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먼저 정하자. 좋아하는 단어들을 내놓았다. 나는 다방과 극장을 이내언니는 생각과 산책을 골라냈다. 그렇게 가장 어울리는 조합이 된 것이 ‘생각다방 산책극장’ 검색해보니 아무도 쓰지 않는 이름이다. 오케이! 그럼 엽서를 하나 만들어서 들고 다니면서 알릴까? 언젠가는 세상에 존재할 장소를 미리 알리는 거지. 안창마을에서 찍었던 필름 사진하나를 꺼내 그 위에 생각다방 산책극장 이란 이름을 새겼다. 200장 정도 인쇄를 했던 것 같은데(지금 이 책을 발간하는 소요유 출판사의 윤희쌤이 인쇄하는데 자투리가 남으니 만들고 싶은 엽서 하나 찍어주시겠다고 해서 만들게 되었던 것이 기억났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면서 다음에 꼭 놀러오라고 말했다. 장소가 생길지 안생길지도 모르면서 뻔뻔하게 말하는 우리나, 장소도 없는데 ‘알았어 꼭 놀러갈게’ 하고 대답하는 사람들 모두에게는 순간 엄연히 존재했던 곳. 그런데 소식을 알릴만한 방법도 없고 마땅히 나눌 곳도 없어서 블로그를 일단 만들었다. 블로그 주소가 생기니까 왠지 정말로 장소가 생긴 것 같아서 더 적극적으로 홍보를 하고 나선 것 같다. 꿈은 이루어진다 하였던가, 남구청 뒷 골목에서 장소를 보자마자 여
기다! 외칠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시간동안 가슴에 품고 다닌 ‘생각다방 산책극장’ 이름 하나 덕분이었다.
이름에서 엽서로 엽서에서 블로그로 블로그에서 집으로 확장된 장소는 다시, 집에서 블로그의 기록으로 다시 처음처럼 이름만이 남았다. 5년 만이다. 이 느슨한 친구 공동체의 중심은 ‘집’이라는 장소였는데 그게 없어지니 모일 수 있는 곳이 없었다. 5년은 생각보다 꽤 긴 시간이라 시시때때로 변하는 우리들을 붙잡아 둘 수도 없었다. 다들 이젠 다른 것이 하고 싶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생각다방 산책극장’이란 이름으로 누구도 활동을 이어서 하지 못하게 된 것이 안타깝긴 하지만 너무 순도 높은 시간이었기에 그대로 두고 싶기도 하고. 모든게 애매했다. 내 것도 아니었다. 지나고 보니 비로소 알게 된 거지만 생각다방 산책극장은 누구의 소유도 아닌 모두의 장소였다.
절대 못 끝낼 것 같았던 자극실의 천장이 천쪼가리들로 가득차서 아름다워졌다. 둘이서 별말도 없이 한 명은 목공 본드를 바르고 한 명은 사다리 위에 올라가기를 반복, 빗소리를 들으며 이틀에 걸쳐 태어난 작품. 그래 작품이라고 해줘야지.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낼 때의 이 지겨움이란. 번잡함이란. 그래도 마지막 천을 붙일 때의 감격이란!! 그리고 맥주 한 캔을 나누며 이런저런 아이디어들을 나눈다. 노동후의 맥주는 언제나 꿀맛. 창 밖에는 빗소리 그리고 공짜로 얻은 남구청 뒷마당의 나무들이 코앞에. 그리고 이제까지 해온 벽이며 바닥이며 천장 작업들을 돌아보니, 다시 또 짠해진다. 성에 안찰만큼씩 띄엄띄엄 찔끔찔끔 한 것 같은데도 생각다방 산책극장은 장마철의 나무처럼 자라고 있다. 2011.6.25. (이내)
여러분도 다방 블로그에 자신의 이야기 폴더를 만들어서 요즘 누구를 만나고 있는지 무얼하고 있는지 무얼 고민하고 있는지 이야기 들려주셔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우린 만나기 힘드니까요. 어떤 놀이를 제안해 주어도 좋구요. 2013.7.28. (박조건형)
‘생각다방 산책극장’이 나에겐 무엇이었을까를 요즘 들어 가끔 떠올려봅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문득 그래요. 못골역의 그 곳이 아련히 그리운 이유에 대해서, 문득 문득. (…) 이 공간은 그냥 제 일상의 ‘틈’이 될 수도 있고, 당신들에게 던지는 내 버둥거림일수도 있겠군요. 그렇지만 중요한 건(보기와 달리) ‘마음 나누기’를 두려워한다는 것을 가끔 느끼는 내가 조금은 용기를 가졌다는 증명이기도 하구요. 그런 폴더에요. 2013.8.18. (고짱)
귀찮았다. 난데없이 대안공간을 찾아보라는 교수님. 갑자기 일주일 짧아진 마감시간까지. 게다가 언제부터인지 이런 곳들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지라, 버겁게 느껴지는 과제였다. 좋은 취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왠지 폐쇄적이고, 외부인들이 참여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선입견. 그런데 생각다방 산책극장은 이런 생각을 했던 내가 무안할 정도로, 이름에서부터 나오는 친숙한 느낌처럼 편한 공간이었다. 사람들이 꽤 찾아왔었다. 내가 가고 나서도 세 분이 더 오셨다. 다들 이런 편안함을 찾아 왔던가 보다. 그동안 스무 살이라는 나이를 먹기까지 옆은 보지도 않고 다른 것들은 생각하지도 않고 살아왔다. 그것들이 당연히 옳은 것들이고 최적화된 사회인 줄 알고 살았다. 어려서의 불평들도 어른이 되면 자연스레 사라지고 그 불평들도 어느새 부끄러운 것들이 되어 버릴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옆을 돌아본 사람들이다. 고착된 사고방식을 벗어버리는 것에 20대를 모두 써야했다고 말하는 이 사람들. 우리가 죽어도 놓지 못할 것 같은 돈에 대해 이들은 벌써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다. 철저하게 계획을 추구하는 우리들과는 다르게 이들은 즉흥적인 실천을 한다. 실패에 좌절하는 우리와는 다르게 이들은 실패를 또 다른 하나의 결과물로 본다. 목적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계획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는 공간, 그리고 사람들이다. 내가 온 뒤로 생각다방 산책극장에 방문한 어떤 분은 프랜차이즈 업체를 이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러한 작은 움직임들이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생각하는 도중에 ‘어리석은 자의 우직함이 세상을 조금씩 바꿔나갑니다’라는 제목의 수필이 생각났다. 결국 이런 사람들을 통해서 사회가 변해왔고, 변하고 있고, 변해가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사는 것이 정답이 아니고 저렇게 사는 것도 역시 정답은 아니다. ‘그래, 아님말고’라는 그들의 간단한 모토는 스무 살에게,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2011.11.2. (강승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