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을 바꿀 수 있다는 상상이 던지는 질문
(스포 있음)
러닝타임 147분
국가 미국, 영국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출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코브 역), 와타나베 켄(사이토 역), 조셉 고든 레빗(아서 역), 마리옹 띠아르(멜 역), 엘렌 페이지(아리아드네 역)
감상 횟수 3회
나만의 한마디 감상평
자막 없이 봤던 1회 차 관람 때는 무슨 이야긴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기내에서 봤던 두 번째는 스토리를 정확히 이해했고, 최근 본 세 번째에는 바꿀 수 없는 운명과 코브의 슬픔을 느꼈다.
처음부터 끝까지 설정된 상상의 세계이지만 있을 법한, 가능할 법한 서사를 창조한 감독에게 찬사를, 오히려 상상이기에 완전히 자유롭게 펼쳐나갈 수 있는 세계를 선택한 감독이 부럽다.
줄거리 간단 요약
여러 층의 꿈을 통해 무의식의 세계에 접근할 수 있는 코브. 그는 아내 맬의 살인 용의자로 오인받아 집을 떠나 타국에서 부유한다. 어느 날 거부인 사이토로부터 경쟁사인 피셔의 내부 분열을 사주받고, 성공하면 살인자 누명을 없애주기로 약속받는다. 사이토, 아서, 아리아드네, 임스와 함께 피셔의 꿈속으로 겹겹이 들어가 그의 무의식을 바꾸는 데 성공하고, 임무 수행 중 사고로 무의식의 가장 아래층에 빠진 사이토를 구해 현실로 무사히 돌아온다.
내 머릿속에 남았던 장면
현실이 아닌 꿈속 세계를 살아가기 위해 극 중 강한 수면제를 들이켜고 대부분의 삶을 누워 살아가는 사람들. 마약 중독에 쩔어 정상적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현실의 누군가들에 빗댄 장면인가 생각이 들었었는데, 생각해보니 우리 모두가 무언가에 저렇게 스스로의 정신을 내맡기고 잠이 든 것처럼, 마치 죽은 것처럼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소름이 끼쳤다.
설명이 생략된 몇 가지 설정
1. 수면제를 맞고, 같은 장소에서 잠이 들기만 했는데, 어떻게 특정한 타깃의 꿈으로 함께 들어갈 수 있을까?
2. 무의식의 가장 아래 단계에서 사이토와 코브는 어떻게 곧바로 현실로 돌아올 수 있을까? 그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3. 꿈 속 설계자는 설정된 비주얼 이미지들을 어디에다 저장하는 걸까? 구체적인 세부 사항들에 대한 기억이 흐릿해지지 않고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
나만의 주절주절 감상평(스포 있음)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이 그려내는 세상에는, 원하지 않는 일이 일어나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무력감과 동시에 "만일 그러지 않았더라면", "만일 달랐다면"의 여지가 짙게 서려 있다. 이 두 가지 요소가 한 데 섞여 있다는 것이 굉장히 이질적으로 느껴지는데, 한편으로 놀란 감독이 굉장히 인간적인 태도를 지닌 사람이라는 생각도 든다. 팍팍하고 냉철하고 때론 받아들이기 어려운 폭력적이고 잔인한 일들로 가득 찬 이 현실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는 냉소주의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가능성이 있을까? 하고 극복하려는 의지를 내보이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창조해낼 수 있는 꿈속 무의식의 세계에 중독되어 현실보다 꿈을 사랑하게 된, 그리고 끝끝내 현실과 꿈을 구분하지 못하게 된 코브의 아내 맬. 맬의 생각을 바꾸고 현실의 삶으로 돌아와 살게 하기 위해, 코브가 선택한 방법은 "이게 현실이 아니야"라는 생각을 무의식 깊이 넣어두는 것이었다. 이러한 무의식의 통제는 반대로 맬이 스스로의 삶을 포기하도록 하는 역설의 도구가 된다. 무의식적 생각이 너무 강하게 현실과 꿈속에서 작동되어 어디에 있어도 현실이 아니라는 생각을 맬에게 덧씌우게 된 것이 비극이다.
c.s. 루이스의 문학비평집 <이야기에 관하여>을 참고하면, 이 요소는 "예언의 성취를 막기 위해 취한 행동이 예언의 성취를 이루는" 오이디푸스형 설정이다. 루이스에 따르면, 이러한 종류의 재앙은 보는 이로 하여금 '경외감'과 '당혹감'을 동시에 안겨준다. 이런 요소를 갖춘 서사는 운명과 자유의지가 어떻게 결합될 수 있는지, 심지어는 자유의지가 어떻게 운명의 작동방식이 되는지를 보여준다고 한다.
모든 꿈을 설계하고, 무의식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가졌던 코브는 바로 자신의 그 힘으로 인해 가장 소중한 존재인 아내를 잃고 마는 것이다. 이것이 코브가 자유의지로 행하여 맞이한 운명이다. 코브는 임무에 최선을 다했고 성공적으로 임무를 마쳐 결국 자유를 얻었지만, 그가 맞이한 슬픈 운명은 영원히 통제할 수도, 거스를 수도 없는 일이 되었다. 요리를 하는 데에 칼은 유용하지만 동시에 그 칼은 누군가를 찔러 죽일 수도 있다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무의식을 통제하는 도구를 사용하는 자가 미처 알지 못한 묵직한 함정이었던 것이다.
'무의식'으로 대두된, 통제할 수 없는 사건과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동시에 신비로움, 그것을 뛰어넘는 일을 차마 포기하지 못하는 인간의 안간힘은 그의 영화 곳곳에서 드러난다. 영화 <테넷>의 핵심 메시지 중 하나인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만다'에 대한 생각은 어쩌면 감독이 처절히 받아들이고 있는 명제일지도 모른다. 동시에 누군가의 마음속에 심어둔 강한 믿음이 현실을 완전히 뒤바꿀 수 있다는, 반대로 누군가를 살려낼 수도 있었다는 희망과 가능성을 남겨두는 것도 놀란 감독이 가진 특이한 이중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