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입학을 축하합니다

그 때 였다. 인생 2막의 시작.

by 언디 UnD

아기들은 4살까지의 귀여움으로 평생 효도를 다 하는 거라는데, 나에게 있어서는 서울대학교 입학이 우리 아빠, 엄마에게 할 수 있는 최대치의 효도가 아니었나 싶다. 2008년 3월 3일, 아마도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대학교 입학식 날이었다. KTX를 타고 내린 서울역 앞의 겨울은 유난히 추웠고, 칼바람이 불면 두피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차갑게 얼어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관악산 자락에 위치한 우리 학교는 추워도 너-무 추웠고, 관악의 3월은 봄이 아니었다. "서울대입구역"이라는 버젓한 지하철역 이름과는 다르게 학교가 바로 앞에 있는 게 아니라 한번 더 버스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버스 배차간격을 못 맞춰 지각할까 안절부절하던 이 때의 나는 수년이 지나면서 그 경사진 길을 걸어서 씩씩하게 오갈 수도 있는 체력도 생겼다. 새롭고 낯설었던 모든 풍경이 금세 의식을 못할 정도로, 별 것 아닌 익숙한 배경이 되었다.


서울대 인문계열1 이라는 애매모호한 전공으로 합격한 나. 서울대 인문대학에서는 전공을 정하지 않고 입학하는 계열제로 입시가 진행되었는데, 인문계열1에는 인문대생이라고 하면 즉각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영어영문학과, 국어국문학과, 서어서문학과, 불어불문학과 등 각종 언어와 그 언어로 쓰여진 문학과 관련된 전공이 포함되어 있었다. 입학 후 1학년 때 수강하는 관심 전공 과목과 평균 성적으로 2학년이 되기 전 전공진입이라는 과정을 거친다 했다. 나는 사실 '어느 과를 가던 무슨 상관이랴'라는 마인드였다. 점수를 맞춰서 입시를 지원한 자의 왠지모를 패배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확고한 사명감을 가지고 어떤 전공을 해야 할지 분명히 목표가 있는 동기들에게서 느끼는 이질감 때문이었을까.


학교 다닐 때 필독서 목록도 다 마스터하지 못했던 나는 사실 문학 이런 건 나랑 너무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어렵게 학교에 들어왔지만, 나는 '이방인' 같다는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주변에는 고등학교 내내 내신 1등을 놓치지 않고 내신 점수가 만점에 가까운 친구들도 있었고, 서울에서 제일 좋은 외국어고등학교를 나왔다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대원외고 키링을 가방에 달고 다니며 자부심과 확신에 찬 모습을 보이는 친구들도 있었다. 여러 세부 전공 중에서 가장 합격 커트라인이 높은 건 영문과였다. 소위 '서울대 영문과'의 위엄일까. 이런 타이틀과 그것이 지니는 의미 같은 것에 민감하지 않았던 나는 대학교에 와서까지 불필요한 경쟁을 하고 싶지 않았다. 영어를 좋아했지만 중세 영어를 배우거나 고대 영어로 쓰여진 문학을 음미할 정도의 깊은 배경 지식은 없었다. 자연스럽게 내가 가장 편하게, 잘 사용할 수 있는 언어인 모국어로 마음이 기울었다. 누군가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랬다.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면 세계 최고 아니냐고.


많은 사람들이 서울대 국문학과에 대해 착각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국문과를 가면 '글을 창작하거나 그 방법을 알려줄 것'이라는 생각, 그리고 '국어 맞춤법을 배울 것'이라는 생각이다. 둘 다 천만의 말씀이다. 문예 창작은 알아서 할놈할이고, 이와 상관없이 서울대 O어O문학과를 나오는 사람들이 하는 일은 딱 두가지다. 평론 그리고 연구. 속되게 말하면 남이 써 놓은 글을 파고들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뭔 소릴 한 건지 분석, 평가하고, 이걸 글이라고 썼냐? 하면서 잔소리하는 게 우리가 4년 간 갈고 닦는 활동이다. 한국어, 영어, 스페인어, 불어, 독어 등 언어만 다를 뿐, 같은 계열에 있는 모든 전공이 동일하다.


이전 글들에서 내 지난 전적을 밝혔었는데, 나는 어릴 때부터 게임과 컴퓨터, 인터넷 방송을 좋아했고, 사람과의 소통,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내가 발 딛는 세계를 확장하는 것을 좋아했다. 남이 시켜서 하는 반복되고 의미 없는 일은 구미가 당기지 않았었다. 문학 소녀와는 거리가 멀었던 사람이 국어국문학과를 선택했으니, 얼마나 공부가 재미가 없었을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수업에서 다루는 작품들보다 도서관 깊은 곳에서 공부와 상관없이 찾아 읽는 소설들이 더 재미있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수능만 잘 치면 그 후에는 모든 자유가 주어질 줄 알았지만, 서울대학교 입학 후에도 여전히 학점 순으로 많은 혜택들이 분배되곤 했다. 이미 오랜 시간 점수 경쟁에 익숙했던 친구들은 전공 적성과는 무관하게 요모조모 알뜰살뜰 학점을 잘 챙겼다. 나는 좋은 학점을 받아야한다는 것에 동기부여가 거의 없었고, 어찌보면 겉돌고 있었다.


그럼에도 국어/국문 중에서 국어학, 즉 언어학을 배우는 쪽에 훨씬 더 흥미가 있어서 그나마 학업을 놓지 않을 수 있었다. 언어학은 일종의 논리학 혹은 수학에 좀 더 가까운 느낌이었다. 문과 영역에서의 이과적인 측면이라고 해야할까. 여러 케이스들에서 보편 원리나 법칙을 찾아내고, 새로운 케이스에 적용해보는 과학적인 접근 방식을 배우는 건 지적인 만족감을 줬다. 촘스키라는 언어학자의 이름도 멋있었고, 남들이 모르는 세상 속 숨겨진 비밀을 알아낸 기분이 들곤 했다.


