의 몫이 된다.
그저 분노하고 비난하는 데 멈출 것인지,
아니면 작게라도 행동으로 옮길 것인지.
내가 그렇게까지 괴로웠던 이유도,
고통받는 존재들 속에서
내 안에 깊이 자리 잡고 있던
“나는 약하다”는 믿음을
모른 척하고 똑바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똑바로 마주했을 때,
그 고통을 통해
왜 이 길을 가야 하는지,
왜 꼭 이루고 싶은지 더 명확해졌고,
그만큼 더 단단해졌다.
인간이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지도 보았지만,
동시에 얼마나 선해질 수 있는지도 보았다.
그 모든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돕고,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지금 다시 글을 쓸 수 있다.
이제 나를 믿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나를 믿는다는 것은
감정을 더 이상 피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버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고,
세상이 어떠하든 중심을 지키겠다는 선택이다.
그리고 이제
나를 보호해 주던 어린 시절의 낡은 믿음들에게
고마웠다고 작별을 고하고,
자유롭게 선택하는 삶으로
나의 길을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