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 안하는 사람 A씨

이유없는 미움은 오히려 거절하기 쉽다

by 언디 UnD

A를 처음 만난 건 2년 전 3월이다. 학기가 시작되면서 처음 만나게 된 그룹의 일원이었는데, 처음에는 눈에 띄는 특이 사항이 없는 관계였다. 10명 내외의 그룹의 공통 일원으로서 공식적인 소통만 하면 되는 상황이었고, 아직 서로에 대해 많은 정보가 없는 상태였다. A씨를 차치하고라도 그룹 구성원들 모두가 서로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 채 일종의 간을 보는 상태였다고 해야 할까. 그룹 내 다른 이들에 비해 사회 경험이 좀 더 많았던 나는 어색한 첫 인사도, 서로 누구와 조금 더 친해져야 할지 얼핏 엿보이는 심리도 꽤 익숙했다. 직장 생활에서 느낀 관계에 대한 회의감이 아직 선명했기에, 인간관계에 대한 큰 기대는 없었다. 좋은 사람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더 가까워지겠지 정도의 마인드였다.


한편, 성별과 상관없이 그룹에서 대장을 자처하고 나서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누군가 리더를 하고 싶다고 손을 들면, 박수를 쳐주고 인정해주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 그룹에도 역시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그 중 한 명이 A씨였다. 그렇구나. 귀찮은 일을 남 대신 해주는 건 가치가 있는 일이다. 훌륭하군! 잘해보게.


자기 주장이 꽤 강하고, 학교에 오기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들을 주도하는 게 익숙해보이던 A. 어떤 면에선 더 큰 그룹의 일원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어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나는 인기 몰이에는 관심이 거의 없는 데다가 친한 한 두명 정도의 소수 정예 관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를 그저 나와 다른 성격의 사람이라고 여겼다. 그러던 중 그가 내 소수 정예 관계의 사람까지 독차지하고 싶어진 게 문제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단체 대화 상황에서조차 내가 조금이라도 다른 이들과 가깝게 친밀한 내용을 나누면 정색을 하면서 대화의 맥을 끊는다든지 싫은 티를 대놓고 냈다. (그의 부정적인 반응은 사후적인 기억이고, 그 당시에 나는 고개를 좀 갸웃하고 넘어갈 정도였을 뿐 실시간으로 내 인지의 영역으로 넘어 오지는 못했다.)


모두 함께 특정한 대화 주제를 나누더라도 나에게는 괜히 뚱하게 대답을 한다던가, 무반응으로 일관하던 A. mbti가 아직 한참 유행하던 시절이라, 이런 저런 이야기 중에 한번은 내가 단체 카톡방에 다들 mbti가 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각자 하나하나 자기소개하듯 mbti를 밝히는 데 끝까지 아무런 메시지도 남기지 않은 사람이 A였다. 뭐, 모두가 의무적으로 자신의 mbti를 밝혀야하는 것은 아니니까 별로 신경쓰지도 않았다. 다른 사람들과 서로를 조금 더 알아가는 데 활용하는 작은 단서였을 뿐이었고. 나중에서야 전해들은 말로는 그 당시에 내가 mbti를 캐물어서 매우 불쾌했고, 그게 나를 싫어하게 된 이유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마지막 학기까지 가장 친하게 지낸 사람 중 한 명이 mbti 신봉자였기 때문에 그 말이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 핑계라는 걸 난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너무 다른 성격의 두 사람이 만나서 일으키는 미묘한 스파크라고 생각했다. 퓨어하게 그를 이해하려고 애썼고, 심리학을 공부한 사람 답게 그의 삶의 배경, 가족 관계, 다른 이들과의 역학, 성향 등에서 행동의 동기를 해석하려고 인지적 노력을 들이기도 했다. 나의 분석에 따르면 A는 인정 욕구가 큰 사람이었고, 불확실한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커 상황을 통제하려고 하는 성향도 강했다. 보통 교수님들께서는 수업 자료에 대한 키워드 정도만 제시를 해주는데, 목적은 주제 배경지식을 파악하는 것이다. 대부분 그 키워드를 가지고 실제 수업 자료를 쪽집게처럼 맞히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A 빼고는 말이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수업 자료를 준비한 다른 사람들에게 미리 자료를 요청해서 통역을 해보고 오는 경우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예습의 열정만큼은 좋게봐줄 수 있지만, 그건 수업의 목적과는 맞지 않는 행동이었고, 수업에서의 통역 내용이 평가에 들어간다는 점에서 다른 사람들과 형평성도 맞지 않았다.


