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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여자 Oct 24. 2023

친구의 아이가 태어나고 아빠가 응급실에 가시던 날

서른 즈음에 우리가 겪게 되는 일

쉽지 않았던 22년의 가을.


 작년 가을은 내 인생에 가장 힘든 시기 중 하나였다. 원래 나는 뜨거운 여름이 지나가고 코끝에 바람이 차가워지는 이 시기를 참 좋아했다. 가을에 태어나 크리스마스를 너무 좋아하는 내게 생일이 있는 10월부터 12월까지의 시간은 지난 9개월간 열심히 달려온 내게 보상과도 같았다.

 하지만 작년만큼은 이 시간이 내 기대와 너무나 다르게 흘러갔다. 우선 인생에서 이토록 내 노력과 바람을 따라주지 않았던 일이 있었을까 싶었던 아이를 가지는 일에서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갑상선 항진을 앓고 난 뒤 가까스로 회복을 하던 시기였는데, 호르몬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오고 한참이 지나도 아이는 생기지 않았다. 매달 어김없이 시작되는 칼 같은 생리 주기가 얼마나 원망스럽던지. 때가 되면 알게 되겠지라고 스스로 다독이며 마음을 추스르려 노력했지만, 우울증 초기인가 싶을 정도로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나기도 이유 없이 세상만사에 짜증이 나기도 했다.




세 가지 소식이 들려온 하루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출근길에 친구의 아이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이를 간절히 기다렸고, 어렵게 가졌던 친구라 건강한 출산을 마음속 깊이 응원했던 나였지만, 친구의 좋은 소식에 기쁘고 축복하는 마음과 함께  나에겐 아이가 오지 않는 걸까라는 시샘이 들었다. 이런 마음을 갖는 내가 너무 보잘것없고 못났다는 생각이 들어 더 괴로웠다. 다행히도 당시 챙겨야 할 업무도 많았던 데다가 사내 공모전 준비까지 겹쳐 바빴던 덕분에 무거운 감정을 겨우 내려놓고 있던 차, 오후 3시쯤 동생에게서 카톡이 왔다.

 "누나 놀라지 말고 들어." 메시지 내용을 보자마자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회의 중에 바로 자리를 박차고 나와 동생에서 전화를 걸었고, 동생은 아빠가 응급실에 실려가셨고 정확한 이유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해주었다. 아빠의 병명은 뇌하수체 선종이라고 했다. 지난해부터 두통이 있으셔서 같이 큰 병원도 찾았었는데 CT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1.9cm짜리 혹이 발견된 것이었다. 우리 가족은 그 누구도 힘들거나 우울한 내색 없이 담담히 지금이라도 발견되어 잘 되었다며 수술하면 당연히 괜찮아질 거라고 얘기를 했지만, 사실 그 누구도 담담하지 않았다. 퇴근길에 엄마와 전화로 어느 병원에서 수술을 받으셔야 할지 상의를 하고 전화를 끊고는 차 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리고 같은 날 밤, 친구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받았다.



그렇게 어른이 되어간다


 정말 이상한 날이었다. 오전에는 새로운 생명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들었고, 오후에는 아빠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밤에는 친구의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부고가 들려왔다.

 생로병사(生老病死),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네 가지 고통이라는 사건들이 모두 머무른 하루였다. 서른을 갓 넘긴 내 나이가 이 모든 걸 자연스레 경험할 수밖에 없는 나이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가지기 적당한 나이이면서 부모는 늙고, 병들어 가는 시기. 생과 사의 중간에서 위, 아래 세대를 모두 보살펴야 하는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나이에 내가 도달했구나 싶었다. 아이를 가지려고 노력했던 것만큼 부모의 건강을 살피는 일에도 소홀하지 않아야겠다. 언젠가 우리를 찾아올 아이가 건강한 부모님과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하나 더 생겼다.


+ 다행히 아빠는 수술을 잘 마치시고 전보다 더 건강하게 지내고 계십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누구보다 좋아하실 것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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