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언디 UnD Mar 23. 2022

하와이 오아후 여행 #2. 결국, 바다

하와이의 마지막 바다, 와이마날로 비치

오아후에서 두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묵은 하얏트 센트릭 와이키키 비치

핑크 리조트에서의 2박을 보낸 뒤, 1일 45불의 발렛비를 지불하고 체크아웃했다. 보통 하와이의 일반적인 숙소(리조트, 호텔 등)들은 예약 시에 방 값을 지불하고 체크인 때 일정 금액의 디파짓을 지불, 체크아웃 때 주차비(발렛비)와 리조트 이용요금(리조트 피)을 디파짓에서 제하거나, 디파짓에서 초과되는 경우 미리 확인된 신용카드로 추가 결제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체크아웃을 하는 날에 자동 결제가 되거나, 체크아웃 시점에서 추가로 결제가 되는 금액이 있다 보니 얼마가 결제될지 사전에 예측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뭔가 잘못된 결제는 없는지 괜히 심장이 벌렁거린다. 다행히 큰 문제없이 비용이 정리되어 바로 한 블록 뒤인 하얏트 센트릭으로 숙소를 옮겼다. 로열 하와이언에 비해 바다에서는 조금 거리가 있지만, 훨씬 더 신식으로 깔끔하게 지어진 곳이고, 1층에는 스타벅스, 주변에는 레스토랑을 포함한 좀 더 캐주얼하게 먹을거리를 구할 수 있는 식료품점들도 있어 편리한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체크인을 도와준 스탭은 매우 친근하게 우리를 반겨주었는데, 다소 과장된 친절의 목소리였지만 여행의 마지막 흥을 돋게 해 주어서 그마저도 좋았다. 방을 소개해주며 그녀가 사용한 어휘는 우리를 기분 좋게 해 주려는 의도가 가득한 것임을 느꼈지만, 그런 스킬마저도 하와이 같은 도시에서는 필수 요소가 아닐까 싶었다. 보통 대부분의 숙소의 체크아웃 시간이 체크인 시간보다 이르다 보니 이곳에서 짐 맡기는 일이며 체크인 시간 챙기는 번거로움이 걱정되었는데, 다행히 방이 정리되어 있어서 바로 들어갈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그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Lucky 하단다. 그래, 이것도 행운이지!

창 밖만 바라보아도 설레는 20층의 오션뷰 룸

그녀의 주문 같은 단어 때문이었는지,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그 행운이 현실에 녹아내리는 것처럼 기분이 몽글몽글해졌다. 침대에 누워서도 보이는 와이키키 해변과, 그 얼굴을 닮아있는 파란 하늘. 몸을 대자로 뻗어 잘 정리된 보송한 호텔 침구를 만끽했다. 모두가 다 아는 그 촉감과 맛, 이 맛의 하와이도 좋을 만큼 좋구나.

여행의 막바지까지도 별 다른 일정이나 꼭 해야 하는 일이란 게 없었다. 더군다나 이 시점에서는 굉장한 이벤트를 만들기보다는 다가올 현실을 외면(!)하고 하와이를 있는 그대로, 끝까지 즐길 수 있느냐가 미션이었다. 배는 채우면 그만이었고, 즉흥적으로 무언가를 하기에 에너지는 충분했다. 여기를 떠나면 정말 그리울 것 같은 것, 쉽게 다시 찾을 수 없는 게 무엇일지 생각해보니 '아사이볼'이었다. 서늘했던 아침 기운이 언제 그랬냐는 듯 한낮의 햇빛은 쨍쨍했고 아사이볼 먹기에 딱 좋은 날씨다. 다이아몬드 헤드 근처에 있는 'Health Bar'(이름이 직설적이다.)로 갔다. 아사이볼 맛집인지 늘어선 줄의 사람들이 전부 아사이볼만 주문한다. 이럴 때 왠지 안도감과 기대감이 동시에 생긴다.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가게마다 아사이볼의 맛은 다 달랐다

아사이베리를 갈아 얼려 만든 스무디를 베이스로 그래놀라와 바나나, 딸기, 블루베리 등 각종 과일을 토핑처럼 얹어 섞어 먹는 아사이볼. 간식도 식사도 아닌 동시에, 간식도 식사도 될 수 있는 이 묘한 색깔의 메뉴는 상큼하고 시원하지만 지나치게 달지 않고, 무겁지 않지만 적당한 포만감도 준다. 느끼하고 기름진 음식을 먹고 나면 생각날 것 같은 이 맛. 이게 내 마지막 아사이볼이겠지 생각하며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는다.

