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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디 UnD Jan 03. 2024

#10. 마이오리, 나만 아는 낯선 곳이 되길 소망하며

맑게 빛나던 그 물과 겨울의 난로같던 그 햇빛

극한의 꼬불길을 피해 심한 꼬불길로

나폴리를 떠나 비로소 물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왼쪽 지도에 보이는 꼬불길은 도저히 운전할 수 없을 것 같아 조금 돌아가더라도 조금 덜 구불진 길을 택했다. 그마저도 오른쪽과 같은 낭떠러지 절벽길의 1차선 도로! 이 길을 어떻게 운전했는지는 내 머릿속에 남아있지 않다. 그저 길은 나 있었고, 나는 그 길에 반항하지 않고 순순히 구불거리며 몸을 기우뚱거리며 달려갔다. 이런 길을 운전하며 가장 무서운 것은 시타버스라고 하는 남부 살레르노 지방과 나폴리, 그리고 몇 도시를 거쳐 운행되는 버스다. 이 버스들은 대충 난폭하기 짝이 없는데, 이런 절벽끝 아슬아슬한 1차선 도로에서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거침없이 핸들을 꺾어대는 것이 특징이다. 나는 빠르게 달릴 자신도 없었고, 버스를 피해 비켜줄 수도 없는 도로 상태 때문에 계속해서 버스를 마주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다행스럽게도 도로 위의 깡패 시타버스는 항상 내 앞 쪽에 있었고, 그 뒤의 소심한 초짜 운전자는 오히려 득을 보았다고 한다. 성질 급하고 속도를 바짝 내는 이탈리아사람들도 이 길 위에서는 경적을 울리지 않고 속도를 줄이는 게 신기했다. (그럼에도, 기회만 나면 앞 차를 추월하려고 든건 안 비밀이다.)

쨔잔! 마이오리를 만났다

드디어 도착한 마이오리. 마이오리는 원래는 내 계획에 없던 마을이다. 이런 마을이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낯선 곳인데, 사실 우연히 예약하게 된 이 곳 숙소를 어찌할까 취소를 망설이다가 무료 취소 기한을 놓쳐버린 탓에 오게 된 곳이다. 한 마디로 아무런 정보도, 기대도 없이 다다르게 된, 출발지로부터 가장 먼 남쪽 끝 해안 마을이다.

마을과 마을을 둘러싼 산세

숙소에 짐부터 풀었다. 신식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은 처음이다.(진짜 처음이다.) 한 가지, 이탈리아에서는 발렛 파킹을 해주는 대신 차 키를 숙소에서 강제로 보관을 하는데, 차를 사용해야 할 때마다 숙소에서 키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불편하고 골칫거리다. 들어올 때 이 정도쯤이야 하고 차를 직접 주차했는데, 체크인을 도와주는 아저씨가 굳이 자기가 다시 차를 파킹하고 키를 가져가겠단다. 누군가와 실랑이를 할 정도로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은 나는 ‘에유, 뭐 그러시게나.’하고 방으로 올라간다. 조금 일찍 도착했는데 마침 방 준비가 되어 있어서 다행이다.

말도 안돼 거짓말...

파란색 타일이 깔린 복도에 새하얀 흰색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좋은 의미로)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아니 세상에. 여긴 진심 천국이 아닐까 싶다. 주방과 침실에 붙어있는 테라스 문을 열면 바로 이런 풍경이 한 눈에 들어와 시야를 가득 채운다. 단언컨대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

이 장면 하나로 모든 게 충족되었다

기본적으로 마을은 산기슭이자 해안 절벽 쪽에 위치해 있다. 해안선 때문에 길은 꼬불하고, 산세 때문에 경사는 심한, 솔직히 말하면 살기 좋은 땅일까 살짝 의심이 되는 정도이다. 이 사실은 이 곳을 운전해오는 길에 한번 느낄 수 있고, 직접 발로 밟아 걸어보면 한번 더 알 수 있다. 마을 크기가 작긴 해도, 내가 머문 숙소의 위치가 살짝 마을 끝 쪽에 있다보니 중심지 쪽으로 한번 걸어 갔다오면 무릎 갈리는 느낌이 팍팍 온다. 내 육체가 받고 있는 중력과 땅의 모양새 그대로를 흠뻑 느낄 수 있다. 산책이 아니라 짧은 등산의 느낌이랄까.

