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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나무 Jan 22. 2021

수입은 줄고 시간은 많아져서하는 일들 2

문구점 사장이 되고 싶었던 어린이 시절이 떠올라 포스터를 만들었다.

어릴 적 문방구를 좋아해서 하염없이 구경하던 때가 있었다. 나중에 크면 문구점 사장이 되어볼까?라고 생각하면 가슴이 막 두근거렸다. 초중고 시절엔 필통과 노트, 필기구 욕심을 부리곤 했다. 공부는 그저 그랬다. 딱히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고 중간만 하는 애. 말도 많지 않고 조용한 애.


7살에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집에 놀러 온 동네 아주머니들이 나를 보며 '무슨 애가 눈이 슬프게 생겼데에~'라고 했던 말도 기억이 난다. 생각이 많은 꼬마는 예민해서 그런지 키가 안 컸고, 편식도 심했다. 생각한 것들을 말하는 것보다 글로 쓰는 걸 좋아해서 가끔 엄마에게 시를 써서 보여주기도 했다. 아마도 문구에 대한 애착은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친구가 생기기 시작하고, 부모님의 말에 반발심이 생겨나고, 나만의 생각이 무럭무럭 자라날 무렵.

무언가를 평생에 걸쳐 꾸준히 좋아해 본 건 아마도 문구가 유일한 것 같다. 열렬히 좋아하지도 않고, 가끔은 까먹고 멀리 하기도 했다가 마음이 적적해지면 다시 찾게 되는 것. 그래서 오래 좋아할 수 있었나 보다.


한때는 종이와 펜을 좋아하는 마음을 쓰는 것보다 답답한 마음을 쓸 때 더 많이 이용했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담임 선생님을 이유 없이 미워했다. 선생님의 날카로운 말투 하나에도 상처 받던 어린이였다. 그럴 때면 분노에 가득 차서 또다시 펜을 들고 종이에다 싫어하는 마음을 가득 적었다. 그렇게 한가득 적고 나면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공책을 덮어버렸다. 그 마음을 종이에 다 채울 동안 딱히 내가 미워할 이유를 찾지 못할 때도 있고, 선생님이 만약 이걸 봤다면 얼마나 속상할까 하는 마음에 눈물이 나기도 했다. 여하튼 무언가를 미워하는 데는 참으로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좋아하는 것들은 그냥 옆에 두기만 해도 되는데.



나의 친동생은 첫 직장으로 모닝글로리라는 문구회사를 다니다가 교과서가 디지털로 바뀌게 된다는 뉴스가 나올 무렵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시대에 발맞춰 UI/UX 디자이너가 되었다. 나는 서른 살이 넘어서야 뒤늦게 디자인을 업으로 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떠올랐던 거다.

맞다, 나 문구 좋아했지?

그렇게 코로나가 찾아오고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이제는 문구 디자인도 할 수 있으니, 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스티커, 노트, 다이어리, 포스터... 대부분 종이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런데 제작을 하게 되면 1권의 노트를 사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이 들고, 그 노트를 소진하기가 무척 어렵다. SNS를 많이 하지도 않을뿐더러 내 주위엔 노트와 펜을 쓰는 친구들도 많지 않다.



10년 후에 사라질 것과
1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것


10년 후에는 사라질 것에 대한 뉴스가 쏟아진다. 많은 것들이 생겨나고 더 많은 것들이 사라지는 세상에서 그중의 하나가 펜을 들고 노트에 메모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인쇄된 종이를 보는 것도 어쩌면 미래엔 사라질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기억하지 못하면 애초에 없던 것들이 될까 봐 두려워서 모든 것들을 저장하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집집마다 서버를 구비하고, 언제든 추억을 불러올 수 있도록 시스템이 갖춰질 수도 있겠다.


1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것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10년이 지나도 사람들은 여전히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추억과 기억을 간직하고 싶어 할 거라는 것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가장 소중한 건 종이에 담고 싶다. 10년이 지나도 내 손으로 기록하는 습관만은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종이에 인쇄된 글자를 계속 보고 싶다. 미래를 살게 될 아이들에게 종이가 주는 따뜻한 느낌, 촉각, 종이 냄새라는 것을 전해주고 싶다. 그리고 이 종이는 나무에서 왔고, 나무가 얼마나 우리 삶에서 귀한지, 그리고 너의 몸과 마음도 나무처럼 자라고 있다고 알려주고 싶다.


세상은 너무 빠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사람과 사회와 정신은 나무의 속도처럼 느리다고. 그러니 세상이 빠르게 간다고 너의 삶도 달려갈 필요 없다고. 느리게 새겨진 것들이 오래가는 법이라고.


아무튼, 이런저런 생각 끝에 어린이 학습 포스터를 만들었다. 처음엔 텀블벅 펀딩을 받았으나 생각보다 홍보효과가 적어 아는 출판사 사장님이 운영하는 온라인 카페에 올려 학원을 운영하는 선생님들에게 판매했다. 조만간 네이버 스토어센터이도 올릴까 한다.



 






https://smartstore.naver.com/padorimungu

네이버 스토어에 파도리 문구 포스터 판매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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