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과외 공화국

뭔가 좀 이상해져버린 이 시대의 엄마들, 학생들

by 언디 UnD

(Cover image generated by ChatGPT 4o)


대한민국의 사교육 열풍은 예나 지금이나 참 대단하다. 오죽했으면 80-90년대에는 입시 과열과 사교육비 부담 해소 명목으로 과외가 법적으로 금지되기까지 했을까.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자라나는 학생들이라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학원을 안다녀봤거나, 과외를 한번도 안받아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도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여러 종류의 과외 수업을 받아봤고, 과외 선생님으로서 많은 학생들을 만나 수업을 해 봤다. 과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과외는 효율적인 학습을 위해 일정 부분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중요한 실력 보완 및 향상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다만 과외를 했던 선생님으로서 정말 크게 실감한 부분이 있다면 과외를 받는 학생도, 과외를 시켜주는 부모님도 내가 학생이던 20여년 전과는 정말 많이 달라졌다는 점. 단순히 내가 나이를 먹고 '옛날 사람'이 되어가는 것인지,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 수 만큼 다양한 우주를 만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시대의 학생과 부모님은 뭔가 좀 이상할 정도로 바뀌었다.


먼저, 학생과 선생님의 관계 설정부터가 다르다. 선생님은 디지털 자본주의 시대에서 상품이자 옵션이다.

학원 등의 개인 교습소를 차려서 운영하는 전문 과외 선생님들이나 학부모 간 소개를 통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온라인을 통해서 인터넷 쇼핑처럼 과외 선생님을 구하는 추세가 일반화되었다. 이렇게 과외를 구하는 과정에서부터 과외 선생님은 학생에 대한 '부모'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도구라는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제품 스펙에 해당하는 선생님 학력 및 기본 정보, 그리고 제품 상세 정보 같은 수업 안내 글을 읽고, 소비자들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제품인 선생님을 1차적으로 선별한다. 마치 온라인 서비스를 이용하듯 1회 체험 서비스에 해당하는 '시범 수업'도 당연히 요구된다. 운 좋게 선택 받아 시범 수업을 진행하고도 정규 수업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는 다반사다. 불려간 선생님 입장에서는 시범 수업을 위해 준비한 시간과 노력, 이동 시간은 보상받기가 힘든 구조다. 학부모 입장에서는 선생님은 차고 넘치기에 입맛대로 써보고 아니면 말면 그만이다. 생각보다 별로인 제품을 구독 취소하고 환불 받듯 말이다.


디지털이 빠르고 편하고 효율적이라 좋은 건 맞는데, 직접 경험해보면 이마만큼 적나라한 자본주의 시장 논리가 적용되는 순간도 없는 것 같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 서로를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콘 하나, 닉네임 하나에 불과한 존재를 잠깐 실물로 확인하는 정도의 소통이 있을 뿐이다. 제품을 실제로 써보고, 별점을 매기고, 아니면 그만일 뿐인 한 두시간 내외의 만남. 학생도 자신의 말 한 마디, 평가 한 마디가 앞으로 과외를 계속할 것인지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는 걸 아는 듯, 1회성이 될지도 모르는 과외 선생에게는 시선조차 잘 맞추지 않는다.


최대한 친절하고 부드러운 태도로 학생과 대화하고, 목터져라 인풋을 넣고, 학생 실력을 분석해주고, 부모님과 면담하고 집에 돌아오면 한참 뒤에 연락을 받았다. 학생 본인이 원하지 않아서, 다른 학원 시간과 맞지 않아서, 좀 더 알아봐야할 것 같다며, 학부모들은 불투명한 이유들을 앞세우며 최종 불합격을 통보해 왔었다. 처음에는 내 실력의 부족일까 자책하며 약간 상처도 받았다. 거절이 유쾌한 사람은 없기 때문에 상황을 복기하며 내 문제들을 분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명확한 답은 없었다. 어떤 때는 합당한 이유가 있기도 했을 것이고, 어떤 때는 별다른 이유 없이 선호의 문제로 거절당했을 것이다. 어느 시점부터는 과외 수업을 시작하기 전까지의 과정에서는 선생님의 진심어린 태도나 티칭 실력 같은 객관적인 요인이 중심에 자리잡고 있지 않는다고 결론짓고 불필요한 감정을 소모하지 않기로 했다. 처음에 시범 수업 과외비를 굉장히 적게 책정했다가, 나중에는 수업 준비를 위한 노력, 이동 시간, 기회 비용까지 다 책정해서 합당한 가격을 매길 수 있게 되었다. 거절을 당해도 마음이 편할 정도 선까지.


두 번째로, 학생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선생님을 대하는 태도, 공부를 하는 태도, 삶을 바라보는 태도.

