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900km

by 히요

2012년 5월 18일 프랑스 생장에서부터 나의 두 다리로 걸어서 7월 8일 스페인 묵시아에 도착했다. 52일 동안은 걷는 것이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삶의 짐은 가방 하나가 전부였고, 각자 걷는 속도가 다르니 함께 출발한 친구들과도 길 위에서 모두 헤어졌다. 걸음으로 생활의 영역이 정해지니, 내 안의 욕망이 더욱 선명해진다. 잠시 쉬고 싶다, 맥주를 마시고 싶다, 커피를 마시고 싶다, 잠이 온다, 씻고 싶다, 저 사람이 좋다, 지금 이 상황이 싫다, 발바닥이 아프군, 덥다, 화장실이 급하다, 목이 마르다. 걷는 것 말고는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없는 순례길이기에 모든 욕망을 바로바로 하나씩 해결했다. 그만큼 단순한 몸의 요구들.


같은 길이지만 다르게 걷는다. 같이 걸어도 다른 길을 밟는다. 나는 무엇을 기억할 수 있을까? 종이 위에 남은 하찮은 기록들, 기록되지 못한 시간을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멈춰선 길에 주저앉아 마신 와인 한 모금, 머무른 곳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라르카에 있었던 호세의 알베르게. 그곳에서 우리는 3일 보냈다. 호세는 아주 친절했으며, 낮에는 순례자를 위한 식사를 함께 준비하기도 했다. 파스타와 샐러드가 대부분이었지만, 나는 그때 소금과 식초와 올리브오일만으로 샐러드 드레싱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심플 이즈 딜리셔스! 이렇게 간단한 거였어? 저녁에는 ‘1층 BAR에 있는 맥주와 커피를 마음껏 마셔’하며 흔쾌히 가게를 맡기고 그는 퇴근을 했다. 길을 걷기 시작한 지 일주일정도 지났을 때였다. 이제 걷는 게 몸에 익었지만 피로가 몰려오던 참에 정말 잘 쉬었다. 멍하게 가게 앞 테이블에 앉아 햇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순례자들을 구경하기도 했던 시간. 나는 그 시간이 여전히 가장 기억에 남는다.


오늘 옆에서 걸었지만, 내일 지구 반대편에서 살아갈 사람들. 하지만 지금 내 옆에 있는 이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하는 그 마음으로. 수박이 스페인어로 무언지 몇 번이고 들어도 절대 기억할 수 없는 것처럼 보고 있어도 그리웠다. 보고 있어도 자꾸 잊었다. 그럴 때가 있다. 오늘 지금 여기가 너무 실감나게 느껴지는데, 동시에 곧 사라지는 것이 너무나 확실해서 애틋한 그런 순간. 산티아고 길 위에서는 아주 자주, 아니 매일 그랬다. 모두의 소원이 적힌 종이를 가방 깊숙이 넣고 한참을 걸었다. 이 걸음의 끝, 세상의 끝이라 생각한 그 곳에 마침내 0km가 적힌 표지석이 보였고,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 떠올랐을 그 말을 나도 붙잡았다. ‘이제 시작이야!’



배낭 속 짐들도 모두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고, 컴퓨터를 다시 켜고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두 마리의 고양이도 이제는 평온해 보이고, 보고 싶은 친구들과도 하나 둘 재회하고 있어요. 여행에서 돌아왔네요. 정말 정말로. 돌아온 다방은, 친구들이 돌봐준 덕분에 무너지진 않았습니다만…다시 손봐야할 구석이 한둘이 아니네요. 에구구. 더워서 끈적끈적해진 몸을 움직이는 게 힘들지만, 살살 요것저것 만지작거리다 보면은 언제 그랬냐는

듯, 짜잔~ 우리들의 장소가 탄생하겠죠. 믿어요.

매일매일 다방에서 일어나는 작고 소소한 일들을 블로그로 다시 전하도록 할게요. 샤샤샥 변신해가는 다방을 구경하면서, ‘한번 가야지’ 하는 마음을 키워보세요. 완벽하게 준비해놓고 기다리는 거, 우리 취향 아닌 거 아실테니! 만들어가는 과정들, 하루들을 더 잘 챙겨볼게요. 고마워요.


그리고

넓고 넓은 세상에서

작고 작은 여기에서

만난 우리가 즐겁게 살 수 있기를.

다녀왔습니다!!!!!!!



2012.8.6. (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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