그럼에도 어느 시점부터는 국문학이 내 전공이었지만 내 전공이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내가 배우고 익히는 게 매력적이지도, 자랑스럽지도 않고 세상과 동떨어져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언젠지 감도 오지 않는 오랜 과거의 역사를 되돌이켜보고, 어느 인물이 찌끄려놓은 말과 글, 시, 소설에 깊이 파고들어 그 의미를 해석하는 일 같은 건 나랑 아무 상관도 없는 '죽은 세계의 일' 같았다. 그건 교수님들, 그리고 팬심어린 덕후들만의 관심사 같았다. 대학교 3학년 즈음이었을까. 한국고대문학사라는 이름의 수업을 듣던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한번 본적도 없고, 어디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화질이 안좋은 커다란 비석 사진에 적힌 시구를 읽으며 그 작품성에 감탄하는 노 교수님을 보며 머리에 나사가 하나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힘들게 들어온 대학에서 세상에 어떠한 영향력도 발휘할 수 없는 것들을 배우며 시간을 보내야 한다니 숨이 막힐 정도로 무력해졌다. 이대로는 참을 수가 없었다.


학교 공부는 다 그래. 라는 말로 회피하기엔 몇년 후의 미래가 걱정이 되었다. 학교 공부야 그렇다쳐도 이 학업을 마친 후 나는 세상에 어떤 접점을 찍고 살아가게 될까가 그려지지 않았다. 허구의 세계 속에 갇혀 붕 뜬 기분이 들었다. 다행히 대학교에서는 학업만 하며 지내도 되지 않을 수 있게 다양한 놀거리가 주어졌다. 어릴 때부터 엄마의 예능 조기 교육으로 몇 가지 악기를 다룰 줄 알고, 노래하는 것을 꽤 좋아했던 나는 밴드 동아리에 들어갔다. 서울대학교 학생들은 스트레스가 많은 건지, 전통적으로 밴드부가 많았는데 그 중에서 나름 학생회관 건물에 동아리방이 있는 중앙동아리 밴드 하나에 들어갔다. 그러면서 공부가 아닌 무언가에 깊이 빠져 있는, 약간은 루저인 듯한 개성 넘치는 학우들을 만나게 되었다. 같이 대중가요가 아닌 인디밴드 곡들을 들으며 음악적 취향을 나누기도 하고, 합주를 하며 공연도 준비하면서 학기의 시간은 학업 외의 좋아하는 일들로 조금씩 채워져 갔다.


그리고 진짜 고민이 시작되었다.

나는 뭘 하면서 살아야되지?

나는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 사람이지?

내 심장을 뛰게 하는 일은 어디에 있는 거지?


이런 질문들에 답을 내리지 못하면 도무지 안될 것만 같은 절박함에 다다랐다. 어떻게든 결론을 내야만 했다. 어릴 때 고향 도시를 벗어나 서울이라는 세계로 오고 싶었던 것처럼, 나와는 불협인 이 세계를 벗어날 수 있도록 새로운 세계를 발견해야만 했다. 그렇게 먼 길을 돌아온 듯 다시 관심의 영역으로 돌아와, 미디어와 컴퓨터, 게임, 애니메이션, 디지털 서비스 등을 다루는 IT 관련 전공을 알게 되었다. 인간과 컴퓨터의 상호작용(Human-Computer Interaction)을 다룬다는 이 몽글몽글한 학과가 내가 마주한 또 다른 세계였다. 이 학과로 복수전공을 하고, 이후 다른 전공으로 석사까지 하게 되었지만 내가 그렇게도 벗어나고자 했던 “국어국문학과”의 타이틀과 전적이 내 일부가 되어 지금껏 나와 함께 하고 있다는 게 놀랍다.


학부 시절의 이야기를 쓰다보니 그 때의 정체모를 두려움과 막막함이 지금까지 전해져와서 다소 네거티브하게 서술이 되었지만, 서울대학교는 정말 훌륭한 대학이고 내 인생을 바꾼 중요한 2막이었다. 수업 자체도 물론이거니와 서울대학교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대한민국 다른 어떤 집단에서도 만날 수 없는 유형의 사람들이고, 한 마디로 정의내리기 힘들 정도로 다양하고 독특한 점을 가지고 있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 보니, 20대 초반에 다양한 범주의 성실하고 똑똑한 사람들을 만나 교류를 한다는 건 분명 나에게 의미있는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이 든다. 학교 다니면서 당연하게 여겼던 기준들이 사회에 나오고 보니 서울대생이 자타에 대해 가진 엄격한 디폴트 선이라는 걸 느끼곤 놀란 적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서울대학교는 누구에게든 그저 배경에 불과하다. 서울대학교가 인생 전체를 결정짓지는 않는다는 점, 오히려 누가봐도 절대적으로 유리한 배경이 인생을 운영하는 데 있어서는 더 난점으로 작용할 때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이 글을 썼다. 그 배경 속에서 나는 루저가 되는 경험도 했고, 아무리 노력해도 학점을 도무지 잘 받기가 어려웠던 실패 경험도 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얻은 성취가 먼지보다도 못한 것이 되는 순간이 있다는 처절한 심정도 느꼈다. 그래서 더욱 더 '진짜'가 무엇인지 궁금했고, 그것을 스스로 찾으려고 20대 내내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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