시행 착오를 거치다보니 포기하고 싶을 때쯤 운 좋게 여러 학생들을 만나게 되었다. 내가 과외비를 아주 저렴하게 받지는 않았기 때문에 가정 환경이 그래도 제법 괜찮은 학생들이었고, 떠올려보면 아주 고마운 학생들도, 아직까지도 마음이 어려워지는 학생들도 있다. 안타까운 것은 내가 어릴 때와는 달리 정말 터무니없이 해맑은 행복함, 꿈꾸는 즐거움 같은 것을 지닌 학생들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한 학생은 운동을 전공하는 학생이었다. 학생 집은 언젠가 나이들어 돈벌어 살고 싶다고 생각한 서울의 어떤 동네였다. 저녁 퇴근 시간 꽉 막히는 길을 뚫고 도착한 곳. 학생 어머님은 고운 미소로 인사하며 나를 맞이해주셨다. 그런데 학생은 코빼기도 안보인다. OO아, 선생님 오셨어~ 라는 어머님의 달래는 듯한 말에 그제서야 인사 없이 거실 뒤쪽 방에서 공부방 쪽으로 걸어나온다. 수업이 시작되고 열변을 토하는 나와 수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학생의 모습이 대비된다.


선생님 이제 10분 남았죠? 선생님 이제 5분 남았죠? 선생님 이제 끝날 때 다 됐죠? 하며 알람 시계처럼 마칠 시간을 알려주는 학생 덕분에 막판 30분에는 수업 흐름이 지속되기가 어렵다. 어머님은 "우리 아이가 기본 실력은 괜찮은데, 주관이 강해서 시키는 거 잘 안하려고 해요. 훈련 때문에 일정이 바쁘니 숙제도 너무 많이 내주지 마세요, 선생님." 한다. 최대한 천천히 아이가 흡수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수업을 진행한다. 2번째 수업이 끝난 다음 날, 뜬금 없는 시간대에 어머님의 메시지를 받는다.


"선생님, 잠깐 통화 가능할까요?"

뭔가 문제가 있었나 싶어 살짝 긴장한 채로 전화를 건다. 어머님 말을 들어보니 요컨대, 수업이 너무 천천히 진행되는 것 같단다. 자습을 하거나 다른 선생님이랑 수업을 해도 교재 앞부분만 여러번 하게 되는데, 선생님은 진도를 빠르게 빼달란다.


아니, 바빠서 숙제도 내주지 말라고 하고, 수업 시간에 집중도 제대로 못하는 학생인데 진도만 빠르게 빼달라는 건 또 뭔지? 나에게 있어서 이런 요청은 멋진 초고층 빌딩을 세우려니 너무 자재가 많이 필요하니 다 빼버리고 가건물만 빠르게 세워달라는 말처럼 터무니없이 들렸다. 그 뒤로도 그 어머님께는 수업에 대한 요청 사항이나 피드백이 연속해서 있었고, 근본적으로 실력을 향상시켜주려는 수업 목표는 무참히도 흔들렸다. 학습 과정은 어떻든 간에, 결과가 어디로 향하든 간에 지름길로 빠르게 가고자 하는 부모. 그러나 어떤 과목도 하루 이틀만에 완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정말 실력을 향상하려면 필요한 단계가 있다는 것, 누군가 지름길이 있다고 하면 그건 사기이거나, 반드시 부작용을 낳게 된다는 생각을 나는 맘속으로 간직할 수 밖에 없었다.


어머님에게는 그저 나는 학생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우주에 잠깐 걸어놓은 인공위성 같은 정도였다. 자녀의 객관적 수준이 어느정도인지, 무엇을 알고 모르며 어떤 내용을 배워야 하는지는 관심이 없고 중요하지도 않다. 자녀와 친밀함을 유지하지만 뭐든 자녀가 원하는 대로, 자녀 중심으로 맞춰주는 태도가 어떤 아이를 만들어왔는지 눈으로 직접 목격한 사례였다. 아이의 자기 주도성 때문에 머리가 띵해지는 시간이 늘어났지만, 어머님은 일관되게 친절하게 간식거리며 음료를 준비해주셨고, 과외를 그만두기 전 명절 선물로 어머님은 비싼 명품 뷰티 제품을 내게 줬다. 대부분의 시간을 어른인 부모님과만 소통하며 운동에 몰두하며 지내는 그 학생이 꼽은 이루고 싶은 꿈은 운동 선수로 성공해서 돈을 많이 버는 것. 14살 짜리의 대답이었다. 결국 그 학생은 운동에 전념해야 한다는 이유로 과외를 그만두었다.

