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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디 UnD Mar 24. 2022

하와이 여행 Outro

여행, 그 얼마나 낭비적인 기쁨인지

결국 하와이 여행의 마지막 날 아침이 다가왔다. 14일의 시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여행에는 언제나 부족한 듯 아쉽다. 오늘은 평소와는 다르게 하늘이 밝아오기 전 숙소를 나왔다. 후회 없이 120%를 하기 위해 알라 와이 강변 산책을 하기로 했다. 오아후에 처음 온 날부터 차로 오고 가며 끼고 달리기만 했던 이 강을 이른 오전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서울을 서울답게 해주는 대표적인 것이 한강이라고 생각하는데 오아후에서는 이 강변 주변 경치가 만만치 않게 아름답고, 아마 한강변만큼이나 비싼 집값을 자랑하리라고 확신한다. 규모가 크지 않은 강이기 때문에 좌우 폭이 좁고, 도로 바로 옆에서 강변 산책로와 물 코앞으로 접근할 수 있다.

걸은지 10분, 15분쯤 되었을까. 해가 저 멀리서 붉은 기운을 몰고 오는 게 느껴졌다. 아직 높이 떠오르지 않은 태양은 강 반대편의 모든 피사체를 역광으로 멋지게 부각시켜준다. 이럴 때는 마치 세상이 조용한 무대 위, 세트장 같이 환원되어 인식으로 들어온다. 강물은 투명하게 자신을 비워 반대편 위쪽을 그대로 담아낸다. 잘 그려지진 명화를 감상하는 것처럼 선명한 윤곽과 색상이 뇌리에 쿡 박힌다.

산책로를 걷는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편한 운동복을 입고 아이팟을 끼고 열심히 달리는 젊은 남녀들, 잔디에 앉아 공손히 무릎 꿇은 자세로 명상하는 아저씨, 너무 빠르지 않은 적당한 속도로 단단하게 걷기 운동 중인 노인들까지 각자 다른 이유와 배경을 가지고 알라 와이 강변에 서 있다. 강 위에는 카누 연습을 하는 선수들도 보인다. 양재천 위에서 봤던 오리들처럼 강물을 가르고 ㅅ 모양의 물결을 만들어낸다. 강 이쪽부터 저쪽까지 거의 쉬지 않고 왕복한다. 보는 것만으로도 긴 막대기로 물에 저항하는 어깨 근육의 힘이 느껴지는 듯하다. 단 한 명의 이름도 알지 못하지만, 같은 공기를 마시고 같은 시간의 햇빛을 받고 같은 강물과 함께 몸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왠지 모를 동질감을 공유하게 되는 것 같다. 이곳 하와이에 오늘 있었다는 경험을 함께 만드는 사람들이다.

마지막으로 누리는 호사, 스타벅스 리저브드!

숙소로 돌아오는 길, 기분 좋게 출출해진 배가 느껴졌다. 실컷 걸었으니 이제 뭔갈 뱃속에 넣어주어야 할 타이밍인데, 마지막으로 호사를 한번 부려볼까 하며 숙소 1층에 있는 스타벅스를 들렀다. 미국 리저브드 매장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것 같아 리저브드 메뉴를 주문했다. 눈에 띄는 점은 주문을 담당하는 스탭이 나이가 지긋하신 남자분이라는 것. 그리고 한국에서도 그렇지만, 스타벅스 리저브드와 일반 스타벅스는 커피 맛의 차원이 다른 것 같다. 붕 뜨지 않고 한 몸으로 뒤섞여버린 따끈한 우유와 에스프레소의 조합이 완벽했다. 주문을 하고 기다리면서 지켜보니 미국 사람들은 확실히 피지컬이 달라서인지 벤티 사이즈로 음료를 많이 주문하는 게 보였다. 다들 이 정도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얼굴보다 큰 벤티 컵을 들고 바쁜 걸음으로 총총 매장을 나서는 그 모습마저 쿨해 보였다.  

마지막 식사는 테이크아웃 포케와 치즈피자

아침 식사까지 사들고 방으로 돌아온 나는 묵직한 마음으로 최후의 만찬을 씹어 넘겼다. 바다는 여전히 눈앞에 선했고, 나는 아직 닥치지 않은 이별을 미리 슬퍼하며 시간에 목이 메어 오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다는 시원함과 함께, 조금 더 시간이 주어졌더라면 하는 미련도 생겨난다. 그제야 나의 여행의 면면을 머릿속으로 되돌아본다.


합리적이고 성공한 여행을 하고 싶은 사람이지만, 여전히 때로는 충동적이고 즉흥적이었던 . 괜스레 동선이 꼬여 빙빙 돌기도 하고, 원래 계획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갔던 하루들. 예상치 못한 에서 정말 좋은 것들을 발견하고 기쁨으로 가득 찼던 마음. 이곳에서의 매일매일은 비슷한  조금씩 달랐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하와이에서는 시간, 마음, 돈, 어떤 것을 낭비해도 아깝지 않았다. 낭비하는 기쁨이 무척이나 컸기 때문에. 원래의 계획대로 완벽하게 실현되지 않아도 실패감이 없었다. 항상 기대보다 좋았기 때문에. 이건 생각보다 훨씬 더 대단한 일임에 틀림이 없다. 여행을 통해 내 예상보다 항상 더 좋은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조금 더 겸손해지고, 드넓은 자연을 보면서 조금이라도 넓어질 수 있다면 그건 돈 값 이상일 게다. 삶에 찌들어 팍팍해질 때, 태어나지 않은 고향처럼 떠올리고 그리워할 어느 한 곳이 생긴다면 그만큼 나의 공간은 확장된 것이리라. 열네 밤 동안 하와이는 꿈인 듯, 강렬하게 아름다운 생의 한 순간을 나에게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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