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계획을 미뤄야 했던 이유
회사 근처 내과를 우선 찾았다. 선생님께선 수치를 보시더니 상급 병원으로 진료 의뢰서를 작성해 주셨고, 감사하게도 빠르게 예약 일정까지 잡아주셨다. 당시 T4 호르몬 수치가 4.91이었는데 정상범위(0.35~1.7)를 한참 벗어나 있어 긴박한 상황이라 판단하셨던 것 같다. 갑상선 초음파도 보았는데 초음파상으로 갑상선 염 등의 이상 소견이 따로 보이지 않아 나의 병명은 '그레이브스 병'으로 진단이 내려졌다. 내가 나를 공격하는 자가면역 질환의 하나였고, 약물 치료나 방사선 치료를 먼저 시도하고, 차도가 없으면 수술까지도 생각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결혼 유무와 자녀 유무를 물으셨는데, 결혼은 했고 자녀는 없다고 말씀드렸더니 표정이 안 좋아지셨다. 다음 질문으로 임신을 계획 중에 있는지를 물으셨고 그렇다고 말씀드리니 당장은 임신 시도를 멈추는 게 좋겠다고 의견을 주셨다. 갑상선 기능의 항진 또는 저하는 임신 시 산모와 태아 모두에게 위험한 병이라고 하셨다. "올해는 꼭 임신에 성공해서 토끼띠 아가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좌절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이 조금 길어지겠지만 지금까지 내 몸을 잘 못 돌보았던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카페인도 끊고, 더 좋은 질의 잠을 자려고 노력하고, 무엇보다 나 스스로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려 노력했다.
흔히 갑상선 항진에 복용하는 약인 메티마졸은 임신 초기 태아의 선천성 기형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갑상선 수치가 점차 안정되어 가며 의사 선생님과 상의를 통해 임신을 하게 되더라도 문제가 없는 안티로이드(PTU)로 복용 약을 변경했다. 약을 바꾸고 치료가 시작된 지 6개월이 넘어가며 수치는 정상 범위로 들어왔다. 약을 끊고 완치가 되었다면 가장 좋았겠지만, 지속적으로 약을 유지하고 있는데도 수치가 평균보다 낮아지지 않는 것을 보아서는 아마도 평생 약을 먹어야 할 것이라고 한다. 처음으로 감기나 눈에 난 다래끼처럼 가볍게 지나가는 일상의 질병이 아닌 장기적인 치료가 필요한 질환(?)을 앓게 되며 건강의 중요성을 뼛속깊이 새기게 되었다. 건강을 잃으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남편과 행복하게 늙어가려면 우선 우리 부부가 서로 건강을 잘 살펴줘야겠다 다짐했다. 올해 초 갑상선 진료를 봐주시는 내분비내과 선생님께서는 이제 임신 준비를 시작해도 괜찮겠다는 의견을 주셨고, 1년 만에 다시 난임 병원을 찾았다. 임신 준비를 잠시 쉬는 기간 동안 우리 부부는 더욱 단단해져 있었고 아이도 금방 생길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함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