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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락 Aug 20. 2023

<9> 첫 선항암

투병 일기 - 허투양성: tchp 1차

• TC: docetaxel + carboplatin 세포항암

• HP: herceptin + pertuzumab 표적항암




D-day. 항암치료의 시작.

심장이 쿵쾅거리지는 않았지만, 조금 두려웠다. 다른 건 몰라도 어지러움과 오심은 느끼고 싶지 않았다. 피할 수는 없겠지만 가장 염려되는 부분이었다.

카페에서 ’입덧 심했던 사람이 어지러움과 오심을 더 느낀다더라‘하는 댓글을 보며, 비교적 입덧이 심하지 않았던 나는 참 다행이라고, 부디 조금만 하고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날과 달리 아침부터 준비해야 할 건 없었다. 드라마를 보느라 늦게 잔 덕에 아침엔 더 자고 싶었다. 복도가 조금 소란해지는 7시 반에 일어나 세수를 했다. 케모포트가 오른쪽에 있어 불편한 관계로 어설프게 왼손 하나로 해야 했다.


아침식사는 양식코스. 전날 식사 쟁반에 조사서가 있어 이미 체크를 해 둔 상황이었다.

브로콜리 수프와 모닝빵, 데친 양상추, 완숙 계란프라이, 작은 소시지, 감자샐러드, 두유, 딸기잼과 버터가 있었다. 웬만한 호텔조식 메뉴를 병원에서 즐기다니~ 만족도가 높아지는 입원생활이다.


오늘은 비교적 이른 시간에 회진이 있었다.

“잘 될 거야. 완전 없어질 거야! 이따 잘해요!”

사실 과장님은 처방만 해줄 뿐, 주사는 간호사선생님이 놔주니, 잘 받으라는 말밖에 없으신 듯했다. 그래도 환한 미소는 잊지 않으신다.

“선생님, 저 통증이 한 번씩 느껴지는데요.”

“그럴 수 있어요. 근데 염려하지 말아요. 암 때문에 아픈 것도 아니고, 수술해도 느껴질 수 있고. 그거 걱정 안 해도 돼!”

첫 대면부터 그랬지만, 과장님의 반말에는 어딘가 자신감이 묻어나 있다. 걱정을 없애주는 치료에 대한 확신. 상대가 어리다고 무턱대고 하는 반말과는 다른, 어떤 말의 힘이 느껴졌다.


아침 혈압체크를 하는 간호사 선생님에게 몇 시에 시작하냐고 묻자, 외래는 10시 반, 입원은 11시에 시작한다고 했다.

이후 관련 교육이 시작됐다. 오늘 투여될 항암치료약물의 이름과 특징, 투여시간, 보험여부 등을 설명받았다. 항암치료 중 나타날 수 있는 다양한 부작용 증상과 앞으로 조심해야 할 음식, 생활 등 주의사항도 확인했다. 면역력이 떨어질 거라 사람 많은 곳에 가도 위험하고, 작은 상처도 나선 안 된다. 손톱 옆에 거스러미도 만지지 말아야겠다.




잠시 후, 항암치료를 위한 수액 바늘을 케모포트 바늘에 연결하고, 치료 중 올 수 있는 구토증상을 예방하기 위한 선처치 약도 투여받았다. 항구토 경구약도 한 알 먹었다.


30분이 흐른 뒤, 준비가 끝난 줄 알았더니 웬 팔주사도 하나 있다고 했다. 졸라덱스라는 호르몬성 항암제 중 하나인데 다른 약과 달리 주사만 한 대 맞으면 된단다. 부작용 전처치 약과 함께 투여하는 거였다.


“이제 주사는 다 케모포트에 맞는 줄 알았어요.”

“바늘이 좀 많이 두꺼워서 아프실 거예요. 팔에 맞는 거긴 한데 무서우시면 배에 놔드릴까요? 혈관주사가 아니라서 지방 있는 배에 맞으면 덜 아파요.“

얼마정도 되길래 배에 맞나 싶어 평소 쳐다보지 않던 바늘을 눈으로 찾았다.

“에?? 선생님!! 아악!! 저 배에 맞을게요!! … 바늘을 봤어요, 보고 말았어...“

얼른 침대 등받이를 눕히고 누워 주사를 맞았다.

“…그러게요, 배는 별로 안 아프네요.“

“피도 많이 안 나실 거예요. 살짝만 눌러주세요.”

바늘은 지금 생각해도 놀라운 크기였다. 배에 맞으니 할만한 주사였다.


이어서 첫 링거형 항암제를 연결했다. 오후 12시.

삼페넷[트라스투주맙/표적] 들어갈 거예요.  시간 반 정도 맞을 거고요. 좀 빠르게 떨어질 거예요. 이따 올게요~”


30분쯤 흘렀을 때 상태를 보러 온 간호사선생님이 물었다.

“안 졸리세요? 다른 병실 분들은 다 주무셔서요.”

“정말요? 저는 많이 안 졸리네요.”

“대부분 시작하면서부터 졸리다고 주무시거든요.”

“와, 시작하면서부터요?”

“어지럽다고도 하시고, 바로 반응 오는 분들도 계세요.“

그랬다. 암전문병원이니 여기 입원한 환자들은 수술 아니면 항암치료를 하는 분들이다. 그러고 보니 약이 투여될 즈음부터 원내는 아주 고요해졌다.


“식사 나오면 편하게 드시면 돼요. 첫 항암이신데 좋네요.”

당장은 반응이 심하지 않은 것 같아 다행스러웠다.

“머리는 그냥 밀고 오신 거예요?”

“네, 과장님도 벌써 밀고 왔냐고 물으시더라고요. 통증 있을까 봐 어차피 할 거 미리 했어요.”

