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나는 그대로인 것 같아

바보 같고, 어리석고, 불리하게도.

by 언디 UnD

오후 6시경, 오늘은 반드시 글을 써야만 하겠다고 다짐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글쓰기를 촉구받았다.


꽤 평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믿고 지내던 중 오늘, 날카로운 칼끝으로 가슴을 스쳐 베어 내리는 듯한 사건을 만났다. 이 일이 폭력사건이라면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을 것이고, 가해자는 아주 악랄하게 피해자를 괴롭힐 것이고, 피해자는 어떻게든 스스로를 지키려 하지만 가해자의 강력한 파괴력으로 인해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는 이야기 같은 것이 뻔한 레퍼토리였을 것이다. 지금껏 역사 속에서 인류 전체가 공동으로 목격하고 때로는 방치하고, 또 한편 은근하게 즐겨온 스토리라인임을 부인할 수 없다.


나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종종, '일상생활의 잔혹함' 같은 것이 있다고 느끼게 되었다. 그게 무엇이냐면, 조직 안의 사람들에게 상대적인 강자와 약자에 대한 인식이 늘 있다는 것, 약자가 (상대적)강자에 의해 공격받을 때, 대다수의 타자들은 그 상황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개입하지 않으려고 애쓴다는 점이다.


IE001976003_STD.jpg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한 장면


좋은 얼굴로, 유연하고 유들유들 능력 있는 모습으로, 편히 농담하며 지내는 동료들 사이에서도 이런 잔혹함은 불현듯 비치는데, 그 순간들마다 내 심장은 철렁거리고, (아마도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겠지만) 공포감을 느낀다. 특히 그 공격의 타겟이 나도 모르게 나 자신이 되었을 때. 참여 신청을 하지 않은 배틀에 자동으로 참여하게 되었음을 깨달은 그 순간, 나는 적잖이 당황한다. 어설픈 전사가 되고 마는 것이다. 상대방의 전술도, 유리한 고지도 어디인지 모른 채로 등 떠밀려 나와버린 초년병.


그러나 어쩌겠는가. 내게 주어진 총 한 자루 잘 닦아서 어떻게든 쏴야 죽지 않는 것이고, 주변에 숨을 만한 나무 덤불이나 큰 바위라도 눈알 빠지게 찾아 헤매야 하는 것이다. 나는 이 불편한 초대가 정말 싫다. 동시에 이 거절할 수 없는 초대에 응할 때마다 숨이 막히고, 전투가 끝나면 서글퍼진다. 한 가지 놀라운 건, 홉스라는 철학자는 이미 17세기 중반에 이와 관련한 논리적인 정리를 마치고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를 제시한 혜안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 자기 보존의 실현에 있어서 타자보다 우월하기 위해 그 가장 효과적인 수단인 힘을 보다 많이 획득하는 경쟁상태에 들어간다. 허영심, 시기심, 불신감, 경쟁심이라는 정념(情念)이 힘의 획득경쟁을 격화시켜 전쟁이라는 비극적 상태를 초래하게 된다. 이것은 ‘자연상태’라고 하며 어디까지나 극한적 가능성으로서의 전쟁상태이다. ..."

[네이버 지식백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21세기 정치학대사전, 정치학대사전편찬위원회)



끊임없이 자신을 어필해야 하고, 열심히 자신의 능력에 따라 일하고 있음에도 "다른 이보다 나은 나"를 계속의식하고, 홍보하고, 끝끝내 인정받아야만 안심이 되는 그들을 보면, 역시 나랑은 조금 다른 종족이군.. 하며 그냥 넘어가고 싶다. 그냥 그저 '그들은 나와 달라', 혹은 '그럴 수도 있지.'라고 툭 뱉고 넘어가면 그만일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두가 그 룰이 당연하다고 여기고, 그래, 야너두? 하며 턴을 돌리는 순간, 체급도 낮고 언뜻 힘도 없어 보이는 만만한 사람이 다음 타겟이 된다. 회사로 치환해 보면, 나이가 어린 사람, 연차가 낮은 사람(짬..이 적은 사람)이 가장 먼저일 것이고, 그다음은 친절하고 모두에게 잘 웃는 사람일 수도, 거절을 못하는 우유부단한 성격을 가진 사람일 수도 있다(인성의 나쁨과 반비례하는 모든 인격적 특성일 듯). 아무튼 어떤 성격적 특성이 아닌, 표면적인 힘의 논리만 작용할 뿐이다.