모든 것을 자기 위주로 유리하게 만들어가려는 그의 행동에 거리감과 불편감을 느끼게 된 나는 더 이상 그를 지나치게 이해하려고 하거나 그와 대화하거나 다른 이들에게 그를 언급하는 것조차도 꺼리게 되었다. 결정적으로 거의 유일하게 친하게 지냈던 B와의 관계 사이에 A가 비집고 들어오려고 시도했기 때문에, 나는 B에게도 어느정도 거리를 둘 수 밖에 없었다. B와 관계를 유지하려면 계속 A의 이상한 견제를 받아야만 했고 그건 학업 이상으로 피로도가 너무 컸다. 나는 A를 멀리서 관찰하면서 미묘한 양가 감정이 들었다. 학업 난이도가 높고 모두가 어려움을 느끼는데, 그렇게 미리 준비를 해 와도 그는 유난히 수업 시간에 남들보다 더 긴장하고, 통제하려고 하면 할 수록 통제 밖으로 벗어나게 되는 걸까. 교수님을 포함해서 어느 누구도 날선 비난을 하지 않는데, A는 통역 수업시간이 끝나고 모두가 보는 데서 눈물을 보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누군가의 위로를 구했다. 나는 한숨이 났다.


언제쯤부터였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우리의 첫 만남이 오래 지나지 않아 그는 다른 모두와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으면서 나의 인사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그의 눈을 바라보며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려는 내 눈에 A는 반응하지 않았다. 한 학기 동안은 그의 반응이 어떠하든 인사를 계속했다. 다른 사람들과 인사하면서 굳이 그에게만 쏙 빼고 인사를 안하는 것이 너무 유치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거의 매일 같이 수업에서 만나는 사이였지만 그는 단, 한번도 인사를 받지 않았다. 나는 적극적인 거절의 눈을 바라보며 고민했다. 내가 여기서 인사를 그만두면 A와 같은 수준의 사람이 되는 걸까.


운명의 장난인지, A와의 인연은 마지막 학기까지 꽤 길게 이어졌다. 엄밀히 말하면 2년, 4학기 내내 대부분의 수업을 그와 같이 듣게 되었다. 언젠가부터 나도 그에게 인사를 멈추었다. 학기가 거듭될 수록 학업 과정이 너무 힘들다보니, 부정적인 거절의 반응을 계속 받아내면서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는 멘탈 상태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뭐래도 상관 없었다.


처음에는 그를 극복해내지 못하는 것 같은 내 자신에게 조금 실망했던 것도 같다. 내가 말실수를 했던가? 그냥 내가 미웠던 걸까? 나를 경쟁 상대로 생각한 걸까? 여러 가지 이유를 떠올려보기도 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A에게 그 이유를 묻고 속시원한 해결을 하고 싶지는 않을 정도로, 나에게 A는 가치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불필요한 일에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았다. 신경을 끄고, 말을 줄였다. 의미있는 소통에 집중하기로 했다. 조금씩, 점점 A를 마주해도 마음의 동요가 없어졌고, 마음이 편해졌다.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선의도 의미있는 상대에게 사용하는 것이 맞다는 마음의 확신이 들었다. 이유 없는 미움은 튕겨내기도 쉽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실, 잘 모르겠다. 어쩌면 A의 입장도 들어봐야 공평한 잣대로 판단할 수 있는 인간관계의 흔한 트러블이었을 수도 있다. 처음부터 안 맞는 상대는 친해지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더 빠르게 쳐내고, 힘 들이지 않는게 현명했을지도 모른다. 직장 생활을 하다가 학교로 돌아와서 경험한 대부분이 훨씬 더 자유롭고 틀에 갇히지 않아서 좋았다. 그래도 한 가지 회사 생활이 쿨했던 점이라면, 불편한 사이라도 막무가내로 인사를 씹지는 않았다는 것. 그리고 확실한 한 가지는 A가 그토록 바랐던 인기와 사랑, 사회적 인정과 결과적 성공은 타인에 대한 기본적 예의와 존중을 탑재하지 않는 한 성취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 이유 없는 미움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간다는 것. 이 글에 한때 불편했던 A에 대한 감정도 봉인해서 보내주기로 한다.


Eğilen baş kesilmez
인사하는 목은 잘리지 않는다
-터키 격언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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