“잘하셨어요. 통증 오기도 하고, 또 빠지는 거 보면 많이 놀라시더라고요.”


마주친 의료진 모두 친절하다 느끼며 치료받고 있지만, 유독 상냥한 목소리로 살뜰하게 대해주는 분이라 간호사선생님 이름을 알고 싶었는데, 명찰이 뒤집혀있어 보질 못했다. 복도에 나갔다 오는 길에 방호수 옆에 담당 간호사님 성함이 있는 걸 알았다. <칭찬합니다> 코너에 꼭 써줄 테야.


점심식사가 나오고 야무지게 다 먹었다. 오심이 오든, 화장실을 가든, 지금부터는 체력싸움이다. 버틸 힘을 오직 밥심에서 얻어야 한다.


간호사 선생님은 딱딱 시간을 맞춰 다음 약으로 갈아주었다.

퍼제타[퍼투주맙/표적] 시작할게요. 요거는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좀 계셔서 잘 지켜보셔야 해요. 한 시간 정도 맞을 거예요. 시간 내에 들어가야 돼서 빨리 들어갈 거예요. 쉬세요.”


식사 후 영화를 보고 있었는데 얼마쯤 지나 잠이 쏟아졌다. 나는 워낙 잠을 잘 자는 편이라 수면제를 먹어본 적은 없지만, 잠을 청하기 위한 약을 먹는다면 딱 이런 느낌일까. 안 자고는 버틸 수 없는 약의 힘이 시작되었다.


그때가 2시. 간간히 간호사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고 눈도 한 번씩 떴으며 대답도 한두 번 하였으나, 일어날 기력은 없었다.

오전 간호사 선생님과 교대한 오후 남자 간호사 선생님이 들어왔다.

“이제 항암 다 끝나셨고요. 수액은 더 맞으시겠어요? 네, 그럼 계속 맞으시고 저녁에 빼드릴게요.”


시계를 보니 5시였다. 잠든 후에 바뀐 약은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일단 끝났다고 하는데 내 몸은 졸렸던 것 외에 큰 반응이 없어 안심이 되었다. 반응은 며칠 뒤에 세게 올 수도 있지만.

- 자는 동안 일반 세포항암제인 탁소텔[도세탁셀/1시간/30분 전처치 필요)]네오플라틴[카보플라틴/1시간]이 들어갔다.


“선생님, 진짜 졸리네요.”

“항암약보다도 아마 전처치한 약이 많이 졸리실 거예요. 그게 감기약 성분이랑 비슷해가지구…”

아, 항구토 약물이 졸리게 하는구나. 그래, 자면서 맞는 게 속 편할지도 모르겠다.


나의 첫 항암은 그렇게 끝이 났다. 항암치료가 뭔지도 몰랐던 한 달 전에 비하면 나는 제법 이 과정에 대해 숙지하고 있었다.

총 다섯 가지의 약이 내 몸에 흘러 들어갔고, 시간이 조금 지나 증상은 세 가지가 나타났다.


첫 번째는 초저녁부터 시작된 양쪽 손목의 저림 증상이다. 무의식 중에 팔목에 껴둔 폭이 두꺼운 머리끈이 꽉꽉 조이는 느낌이랄까. 주물주물 만지면 좀 나아졌지만 10cm 정도의 폭이 계속 묵직하게 저려왔다.


두 번째는 새벽에 화장실을 두 번 간 것. 3시와 6시. 심하지 않아 지사제를 먹을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 일단 더 지켜보고 약을 먹으려고 했다. 지사제로 인해 혹시 변비라도 오면 아주 고생을 한다기에 서두르지 않았다. 카페에 찾아보니, 간식으로 먹은 뉴케어에 다소 기름진 성분이 있어 그럴 수 있다고 하여 당분간 먹지 않기로 했다.


세 번째는 등 근육통. 잠결에 ‘어? 이거 근육통 오는 거다!!!’ 싶어 바로 감지하고 서랍에서 타이레놀을 꺼내먹었다. 카페에서 말해준 준비물 중 하나였다. 근육통이 온 후에 약을 먹으면 효과가 크지 않다는 글을 여럿 봤었다. 그리고 온몸에 근육통이 오면 밤을 꼴딱 새운다는 얘기도 많았다. 두통, 근육통, 설사, 변비, 오심 등 모든 부작용에 대한 약은 일반 약국에서 사 먹으면 된다고 했다. 간호사선생님한테 얘기하여 의사의 처방을 받아 전달받기엔 시간을 놓칠 수 있다. 그래서 욱신거림이 오자마자 바로 일어나 약을 하나 먹었다. 이후 통증이 좀 왔지만 금세 사그라들었고, 5시간 간격을 두고 추가로 먹었다.


투여 중 푹 잠들었던 세 시간 때문인지, 늦은 새벽까지 잠이 오지 않았다. 아기와 함께 자면 엄마는 밤새 뒤척이는 아기 곁에서 깊이 잠들지 못한다. 가수면상태랄까.

어두운 밤에 첼로 연주곡을 틀어놓고 멍하니 앉아 있자니, 육아로 인해 생긴 습관적인 불면증인지, 약물 부작용으로 인한 일시적인 불면증인지 헷갈렸다.



날이 밝았다. 매미는 대차게 울고, 햇살은 밝기만 하다. 그리고 오늘은 그 햇살보다 밝은 우래기 보러 가는 날. 어린이집 가는 길에 많이 울었다는데, 꼬옥- 오래- 안아줘야지.

나의 비타민, 생각만 해도 힘이 난다.



23.08.18. 금요일 아침.

다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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