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지《백년어》6호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1동 산27-9번지 금강공원 안에 있었다. 총면적 3만 1,600㎡이며 1967년 국내 최초의 동물원으로 개장하였다. 코끼리·낙타·캘리포니아물개·사자·호랑이·원숭이 등의 포유류를 비롯하여 조류와 파충류 등 60여 종 500여 마리를 사육했다. 동물원 안에 있는 생물과학관에는 여러 종류의 박제동물표본을 전시했다. 2002년 1월에 영업을 중단하였다.
-인터넷 백과사전 “동래금강동물원” 검색결과
나는 행간의 시간을 읽어보려 했다. 과거완료형으로 적혀있는 지금 여기의 말들은 무엇인가? 가만히 생각하자니 다녀간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들뜬 그들의 모습이 비친다.
몇 해 전 가을, 친구와 함께 그 장소, 동래 동물원을 찾아갔다. 둘 다 금강공원에 동물원이 있었다는 사실도 몰랐으며, 단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이었다. 애틋한 기억도 없고 추억도 없는 우리는 왜 그곳으로 갔던 것일까? 카메라 하나씩 들고서 말이다. 지하철역 근처에 내려 금강공원까지 가는 길을 물어 한참을 걸었다. 이미 철거되어 정말 공터만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한 시절 북적이며 생명이 머물던 곳의 자취가 궁금했다. 우린 그것의 흔적을 만나고 싶었고 한적한 길을 따라 거슬러 올라갔다.
식물원을 지나 유원지로 들어서니 우리 앞에 촌스러운 모습을 한 놀이기구들이 깔깔대며 웃는다. 우선 반갑다. 뱅글뱅글 돌아가는 오리 배들에게 출구는 이 세상에 없는 단어인 듯, 천연덕스럽게 오랜 세월을 그 자리에서 맴돌고 있다. 시간의 빛에 흩어진 색들이 나를 이끈다. 친구도 이미 그 오래된 놀이기구들에 반했는지 연속해서 셔터를 눌러대고 있다. 나의 36장 후지필름에 상像이 맺힌다. 그리고 이내 딸깍, 필름이 끝까지 감긴 소리가 들리고 한 롤의 필름을 꺼냈다. 고개를 들자 자연스레 시선이 머문 그 곳엔 알록달록 헬륨가스로 가득 부푼 인형과 바람개비가 양철통 나무 가지 끝에 피어있었고, 아이 손에 쥐어진 소프트아이스크림은 내 어린 시절 가족과의 유원지 나들이를 떠오르게 하였다. 예기치 못한 순간 무의식의 생각과 만나지는 곳, 우리의 삶 속에 드문드문 숨겨진 장소들.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 보았다. 그곳에 숨은 빈터가 보인다. 동물원의 자리는 결국 발견하지 못하였지만 헤매던 길에서 만난 풀이 무성하던 곳. 비밀의 장소라도 만난 듯 설레던 느낌은 여전히 생생하다.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았던 곳에서 삶의 흔적들과 마주쳤다. 그곳에 있어야 할 물건들인지 고민하는 건 불필요한 듯 너무도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그 사이에 우리만 부유하는 이방인 같아 부끄러운 마음에 얼른 그 자릴 비켜왔는데…그렇게 머쓱한 것들을 외면하며 지내온 나의 삶이 보인다.
보이지 않아도 여전히 있는 것. 그래서 더 애써야 하는 중요한 것이 있다.
인화되어 사진으로 남은 그날의 기억들이 2011년을 살고 있는 나에게 다시 찾아왔다. 설익은 열정과 욕망들이 왼편에서 그리고 불편하게 앉아있는 내가 오른편에서 서로를 본다. 사이는 비어 있다. 비어있기에 언제든 다가갈 수 있지만 아마 곧 의자만 휑뎅그렁하게 남을 것이다. 과거와 현재는 만날 수 없으니. 다만, 너무 멀어져 그리워질 때 한번 씩 얇은 종잇장으로 남겨진 기억하나 가만히 보다 말을 걸다가 그렇게 또 떠나겠지.
건물 한구석 거미줄, 녹슨 철문, 벗겨진 페인트 벽, 바닥에 내려앉은 먼지는 활기 넘치던 과거 어느 시점의 동래동물원과 만나게 해주는 유일한 통로였다. 예전의 모습 그대로를 확인 할 수 없어도 그보다 더 완벽한 과거를 품고 있는 비밀스런 흔적이다. 요즘은 언제나 새 것, 깨끗한 것, 다른 것을 원하고 만들어내지만 오래되고 낡은 것, 변함없는 것, 보이지 않는 것이 진짜이야기의 시작일지도 모를 거란 생각을 했다. 그렇게 숨어서 내가 진실로 다가와주기만을, 가만히 들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바람의 때가 묻은 시간이 말을 건다. 오늘은 그 속삭임에 마음 기울여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