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만큼, 베풀 수 있는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능력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살아간다. 그리고 내가 가지지 못한 능력을 부러워하고 가지려고 애쓰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나 자신을 깊이 탐구하지 않고 타인의 능력을 좇는 삶은 경제적인 효율성의 측면에서도, 개인적 만족감이라는 주관적 차원에서도 그다지 이롭지 않다. 하지만 스스로를 잘 안다는 것이 얼마나 간단치 않은 일인가? 어쩌면 무작정 능력을 키우는 것보단 훨씬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 노력이 필요할 수도 있다. 내 능력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모를 수도 있다. 그래서 때로는 나에 대한 판단을 다른 사람의 평가에 쉬이 맡겨버리기도 한다. 어쩌면 그 편이 편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 결과는 정확하지도 않고, 무의식적으로 나의 가능성을 제한할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은 나에 대해서 나만큼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능력이 하고 싶은 일을 다른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고 싶은 게 많았던 나는 최대한 하고 싶은 일을 해보고, 그 중에서 남들보다 뛰어난 일을 내 능력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영어 시험 성적을 잘 받는 것이 영어를 잘하는 능력이었고,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불러 노래방 점수를 높게 받는 것이 노래 잘하는 능력이었다. 이런 능력들은 수치화했을 때 명확히 입증되는 것이었고, 다른 사람의 인정이 그 확증이었다. 동시에 끝없이 상대화되어 비교 대상의 폭이 넓어질 수록 평균에 수렴하게 되는 판단 기준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수록 통계적으로 나와 비슷한 능력치를 가진 사람들은 축적되어 갔고, 특정 영역에서 미치도록 뛰어난 사람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게 진짜 내 능력이 맞나?’
다른 접근이 필요했다. 타인의 기대치나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내려놓고, 오롯이 나 자신만 생각했을 때 능력은 조금 다른 색깔을 띠고 있었다.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은 행동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바탕이자, 아끼지 않고 타인에게 넉넉하게 베풀 수 있는 근원이었다. 누가누가 잘하나 수치의 대결이 아니라, 자신뿐 아니라 타인, 사회에까지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에너지가 능력이라는 깨달음에 이르렀다.
나는 추상적인 개념이나 사고의 흐름을 구조화하고, 잘 언어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나 스스로 깨닫지는 못했지만 글쓰기나 대화 같은 언어활동을 지속하면서 즐거움을 느꼈던 것 같고, 오랫동안 신뢰관계 속에서 나를 알아온 사람들이 증언해준 특성이다. 이런 게 다른 사람에게 무슨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느냐고 의문을 품을 수도 있지만, 나는 언어를 다루는 사람만이 줄 수 있는 공감과 이해, 위로를 경험한 장본인이다. 어떨 때는 나에게서 시작되기도 하고, 또 다른 때는 타인에게서 시작되는 기적 같은 순간들이다. 말과 글은 평생 동안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하고 쉬운 일이지만, 나는 그 능력을 적절하게 발휘할 때마다 내 몸에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은 상쾌한 기분이 든다. 내가 잘한다고 인식하고 있는 활동들이기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도 아까운 마음 없이, 망설임 없이 능력을 나누어 줄 수도 있었다. 누구보다 더 잘하고 싶기에, 더 열정적이고 진심으로 임하는 일들이다.
그 외에도 내가 정말 애정하는 능력들이 있다. ‘빠른 적응력과 습득력’으로 어떤 걸 배우든 어느정도 수준까지 올라 즐길 수 있다는 것, ‘냉장고에 있는 재료 가지고 창의적인 요리하기’ 같은 실용적이고 다른 이를 행복하게 하는 능력도 있다. ‘국적, 나이 불문 낯선 사람들과 친하게 대화하기’나 ‘적재적소에 이모티콘 잘 활용하기’ 같은 조금 엉뚱한 능력들도 있다. 누구보다 뛰어나서가 아니라, 꾸준히 계발하고 향상시켜서 스스로의 잠재력이 최대화되고 다른 이들에게까지 그 혜택이 확장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능력 같다. 결국, 자신의 능력을 깨닫고 누군가를 위해 그 힘을 나눠주고 있는 사람들은 진짜 능력자들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