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 병원 선생님께서 처음 시험관을 해보자 이야기를 꺼내셨을 때 나의 첫 질문은 "저 직장인인데 괜찮을까요?"였다. 야근도 적고 비교적 워라밸이 좋은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 시험관 도중 발생하게 될 갑작스럽고 잦은 연차 사용과 스트레스 관리 등 걱정되는 부분이 많았다. 선생님께선 "직장 다니면서 하시는 게 더 좋아요."라고 용기를 주셨다. 시험관을 하기에 적당한 때라는 게 어디 있겠냐만, 괜히 시험관을 할 수 없는 이유 100가지쯤이 떠오르던 차에 선생님의 한 마디에 도전해볼 만하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네!"라고 대답했고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 해보기로 했다.
난자 채취 시술 당일 날
내가 또, 스불재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인이 시험관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절대 아니었다. 시험관을 시작하게 되면 생리 2~3일 차에 병원을 방문하고 그 이후 과배란 주사를 맞는다. 보통 이른 오전 시간에 맞아야 하다 보니 회사 냉장고에 넣어두고 휴게실에서 눈치를 보며 내 배를 푹푹 찔러대는 일이란 그리 즐거운 경험만은 아니었다. 게다가 난자 채취까지 경과를 보기 위해서는 병원에 3~4번 방문을 하면서 난포가 잘 크고 있는지, 채취할 준비가 되었는지를 확인받아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점심시간을 쪼개서 몰래 병원에 다녀오거나 연차 사용이 불가피할 때는 마음이 더 힘들었다. 시험관을 한다는 사실을 직장이나 주변에 알리지 않고 준비했기에 더 고독한 투쟁이었다. 마지막엔 안 되겠다 싶어 부서에 가장 마음이 잘 통하는 여자 동료분께 알렸고, 그분에게 정신적으로 업무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늘 내게 "아가는 발이 작아 오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라는 말을 해주셨는데 정말 정말 큰 마음의 위안이 되었다. 동료에게 알리기 전에는 점심시간에 병원을 찾았다가 대기 환자가 많아 엉엉 울면서 진료를 포기하고 온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후에는 조금 늦을 것 같은 상황이 생겨도 센스와 배려로 무장한 동료분과 실시간으로 상황을 공유하면서 10분, 20분의 공백을 채울 수 있었다.
올여름 실컷 먹은 무화과
Work and IVF + life balance
누군가 내게 시험관을 하려고 직장을 쉬거나 그만둔다고 이야기한다면 최대한 직장과 병행해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크게 세 가지 이유다. 일단, 직장을 다니면서 난임 시술에 임하게 될 때 경제적인 여유로움 하에 좋은 의료 시설과 좋은 의료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난임 시술에 도전하는 커플 중 상당히 많은 분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느낀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차수"로 표현되는 시험관 시술 한 번에 2~300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들고,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는 "n차수" 동안 들어가는 비용은 n배가 된다. 난임 시술에 대한 정부 지원금이 많이 늘어나고는 있다지만 혜택을 받는다 해도 자기 부담금이 만만치 않고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서 식비도 꽤나 많이 들어간다. (정말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작고 소중할지라도 통장에 매달 꽂히는 월급이 시험관을 준비하는데 든든한 힘이 되었다. 두 번째로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 피곤하다고 온종일 누워서 보내는 주말이 지나고 나면 더 힘이 빠지는 경험을 종종 한다. 해가 뜰 때 일어나서 해가 지고 캄캄해지면 잠자리에 드는 것은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데 꽤나 중요한 요소다. 미우나 고우나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직장으로 향하고, 퇴근 후의 값진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직장인의 라이프 패턴은 시험관을 준비하는데 생각보다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몸을 많이 쓴다거나 교대 근무 등 규칙적인 생활이 어려운 직장이라면 일과 시험관을 병행하는 게 마냥 쉽지는 않겠다는 생각도 든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이유. 직장과 난임 시술을 병행하면 난임이라는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극한의 감정에 오래 매몰되지 않고 적당히 내 삶을 지켜가며 직장인으로서의 나와 난임을 하는 나 사이의 균형을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출근해서 바쁘게 업무를 하고 친한 동료들과 수다를 떨다 보면 잡생각은 사라지고 생기가 도는 걸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