어딜가든 산세가 웅장한 하와이의 섬들

주어진 시간은 한정적이고, 선택지는 너무 많았다. 오아후에서는 가볼 곳도, 먹을 것도, 쇼핑할 것도 많겠지만 결국 하와이에서 마지막으로 갈 장소를 고르라면 나의 대답은 '바다'였다. 와이키키에서 다이아몬드 헤드를 거쳐 오아후 동쪽 끝자락으로 향했다. 어깻죽지 즈음에 위치한 와이마날로 비치가 마지막 목적지다. 해안을 보면서 달리려면 산속을 구불구불 지나가야 했던 마우이와는 다르게, 오아후는 해변 아주 가까이에 도로가 있어서 바다가 손 닿을 것 같은 거리에서 길게 펼쳐졌다. 소다맛이 날 것 같은 밝은 민트색 하늘빛 물이 지근거리에서 출렁거렸다.

이곳을 물놀이하기 좋은 비치라고 평가한 구글 리뷰는 사실 그대로였다. 바다 그 자체로도 아름다워서 당장 뛰어들고픈 풍경인데 물 쪽에서 바라다보면 동쪽으로는 커다란 병풍 같은 산이 둘러져있고 바다 건너편에는 마나나 섬이라고 하는 야생 조류들의 보호구역도 보인다. 한참 부기 보드를 타고 놀다가 거센 파도에 왈칵 몸이 고꾸라지기도 하고, 둥실둥실 파도에 몸을 싣고 깊은 바다를 향해 나아가 보기도 했다. 옆에서 함께 파도를 타던 어린아이들은 매일 이런 일상을 보냈다는 듯 익숙하게 겁 없이 물길을 헤쳐나갔다. 실패와 공포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나이란 저렇게 펄펄 나는 힘이 있구나, 눈으로 이해가 갔다.


와이마날로 비치는 북쪽으로 셔우드 해변, 벨로우즈 필드 해변까지  이어지는  해변이었다. 물놀이를 하다가  지쳤다 싶으면 오른쪽으로 바다를 끼고 단단하고 부드러운 모래사장을 산책해도 좋다.  끝에 닿는 응집된 모래와 살살 쳐들어오는 물결을 느끼면서 발바닥 전체로 지구를 딛고 나아가는 느낌이 흐뭇하다. 이정표도 없이 계속 걷다가 '  나무까지만 걷고 돌아오자.' 하면  정도로 해변이 끝도 없이 이어진 기분이 들었다. 걷다 보니 연푸른 빛의 물체가 모래사장에 놓여있다. 멀리 서는 돌덩어리인가 하고 별생각 없이 다가서는데,  녀석은 아기 바다거북이었다. 바다거북들이 내내 바닷물 속에만 있는  아니고 가끔 휴식을 취하거나 잠을 자러 뭍으로 올라온다는데, 다른 거북들과 외떨어져 혼자 모래 위에 철퍼덕 누워있었다. 빅아일랜드에서 겨우 겨우 보았던  바다거북과는 다르게  녀석은 너무 작고 소듕한 느낌이었다.


하와이의 사람들은 바다 거북이 육지에 올라와 있어도 함부로 가까이 가지 않는다.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기도 하고, 어쩌면  사람들은 너무 자주 봐서  감흥이 없으려나 했지만, 현지 사람들도  근처를 떠나지 않고 충분한 거리에서 한참을 지켜보기만 한다.  다른 코멘트도 하지 않고 바라보기만 하는 모습을 여러  보았다.  또한 아기 사이즈의 바다거북은 처음이라 왠지 모를 경외감까지 생겼다. 아직 진해지지 않은 등껍질과 지느러미 같은 손발의 색깔, 살결마저 보드라울  같은  자태는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눈을 감고 내내 쉬기만 했지만 존재만으로도 특별해지는 바다의 신비로운 야생 동물을 실물로 보는  또한  없는 기회였겠지. 하며 산책을 계속했다. 다시 돌아오는 길에도 아기 거북은 그곳에 있을까?

 젖은 모습으로 찐득하게 돌아온 숙소. 마침 해가 바다 뒤로 무대를 떠나가고 있었다. 오는 길에  무스비  개를 테이블에 올려다 놓고 멍하니 오늘의 일몰을 바라본다. 시간을 아쉬워하는 사람이   있는 일은 일몰을 바라보는 일뿐인  같다. 붙잡고 싶지만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을 조금이라도 쪼개고 나누어 색색깔로 느낄  있으니.  길게 오래 맛보고 싶지만 이렇게 해야지만 어쩔  없이 어둠의 시간조차도 수용하고 오늘의 일부로 받아들일  있다. 조금이라도,  번이라도 하와이를 기억 속에   묻혀가고 싶었던 마지막 하와이의 시간은 그렇게 일상처럼 종결되고 말았다.

이전 18화 하와이 오아후 여행 #1. 우리가 꿈꾸는 하와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