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는 맞았고 지금은 틀리다?
포지타노, 이제는 레몬 캔디로 더 유명할 것 같은 여행의 다음 목적지. 포지타노와의 인연을 설명하기 위해 잠깐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옛 기억을 더듬어보자. 약 10여년 전 이탈리아라는 나라를 처음 방문했던 시점에 로마에서 당일치기 투어를 신청했었다. 기차, 버스 등 대중교통 수단만 이용해서 여행을 하던 꼬맹이 시절이라, 다른 도시를 가려면 이동을 책임져주는 투어를 해야만 했던 것이다. 로마에서 출발해서 폼페이 유적지를 거쳐 이탈리아 남부 방문이 포함되어 있는 다소 빡빡한 스케줄의 투어였는데, 당시에 유로자전거나라라는 나름 정평이 나있던 회사의 투어프로그램에 참여를 하게 되었다. 이탈리아 남부, 따뜻한 햇볕에, 아기자기하고 예쁜 마을의 모습, 그 이국적이고도 환상적인 이미지에 반해 부푼 마음을 안고 투어 버스에 탑승한다.
가이드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ㅡ이미 수천년 전에 수로와 엘리베이터를 사용했다는 문명의 최정점에 있던 로마인들이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몽땅 그 안에 잠겨버렸다는ㅡ 흥미진진한 이야기부터, 다정하게 맞아주는 나이 지긋한 서버들이 있는 파스타집, 그리고 그 정점의 끝에는 단체버스를 타고 아말피 해안의 꼬불꼬불, 아슬아슬한 길을 한참이나 달려 도착한 포지타노라는 해안가 마을이 있었다. 믿거나 말거나 죽기전 반드시 봐야할 비경 top 1이라는 아말피 해안을 달리며 가이드가 틀어준 조수미의 'Time to say goodbye.' 아직 감수성이 더 말랑했던 그 시절의 나는 투어용 이어폰으로 이 음악을 들으며 거의 눈물을 흘렸더랬다. 막상 포지타노에 도착해서는 자유 시간을 단 2시간밖에 얻을 수 없어, 울며 겨자먹기로 지금은 이렇게 물러나지만(?!), 언젠가 꼭 다시 오리라는 다짐을 하게 만든 바로 그 마을이 포지타노였다.
투어 버스가 데려다주었던 그 길을 내 발로 직접 밟아 운전해서 들어가는 내 기분이 어떠했겠는가. 감개가 무량하기도 하고, 소름돋기도 했다. 또 한편으로는, 예전에 그 느낌이 아니면 서운해서 어쩌지? 하는 마음과 함께, 그래, 당연히 그때만큼은 좋기 힘들거야. 라고 실패의 가능성에 대한 밑밥도 조금씩 깔아둔다.
기분좋게 마을로 차를 타고 들어왔으나 실제로 도착하는 데 까지 상당한 고생을 했다. 꼬불길,산길에 이어, 차를 숙소가 아닌 언덕 위 유료주차장에 세워두고 걸어서 다시 100개 가까이 되는 계단을 걸어 내려와야했던 것이다. 왜 여길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 페리와 투어버스를 이용하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 와중에 다행인건 숙소에 연계된 포터 서비스가 있어서 캐리어 같은 큰 짐은 쪼끄만 카트가 실어다 날라준다는 점. 이 한 가지 서비스로 평가에 꽤나 까다로운(?) 나는 숙소에 별 9개를 주고 말았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비싼 요금을 지불하면서 온 곳인데, 무료 주차도 아니지만 그나마 이정도가 아니면 주차가 가능한 숙소는 없었다. 이탈리아 여행의 인플레이션 현상을 온몸으로 부딪쳐가며, 추억을 위해 기꺼이 많은 비용을 지불했다.
마을을 한두바퀴 둘러보니 눈에 익은 풍경과 포지타노스러운 러블리함은 여전하다. 그럼에도 그 때의 그 느낌은 아니다. 아는 얼굴을 만났지만, 이전 얼굴은 아닌 머쓱한 기분이 든다. 오래전 느낀 짜릿했던 행복의 기억은 약간은 미화되어 있었던 것 같다. 운명의 장난인지, 이 시절 여행 사진을 담아둔 외장하드를 잃어버려 상당히 속상했었는데, 어쩌면 추억을 적절히 아름답게 기억하도록하는 마법의 가루 한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또 어쩌면 그 세월 동안 수 많은 관광객이 오가면서 조금씩 마을이 변해간 것일수 있겠다. 한적하고도 티끌 없이 맑았던 마이오리와는 다르게, 페리 항구에는 배들이 한 가득 서서 사람을 실어 나르고, 태워 나가고를 반복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항구 탑승구부터 마을 초입 가게 앞까지 줄지어 서서 와글거렸다.
사람들을 피해 해산물로 식사를 하기로 했다. 바다 앞쪽에 위치해 있는 레스토랑은 가격이 비싼 것에 비해 퀄리티가 별로라는 이야기를 들어, 큰 마음먹고 마을을 뚫고 올라가는 계단을 탔다. 숨이 점점 차오르고, 땀이 바짝바짝 날때쯤 계단 끝에 도착한다. 이 마을은 아랫 쪽 층과 위쪽 층으로 나뉘어져 있는 독특한 구조다.
