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년들은 똑똑하고 순정파다
러닝타임 95분
국가 미국
장르 코미디, 드라마, 멜로/로맨스
감독 마크 웹
출연 조셉 고든 래빗(톰 역), 주이 디샤넬(썸머 역), 클로이 모레츠(레이첼 핸슨 역), 제프리 아렌드(맥켄지 역)
감상 횟수 3회
처음에는 썸머의 관점에서 이해는 되네 하면서, 두 번째는 톰의 마음도 약간 느끼면서, 세 번째는 거리를 두고 아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던 영화.
내 맘대로 한 줄 요약
똑똑하고, 주관 뚜렷한, 썸머를 뜨겁게 사랑하고, 그녀에게 이리저리 휘둘리고, 마음껏 마음 아파한, 끝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순진 찌질남 톰의 500일간의 연애 이야기.
내가 뽑은 명장면과 대사 (스포있음)
1. 썸머와 가까워지려고 직장동료 맥켄지와 함께 가라오케 바에 간 톰
맥켄지: 애인 있어요?
썸머: 아뇨, 귀찮아서요.
맥켄지: 그 말을 어떻게 믿어요.
썸머: 여자는 자유롭게 살면 안돼요?
전 누군가에게 구속되는 거 싫거든요. 혼자 있는 게 좋아요.
...
썸머: 고집부리는 게 아니에요. 그럼 사랑은 도대체 뭐죠? 연애는 해봤지만 사랑은 못해봤는데,
사랑 같은 건 없어요. 환상이에요.
톰: 당신이 틀렸어요.
썸머: 좋아요. 정확히 어디가 틀렸단 거죠?
톰: 언젠가 알게 될 거예요. 그걸 느꼈을 때.
2. 썸머와 연락이 끊기고 멘탈이 부서진 채로 동생 레이첼을 만난 톰
레이첼: 오빠, 그 여자가 오빠 운명의 짝이었단 생각은 그저 착각일 뿐이야. 좋은 것만 기억하는 것도 문제야. 다음에 그 여자 생각할 땐 나쁜 기억도 떠올려봐.
(하지만 톰은 계속해서 좋았던 기억만 떠오른다.)
3. 영화 끝무렵, 둘의 추억이 있는 벤치에서 우연히 다시 만난 톰과 썸머
톰은 마음속에 쌓아두었던 미련 섞인 원통함을 풀어놓는다.
톰: 내가 화나는 건.. 네가 말했던 게 전부 옳았다는 거야. 그게 화나.
운명이니 반쪽이니 진정한 사랑 같은 거. 동화 속에서나 나오는 새빨간 거짓말이었어. 네 말을 들을 걸 그랬어.
썸머: 아냐...
톰: 뭐가? 왜 웃어?
썸머: 톰, ㅎㅎ그게 말이지 사실은..
내가 식당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다가와 책 내용을 물었어. 그이가 내 남편이야.
톰: 그랬구나. 그래서?
썸머: 내가 영화를 보러 갔더라면? 다른 식당에 갔다면 어떻게 됐을까? 10분만 늦게 식당에 갔다면? 우리는 만날 운명이었던 거야. 그때 생각했지. 네 말이 옳았구나. 네 말이 옳았단 걸 알게 됐어.
... 단지 내가 너의 반쪽이 아니었던 거야.
나만의 주절주절 감상평 (스포있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어? 싶은 이야기지만, 연애사에서 한 번쯤은 경험해봤을 일이기도 하며, 반드시 남자, 여자 어느 쪽 한 입장에 이입해서 보게 되는 영화다. 재미있는 건 영화를 반복해서 볼수록 공감의 관점이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다시 저쪽에서 이쪽으로 전환이 된다는 점이다. 결국에는 보는 사람의 성별과 상관없이, 톰의 마음도, 썸머의 마음도 온전히 이해하게 돼버리는 묘하고 잘 짜인 내러티브다.
진정한 사랑을 믿지 못하는 자유분방하고 독립적인 여성으로 그려지는 썸머, 그런 썸머에게 격하게 끌려 사랑을 이루길 원하지만,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이 여성에 대한 갈망을 내려놓을 수도, 지속할 수도 없는 톰이라는 남자. 아이러니하게도 톰이 오랫동안 믿어오던 영혼의 반쪽과 진정한 사랑에 대한 믿음은 썸머를 통해 경험적으로 부정되었고, 반대로 썸머는 톰이 아닌 다른 남자를 통해 진짜 사랑을 깨닫는다. 사랑은 한 사람이 다른 상대에게 전달하거나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 둘이 함께 느껴야만 그 존재가치가 실현되는 것이 아닐까. 짝사랑의 맹점은 계속해서 내가 주인공인 스토리를 써나가게 된다는 점이다. 사랑에 빠져있는 동안은, 시점 전환이 전혀 안된다는 점에서 먹통이자 눈이 가리어진 상태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서 용기와 희망을 담은 긍정적 메시지로 카드 문구를 적던 톰의 무의미했던 일상은, 연애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사랑은 하고 있지 못하는 그의 삶과 대응되는 것처럼 보인다. 눈치 없는 톰의 관점은 영화 후반부 썸머가 초대한 파티에 참석하는 장면에서 해체되기 시작한다. 지금껏 자신이 기대하는 모습으로 관계를 해석해왔던 톰의 상상 속 장면과 실제 현실 속 장면은 두 개로 나누어진 화면에서 각기 다르게 재생되며 극명히 대조를 이룬다. 썸머가 여전히 자신에게 마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녀와 다정하게 키스를 나누는 상상과는 다르게, 그 날 톰은 썸머에게 결혼을 약속한 남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톰의 단단했던 연애 판타지는 그제야 산산이 부서지며 이때부터 톰은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진통을 겪고 난 뒤, 톰은 의미없이 다니던 회사도 때려치고 건축사로서의 꿈을 이루기 위해 움직인다.
이 이야기가 비극인 이유는 톰의 외사랑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었다는 것이고, 비극이 아니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는 썸머 아닌 다른 여자들이 남아 있다는 점이다. the life goes on. 이후로 이 일에 대해서 톰이 쿨하게 "내 찌질했던 과거사 중 하나에요," 라고 말하고 어텀, 혹은 윈터.. 뭐 아무튼 간 다른 사람을 만나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를 써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어째 톰의 표정은, 말투는, 몸짓은 썸머를 떠올릴 때마다 조금 쓰릴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영화는 이렇게 말해주고 있다.
'기억하라, 모든 이들이여.
아무리 그럴듯한 이유를 대도 거절은 거절이다.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무언가에는 확인해야 할 진실이 숨어있다.
그 진실이 내가 원하지 않는, 아주 아픈 것이라고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