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겨울은 내내 돌아다녔다. 캐나다를 통해 쿠바에 갔다가 다시 한국에서 네덜란드로, 스코틀랜드, 영국에서 다시 한국. 내 자리를 잃어 다시 내 자리를 찾는 것처럼 정처없이 다녔다. 그 때 가지고 다닌 수첩을 보다가 내가 아바나 거리에서 계란 12개를 떨어뜨려 깼던 일, 서른이 된 나에게 끝없이 던진 질문들. 무엇이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일까? 나의 어떤 능력이 타인을 위할 수 있을까? 나를 생각하면 무엇을 떠올렸으면 하는가? 무엇을 지향하는가? 어떻게 죽고 싶은가? 어떤 사랑을 하고 싶은가? 함께 살아가는 건 어떤 걸까? 예술은? 나의 하루는? 여행을 하는 이유는 뭐지? 살아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가? 나에게 환상이란? 기다리고 기다려야만했던 쿠바에서의 시간동안 점점 더 나를 궁금해했다.
가로로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았고, 볶은 커피콩을 사기 위해 산속을 헤매며 걷다가 개미집을 밟아서 개미떼가 내 발등을 깨물고 지나갔던 날, 에어콘을 너무 세게 틀어 덜덜 떨면서 야간버스를 타고 밤새 산티아고데쿠바를 향해 달린 길, 여름의 크리스마스, 맛있게 요리한 쿠바식 랍스터 요리, 올긴 버스터미널 대합실 바닥에 앉아 밤늦게까지 아바나로 가는 버스를 기약 없이 기다렸던 일, 약속은 언제나 변경될 수 있고 취소될 수 있다는 느긋함, 스마트 폰으로 사진을 찍는 것이 영 어색해서 필름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그저 셔터를 눌러댄 기억, 모히또를 마시며 우리는 각자의 10년 후를 상상했고, 란초루나 바닷가에서의 짧은 로맨스! 매캐한 시가의 연기, 어디서나 울려 퍼지던 살사 음악들, 길거리에 팔던 다 퍼진 퍽퍽한 면에 소스조차 심심한 맛의 그 스파게티가 한 번씩 생각났다. 혁명의 나라는 답답할 만큼 여유롭고, 부러울 만큼 충분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언제나 약간 부족했고, 그 틈을 타 행복을 누렸다. 와! 좋아. 편해. 기뻐!
낯선 도시에서 여럿의 나를 만났다. 불안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불안과 함께 있기 위해 애쓰며 중심을 잡았다. 부서지진 않았지만 언제라도 무너질 상태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이방인처럼 여행했다. 스물아홉과 서른 사이에 쿠바가 있었다. 그곳에 있었다. 그날의 햇살도 더위도 소음도 한꺼번에 떠오른다. 왈칵 눈물과 함께 쏟아지는 시간들이 있다. 살면서 그리운 곳들을 많이 만드는 건 좋은 일일까?
두려움과 설레임은 뇌의 같은 부분의 지배를 받는 감정이라고, 누군가 말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아. 그래도 시간은 지나가겠죠. 2013년 마무리, 다들 잘 하고 계신가요. 정리의 시간은 누구에게든 필요한 것 같습니다! 모두들 감기 조심, 또 글 남길게요.
2013.12.5. (고짱)
¶ 잠깐 Tip
쿠바 란초루나에서 머물렀던 까사 주인의 드레싱 레시피를 배워왔다. 나는 ‘쿠바소스’라고 기억하며, 가끔 특별한 날 만들어 주변에 맛보인다. 카리브해의 맛!
쿠바소스 : 식초, 소금, 다진마늘, 다진양파, 설탕, 레몬즙 그리고
오일을 많이 섞어서 새콤달콤짭짤하며 톡 쏘는 향과 고소한 맛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