얼마 후 과외 앱에는 같은 계정으로 새 선생님을 구하는 글이 최근 게시물로 올라와 있었다. 나는 적어도 그 아이에게 선생님이 아니었다. 언제든 누군가로 대체 가능한 과거의 상품이 된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부모와 자녀 사이의 관계가 달라졌다. 그들의 소통 방식과 친밀함까지도.

공통적으로 모든 학생에게 적용되는 이야기다. 위에서 언급한 케이스처럼 부모님과 너무 친밀해도, 또 부모님과 너무 거리가 멀어도 문제는 발생한다. 대부분 요즘 부모들은 10대 자녀와 친구처럼 친한 사이를 지향한다. 또 대체로 친밀함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다자녀 가정이 많지 않아서인지 한 명의 자녀에게 모든 기운과 노력과 정성을 쏟는 모습도 눈에 띈다. 하지만 조금 더 속속들이 살펴보면 부지런한 듯 게으름을 피우는 부모님들도 상당히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인간이 흥미로운 것은 끝 없이 이어지는 경험의 연속선에 놓여져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삶을 영위해 간다는 점이다. 어릴 때는 아이의 모든 우주는 부모님이기에 부모가 시키는 대로 어느 정도 따르겠지만, 특정한 시점이 되면 이전과는 다른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부모가 보호해주던 아늑한 울타리를 벗어나 혼자 힘으로 성공과 실패를 맛보게 되는 것이다. 아이에게는 학업을 포함하여 다양한 영역에서 자신있게 잘하는 일도, 불편하거나 하기 싫은 일도 생기고, 많은 충돌도 경험한다. 이 과정에서 부모님과 어떤 방식으로 소통을 하느냐, 부모님이 이 아이의 고된 성장의 시간을 어떻게 함께 해주느냐가 그 다음 스텝으로 이어져 아이의 삶, 사람, 세상에 대한 관점과 가치를 꾸준히 형성해나가게 된다. 준비가 충분히 되지 않은 경우, 이 때쯤부터 부모로서의 역할이 다른 의미로 힘들어지게 될 수 있다.


돈을 많이 벌어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해 주는 것도 물론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요즘 시대의 학부모들은 너무 이것에만 몰두하는 것은 아닌가 염려스러울 때가 많다. 근본적으로 건전한 자녀 양육 및 교육 방법을 모르거나 시간이 충분지 않아 무작정 돈을 써가며 사교육을 최대한으로 우겨넣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그렇게해서 운 좋으면 자녀가 쓴 돈만큼은 잘 따라와줘서 일정 수준으로 학업 수준을 유지하는 경우가 있고, 시작부터 잘못된 단추를 끼워 회복하지 못하고, 시간이 흐를 수록 더 큰 돈을 들여 만회해보려는 객기를 부리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게 정말 단순한 자식 ‘뽑기 운’의 문제일까? 부모님이 기대하는 대로 아이가 따라주지 않을 수도 있고, 어쩌면 너무 순응적이어서 부모님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려고 하게 될 수도 있다. 각각의 경우에 일상적으로 꾸준하게, 알맞은 방식으로 부모가 아이를 훈련해주는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느 누구도 부모보다 그 자녀를 더 잘 알고 이해할 풍성한 바탕을 가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게 다소 찌질한 회고록이지만 내가 과외 선생님으로서 진정으로 바랐던 것은 정말 공부를 잘하고 싶고, 그 방법을 알고 싶은 학생을 만나 내 성공 경험을 전수해주는 일이었다. 내가 바로 중학생 그 시기 즈음, 누군가보다 더 영어를 잘하고 싶어졌고, 그렇게 좋은 과외 선생님을 만나 내 인생을 바꿀만한 실력 향상을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공부가 더 좋아졌고,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경험이 지금 여기까지 나를 이끌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내가 만나온 학생들과 부모님들은 내가 선물해 주고 싶은 것에는 도통 관심이 없었다. 누군가는 너무 빠르고 간편한 결과값을 얻기만을 바랐고, 또 일부는 공부는 커녕 더 넓은 의미에서 나아가야할 방향성도 찾지 못하고 현실을 회피할 방법만 찾고 있었다.


결국 나는 한 사람의 삶의 감각을 일깨워준다는 것, 그 길을 함께 찾아나가준다는 것은 한낱 과외 선생님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아닌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나는 주제도 모르고 너무 야망이 컸고, 수요 없는 공급으로서 돈을 대가로 내 가치를 건네주려 할 때마다 남모르게 상처를 받곤 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타임머신을 타고 내가 자라온 환경과 내 과거의 시간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https://youtu.be/PmM4Gi35_jc?si=qx4N3k0YMiDxYN3T

그 아이들이 자라서..


https://youtu.be/CY8y5g-q-9I?si=g13hTwBh0dJ9CHmE

진정한 행복을 대가로 맞이한 우리나라 현실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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