그렇게 나는 갑작스럽게 내가 하던 일과 전혀 무관한 허드렛일의 타겟이 되었고, 관련된 담당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침묵으로 방관했다. 리더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아무 맥락도 없이 "OO님이 하면 어때요?"라고 내 의사를 물어왔고, 나는 확신 없이 알겠다고 대답했다. 허드렛일은 얼른 이 일을 떼어버리고 더 중요하고, 더 큰 포션의 다른 일을 맡고 싶어 하는 담당자들이 있는 일이었고, 복수의 담당자임에도 번거롭고 도움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지 리더에게 지원을 요청한 것이었다. 하지만 대충 두루뭉술하게 부탁한 그 일은 내막을 살펴보니 한 명이 갑자기 서포트해서 진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문서만 봐도 진행 계획에 심각한 결함이 보였다. 빈틈이 무엇인지, 왜 비효율적인지 논리 정연하게 제시했고, 결국 나에게 일을 넘기려 했던 담당자도 그 부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결론적으로는 내가 혼자 진행해서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을 것이고 결과를 책임질 수 없는 일에 뛰어들 수는 없으니, 리더에게도 차선책으로 다른 방안을 제시하는 것으로 일단락이 되었다.


아마 내가 이 이야기에서 직, 간접적으로 언급한 대부분의 동료들은 사람 좋은 웃음으로, 털털한 성격으로, 또 때로는 반짝반짝 빛나는 업무 능력으로, 리더가 제안하는 모든 요청을 수락하는 사람을 지향할 것이다. 언제든 사용되기에 준비된 상태이고, 실망시키지 않는 결과를 안겨줄 것이라는 믿음을 주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데 능한 전략가들일 것이다. 그래, 이건 지금껏 바뀌지 않는 경쟁 사회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사실, 내가 기분이 상당히 멜랑꼴리해진 것은 지금까지 말한 것과는 조금 다른 측면이다. 왜 리더는 어쩌면 본 직무와는 상관이 별로 없어 보이는 그 일에, 심지어 담당하는 내용이 아니어서 잘 알지 못하는 프로젝트의 번거로운 일에 적합한 사람을 "나"로 떠올렸을까. 나는 리더를 포함한 모두에게 공격의 타겟이 되는 만만한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그 번거로운 일에 필요한 역량이 있는 사람이 나임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일까? 이 모든 생각이 내 과대망상이고, 피해의식이고, 낮은 직무 자존감에서 비롯되는 일이었으면 좋겠는데. 사실은 그냥 이 모든 게 사소한 해프닝이었고, 내가 너무 깊이 생각한 결과로 떠오른 부정적인 노파심이었으면 좋겠는데. 나는 피 튀는 경쟁에는 참여하기 싫으면서, 적절한 인정감은 느끼고 싶은 또 다른 타입의 욕심쟁이에 불과한 걸까. 다른 사람의 행동의 의도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정답에서 멀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까득 채우고 비워지지 않는 게 문제다.


나의 20대 중반부터 시간을 떠올려보면 "나는 어떤 사람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 많은 시간을 고민하고, 또 탐색하고, 사색했었다. 그리고 내려진 대답에 솔직하고 투명하게 반응하려 살아보려고 노력해 왔다. 나는 강제로라도, 이제서라도, "나는 어떤 사람으로 보여야 할까?"를 고민해야만 하는 걸까? 왜 나는 여전하기만 한 걸까. 재미없고, 불리한 게임을 계속해서 해나가야 하는 나 자신에게 어떤 표정을 지어줘야 할지, 난 오늘 밤도 난감하기만 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67GsBOfl2Mo

정승환이 부르는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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