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선까지 타인을 나에게 허용할 것인가?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사회 초년생으로서 사회에 첫 발을 디디면서, 그리고 훨씬 그 전부터 생각했던 인생의 큰 어젠다가 나에게는 '다른 사람과의 소통과 관계'인 것 같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사람 사이에서 언어로 소통을 돕는 역할을 하는 통번역 업의 특성 때문에 최근에는 더욱 깊이있게 고민하게 된 문제기도 하다.
10대 때는 기본 사회생활이라 할 수 있는 학교 생활과 더불어 이미 일찍이 눈떴던 온라인 커뮤니티 및 온라인 방송 경험, 20대에는 서울이라는 완전히 낯선 세계에서 대학, 교회, 동아리, 회사 등을 통해 다양한 범주의 사람들을 만나며 '사람이란 무엇인가'를 혼자 탐구해왔다. 사람이 보여주는 언행에는 반드시 이면에 어떤 이유나, 동기, 메커니즘이 작동되고 있을 것이라는 가정은 나를 심리학이라는 학문으로 이끄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자타를 포괄하는 사람에 대한 호기심은 기질적으로 타고나는 것 같은데, 나는 그 호기심이 큰 사람이 분명했다. 내가 궁금해하고, 분석하고, 패턴을 찾으려 애쓰는 것들이 모든 사람들의 관심사는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편차 때문인지 사람들을 더 빨리 파악하고 행동을 더 잘 예측할 수 있게 되면서, 조금 고장난 듯 세상과 소통이 어려운 사람들이 더 쉽게 인지가 됐다.
처음에는 오만하게도 그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주어야 한다는 정의감도 있었던 것 같고, 힘과 노력을 들여 그들이 가진 벽을 무너뜨리려고도 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비슷한 듯 조금씩 다른 유형의 메타인지가 안되는 빌런들을 만나면서 마음을 내려놓게 되었다. 어린 날의 내가 가장 혐오했을지도 모르는 '포기'라는 걸 하게 된 셈. 하지만 나이가 들 수록 가치있는 것에 시간을 쏟기에도 인생이 부족하다는 것을 상기하면 지혜로운 내려놓음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겠다. 심리학 석사를 하면서, 깨닫게 된 한 가지 진리가 있다. 사람은 전부 다 뻔하고 같아보이지만, 사람은 전부 다 다르다는 것. 그래서 관찰할 수는 있지만 내 맘대로 통제할 수는 없다는 점.
그렇다면 통제할 수 없는 타인이 아닌, 통제할 수 있는 자신에 집중을 하자. 이게 아마 대중적으로 인기를 끄는 심리 치료와 마음챙김의 근간이 되는 명제일 것이다. 나도 많은 부분 동의하는 바이다. 상대방이 어떤 언행을 했을 때, 내 감정과 판단을 신중하고 침착하게 잘 관리하면 대부분의 경우 아주 유익하고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인생이 그리 간단치만은 않다. 외부의 상황에 무심히 영향받지 않는 성격이 있는가 하면, 외부의 영향에 과민한 사람이 있고, 가능하다고는 해도 자기 마음 관리에 상당한 노력과 힘이 드는 사람도 있다. 내 자신이 누군가에게 견디기 힘든 외부적 상황이 되지 않는 것이 지향점이 되어야겠지만.
외부의 세계에 지나치게 벽을 세우지 않고 타인과 잘 소통하면서도, 나 자신이 다치지 않게 책임감 있게 보호하는 일 사이의 균형을 잡는 것은 인생의 궁극적 목표라 할만큼 어려운 일이다. 때로는 조금 수월하게, 또 다른 때는 마음을 도려내듯이 힘든 시간을 통해 조금씩 훈련되어 가는 것에 만족해야할 정도일지도 모른다. 반복된 성공과 실패 중에서 이 브런치에는 아마도 내가 손을 떼 버린, "대단한 작품들"에 대한 기록이 담길 것이다. 도무지 손 댈 수 없는 타인들, 어쩌면 거리를 두고 지켜보는 것이 최선인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보면 무릎을 탁 치는 공감이나, 애처로운 연민의 감정이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들과 전쟁을 치르지 않고 현명하게 모두에게 적당히 괜찮은 매일을 만들어나가는 모든 분들에게 영광을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