마이오리 해변가에서 만나 사진을 찍어주며 잠깐 말을 섞었던 아말피 관광청 직원이 추천해준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메뉴판을 신중히 살펴보니 키조개 요리가 아주 맛있어 보였는데, 시즌이 아니어서 주문할 수 없다고 한다. 어쩔 수 없지. 해산물 파스타와 새우 튀김, 레모네이드 한 잔을 주문한다. 레몬향이 나는 티슈로 손을 닦고 물 한잔을 들이킨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기분좋은 뜨거운 기운으로 내리쬐는 햇빛을 느껴본다. 한국에서였다면 태양을 피하기 바빴겠지만, 여기서는 이것까지도 묻혀가고 싶은 마음에 그냥 내버려둔다. 테라스석의 묘미라면서.
기다리던 끝에 받아든 음식. 가격은 비쌌지만, 그래도 꽤나 맛있어 보여서 기대감이 상승했다. 아니, 근데 여기는 슬쩍 들어간 조개가 왜이렇게 맛있는건지. 큰 기대 안하고 한번 먹어보자 시킨 모듬 해산물 파스타에서 놀랍게도 바지락(?)이 제일 맛있게 느껴졌다. 살짝 익어 쫀득하기도 하고 연하기도 한데, 기분나쁜 비린내는 없었다. 다시한번, 바다 근처에서는 해산물을 먹으라!가 입증되었다. 게눈 감추듯 먹어치우고 새우까지 싹쓸이했다. 60유로가 넘게 나왔지만, 오느라 고생한 나에게 선물을 했다셈 쳤다. 가게 사장님도 여자 혼자 와서 메뉴를 두 개나 주문해먹고 나가니 기분이 좋은 듯 했다.
밥을 먹고 내려와 지도도 보지 않고 걸었다. 사실 볼 필요가 없었다. 마을의 크기는 내 상상보다 좀 더 작아서 금방 한바퀴를 돌 수 있었다. 어릴 때 엄청 크다고 생각했던 장소가 막상 나이 들고 다시 가보면 전혀 다른 규모로 느껴지는 현상을 20대와 30대에 걸쳐 느끼다니.사람들은 거의 모든 곳에 줄을 서 있었다. 진짜 레몬의 속을 파서 소르베를 넣어 파는 젤라또 가게에는 물건을 받아들고 예쁜 인증샷을 남기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조금 한산할 때 다시 와야지 하며 스팟들을 눈으로 점찍어 가면서 마을 중앙 성당까지 올라갔다. 누군가의 결혼식을 목격하게 됐다. 외국에서 결혼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산스럽지 않고 참 차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상대적으로 신랑 신부도 많이 꾸몄다는 느낌보다는 예복을 갖춰입고 정중하게 이 시간을 누리는 무드다. 포지타노에서의 결혼이라니, 보는 것만으로도 멋진 경험이다.
이전과 같은 설렘과 떨림은 아니었지만, 열 걸음만 나가면 해변이 있는 멋진 뷰의 숙소에서 여유를 부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언젠가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보냈던 바람의 메시지처럼, 그렇게 다시 이 곳에 온 것 자체가 흐뭇하고 뭉클했다. 무엇이든지 처음 경험한 것과 그 외 모든 경험이 완전히 같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만큼 이제 나는 나이를 먹었다. 그렇기에 처음이라는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금 깨닫기도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주어진 환경과 삶의 단계마다도, 처음은 유일히 특별한 것이다.
무언가를 해야 하는게 없었던, 어쩌면 무목적성의 이번 여행에서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의 참 맛을 알았다. 아침에 눈을 떠 저 멀리서부터 달려오르는 해를 말없이 바라보는 것. 테라스에 앉아 약간 쌀쌀한듯, 곧 데워지는 공기를 느끼는 것. 바다를 바라보며 진한 에스프레소 샷을 들이키는 것. 아무도 재촉하지 않는 아침 식사를 꼭꼭 씹어 삼키는 것. 함께 여행하는 재미를 무시할 수는 없겠다만, 혼자인 기쁨을 은밀히, 꽉 차게 누렸다.
이 먼 곳 까지, 쉽지 않은 여정을 시작할 명분을 준 과거의 포지타노, 그리고 현재의 포지타노에게 고마움을 전해야 마땅하다. 날 다시 불러주어서 고맙다고.
여행이 막바지로 치달을 수록, 잊고 있던 책무가 떠오른다. 한국에 있는 사람들에게 선물을 사야한다는 무언의 압박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오늘은 성당 옆 상점에 가서 레몬 캔디를 몇 봉지 사두어야겠다. 사실 시간이 흐르며 포지타노 사탕은 너무 유명해졌다. 한국 올리브영에도 팔지만, 그래도 포지타노는 나에게 영원히 레몬 캔디다. 한번 맛보면 잊을 수 없는 곳이 포지타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