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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디 UnD Nov 05. 2024

뉴욕 버킷리스트 #4. 스몰톡

솔직담백, 감정의 가림막이 없는 뉴요커들

사실 버킷리스트의 이 항목은 크게 욕심을 내지 않았었다. 낯선 이와의 대화가 어렵진 않지만 먼저 아무때고 시도하는 스타일이 아니기도 하고, 대도시의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 갈 길이 바빠 여행객에게 한가로이 말을 걸지 않을 거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여행 초반에는 뉴욕 생활에 익숙한 내 친구랑 대부분 함께 다녀서 딱히 낯선 이에게 도움을 청하거나 질문을 할 일도 없었다.


그런 와중에 나누게된 스몰톡 두 가지가 기억에 남는다. 첫 번째는 브라이언트 파크에서였다. 뉴욕은 유명한 센트럴 파크 이외에도 공원이 도시 중간중간 꽤 많이 조성되어 있다. 그 날 이 공원에 다다랐을 때 사람들은 한여름 볕을 피하기 위해 진녹색 철제 테이블마다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그늘 아래에서 쉬고 있었다. 친구와 나도 얼음이 녹아내린 테이크아웃 음료 잔을 들고 적당한 곳에 조금 앉았다 가기로 했다. 푸릇푸릇한 경관을

둘러보며 수많은 사람과 함께 앉아있는 기분이 조금 낯설기도했지만 썩 나쁘지 않은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친구와 나는 마주보고 앉아있었고 친구 뒤쪽, 즉 내 시선이 닿는 쪽 테이블에 앉은 사람이 나에게 혹시 일본인이 아니냐며 말을 걸어왔다. 자전거를 테이블 옆에 세워두고 앉아있던 한 남자였다. 조금 뜬금없는 대화의 시작에 나는 아니라고 설명했지만 그는 자신이 사진작가로 오래일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얼굴 특징을 잘 안다고 하며 나의 외모에 대해 분석 결과를(?) 전달해왔다. 애국 한국인으로서, 약간 의아해진 기분으로 나는 한국에서 왔고 내 패밀리 중에는 일본인이 없다는 말로 대화를 마무리 짓고자 했다. 여기에는 일본인에 대한 기묘한 선망이나 호감을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웨스터너들에 대한 나의 편견도 일부 작용했던 것 같다.

혼자 여행할 때는 온갖가지 종류의 수상한 사람들을 빠르게 쳐내는 게 습관이 되어있기도 했다.

근데 이 남자, 포기하지 않고 내 친구에게 다시 말을 거는 거다.

‘뭐라는 거지? 아직도 할 말이 남은 건가..‘

더 당혹스러운 것은 미국 국적이자 한국인 뉴요커 내 친구는 별 일 아니라는 듯 미소 띤 얼굴로 그 남자의 말을 받아주고 있었다. 적절하게 리액션도 해주며 말이다!

(제발.... ㅠㅠ)

그 뒤로 이어진 그의 말은 차마 번역하기 민망한 수준이다. 대충 이런 찬사였다. 이 외 디테일은 기억에서 지워졌지만 그는 상당히 오랜 시간 내 친구를 귀찮게 했다.


“이 공원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 얼굴을 봐도, 니 친구 얼굴만큼 유니크한 아름다움은 발견하기 어렵다“

....


7월초 뉴욕의 무더위에 땀에 젖어 머리는 촉촉해졌고 지친 모습으로 그 곳을 찾았던 나는 차마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내 얼굴이 내 얼굴이 아닌 것 같은 느낌... 일부러 영어를 못 알아듣는 척 빨리 그가 마법의 주문 같은 말을 멈춰주길 바랐다. 으으.

한참 찬사를 퍼부은 그는 좋은 하루 보내라는 쿨한 인사를 건네고 자전거를 끌고 떠나버렸다.


그가 가고 난 뒤, 친구는 농담반 진담반으로 황당하다는 듯 한마디 툭 건넸다.

“아니, 나는?.....”

ㅋㅋㅋㅋㅋㅋ 빵터지고 말았다.


그 일이 있고 시간이 좀 지나 생각해보니, (장담할 순 없지만) 그는 뭔가 나한테 껄떡거릴 의도로 말을 했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보통은 관심있는 이성에게 환심을 산다거나 전화번호를 물어보고자 사전 작업처럼 칭찬을 건네기 마련인데 그는 간접 칭찬 전달만 하고 달 길을 간 것이다. 대가나 목적 없이 누군가에 대한 진심어린 찬사를 보낸다는 게 어떤 마음인지 새삼 궁금해졌다. 또, 나도 누군가에게 내가 느낀 솔직한 감정을 아무 거리낌 없이,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표현해본 적이 있었던가?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까? 아니, 나는 솔직히 자신이 없다. 이렇게 생각하니 그 대화는 띠용했지만 참 특별한 순간이었던 것도 같다.


두 번째는 포드 파운데이션 빌딩 내부의 인공정원을 보러 간 날의 대화다. 뉴욕에 오기 전 여기는 꼭 가보겠노라고 핀을 꽂아놨던 곳인데, 회사 건물이다보니 현관 로비 쪽이 들어가기가 조심스러운 외관을 하고 있었다.

유투브 채널 ‘셜록 현준’ 뉴욕 편에서

사진처럼 안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서성이는 날 보고 깔끔한 양복 차림의 흑오빠가 다가왔다. 무슨 일로 왔냔다. 그저 소심이 아시안 걸인 나는 한껏 긴장해서.. 엄... 하며 대화를 시작했다. 여행 중인데 여기 정원을 보려고 한다라고 했더니, 오늘 여기서 행사가 있어 출입할 수 없다고 미안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했다. (대통령 영부인이 오는 행사란다.) 이거 너무 기대했는데 아쉽다며, 언제 오면 볼 수 있을까? 물어봤더니 며칠 뒤 토요일에는 들어올 수 있다며 상냥하게 알려준다. 알겠다며 돌아서 가려는데, 다시 나를 불러 세우는 옵화.

“근데 그건 그렇고 니가 입은 옷 이쁘네.”

하며 미소를 보낸다.

칭찬마저 거절하는 게 미덕인 한국인이지만, 그때만큼은 수줍게 외쳐봤다.


“Thank you! Have a good one!"


내가 경험한 스몰톡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 세상에 대한 애정, 찬사이자 상대에 대한 배려를 보여주는 짧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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