어느 정도냐고? 구글 지형도를 보면 이 정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마을은 정말 아름다워서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이쯤 되면, 내가 이탈리아 마을들마다 칭찬만 늘어놓는 '금사빠'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지만, 이 하늘과 햇빛 아래 서 본 누구라도 그렇게 느낄 거라고 자부할 수 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관광객의 숫자가 매우 적다는 것. 지금까지 봐온 풍경들도 참 멋있었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 참 묘미를 느낄 틈이 없었는데, 이 곳은 멍때리고 다른 생각에 잠길 수 있는 한적함과 쾌적함이 있었다.

새로운 여행지에 도착한 첫 날의 나는 늘 길을 잃어버린 사람과 매한가지다. 터져나오는 반가움과 어색함을 숨기고 한적히 걷는다. 사지도 않을 기념품이 가득한 샵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괜히 공원 벤치에 앉아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노인처럼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렇게 다짐한다. 이 곳에서는 꼭 비치타올과 스노쿨링 기어를 사겠다고. 이 바닷물에 나를 꼭 적시고 가야겠다고. 나이가 들면서 나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는 변화라고 한다면, 물놀이가 버거워진다는 점이다. 특히 혼자 여행을 할 때 더욱 그런 것 같은데, 훌렁훌렁 벗고 물에 들어가는 게 부담이 된달까. 하지만, 이 바다는 그런 부담과 망설임이 가려질 정도로 큰 소리로 나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머지 않은 미래에, 이 부름에 응하기 위해 35유로를 아낌없이 지출할 예정이다.)

100 계단 아래의 클리어워터 비치

숙소 바로 뒤편에 위치한 이 아름다운 해변에 일단 무작정 내려가보기로 했다. 음료수와 군것질거리, 노트와 펜을 챙겨 100개쯤 되는 계단을 한칸 한칸 내려가본다. 아무도 방해하지 못할 이 곳에 앉아 여행 일기도 쓰고 물놀이하는 사람들 구경도 해본다. 파도 소리와 파도에 부딪혀 데굴거리는 매끄러운 돌들의 움직임 소리를 듣는다.

‘더 늦기 전에 여기서는 반드시 물놀이를 해야겠어!’


마을로 내려가 Amalfi라는 글자가 새겨진 예쁜 레몬색의 큰 비치타월과 가장 저렴한 스노쿨링 기어를 사고, 시큼한 레몬 샤베트도 사먹으며 시간을 기분좋게 허비한다. 햇빛이 내리쬐는 시간의 바닷가. 이탈리아에 와서 처음으로 수영복을 꺼내 입고 해초조차 없는 맑은 물에 담가본다. 파도도 거의 없는 평온한 마이오리의 바닷가. 몸에 바다를 묻히는 순간, 마이오리가 더이상 낯설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눈치보지 않고 실컷 놀았다.

거리의 풍경

오후 3시경, 낮잠 문화가 있는 곳도 아니건만, 약국을 포함한 많은 가게들의 문이 닫혀 있다. 저녁에 다시 연다는 흔한 안내말조차 달려있지 않은 상점들. 짜증이나 불편함보다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이 루즈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아, 그렇구나. 좀 쉬면서 천천히 흘러가겠다는 거구나. 하면서 말이다.

우연히 만난 길거리 음악대

점차 해안가 마을에 드리우는 조명의 빛깔과 세기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빠르게 종종거리던 내 걸음은 점차 느려져 한 곳에 멈춰서 한참을 머문다. 눈으로 같은 곳을 보고 있으면서도 공간이 변화하는 것 같은 착시가 일어난다. 깊은 마을에 해가 지면 보이는 것은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들과 같은 불빛 뿐. 북부 친퀘떼레 여행을 할 때에도 보았던 이탈리아 바닷가 절벽 마을의 일몰은 어느 한 곳도 같은 곳이 없이, 다채롭고 쓸쓸하고 아름다움을 다시금 깨닫는다.


저녁에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이 곳에 아주 오래 머물 사람처럼 슈퍼에서 장을 봤다. 모짜렐라 치즈, 싱싱한 토마토, 샐러드용 야채, 가지까지. 취사가 가능한 숙소가 오랜만이기도 했지만, 관광객이 아닌 마이오리 사람 같은 흉내라도 내고 싶은 기분에서였을까. 가지를 굽고 치즈와 토마토를 얹고, 시에나에서 샀던 올리브오일, 발사믹을 곁들여 오롯이 나를 위한 요리와 식사를 했다. 낯설지만 일상적인 평온함, 그 모든 게 마이오리에서라면 완벽했다.


직접 만든 저녁 식사
시에나에서 산 우동면(?)과 멧돼지라구 소스로 만든 파스타
모짜렐라를 넣은 신라면 치즈라면 (ㅠㅠ대핵존맛!), 그리고 직접 만든 아아
아침엔 늘 카푸치노와 크롸상
 윤슬로 찬란히 빛나던 바다 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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