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시야에 갇힌 B와 C

친구들아, 함께 일하는 방법도 열심히 배우자

by 언디 UnD

지난 글에서 A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나서 두 번째 글을 쓰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

직접 겪어보지 않은 비사회적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일이 의도치 않게 독자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을 겪는 것이 나만이 아니라는 사실'이 주는 일종의 위로와 안도감, 거리두기와 객관화의 효과가 있다고 생각이 들어 다시 글을 쓰기로 했다. (인간 존재로 인한 간접 스트레스에 예민하신 분들은 여기서 뒤로가기를 누르셔도 좋겠다.)


B와 C는 모두 통역 일을 하면서 만났다. 통역 업무를 나가면 짧게는 하루에서부터 길게는 며칠동안 진행이 되기도 하는데, 행사 규모에 따라서 통역 담당 인원이 수명에서 수십명까지 된다. 통역 업무 자체도 개인이나 팀별로 통역사가 배정되어 쭉 같이 페어로 진행하는 경우가 있고, 때로는 통역사의 숫자가 그만큼 되지 않아서 여러 명, 여러 팀을 한 통역사가 상황에 맞게 담당해야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현장에서 통역사들에 대해서 업무를 배분하고, 상황을 정리하고 관리하는 담당자가 따로 있다.


이 행사는 5일 동안 진행이 되었고, 통역 인원은 많지 않은 편에 속했다. 쉬지않고 통역을 해야하는 정도로 현장 업무가 빡빡한 편은 아니었지만, 통역 해줘야 하는 주체가 다양했다. 현장에서 통역사를 관리하는 담당자가 없었고 통역 업무가 잘 구조화된 것은 아니어서 필요할 때 부르면 누군가 달려가서 대응을 하는 식으로 일이 진행이 되었다. 한국 스탭과 외국 팀 스탭 사이에서 영한, 한영 통역을 해주면 되는 것으로 이해를 하고 갔는데, 실상을 보니 외국 팀은 중국어가 조금 더 편한 것이 특수한 점이었다. 또 그 특수한 상황에 더해, 한영 통역사들 사이에 대타로 온 한중 통역사가 있었다는 게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 한중 통역사가 B였다.


처음에는 모두 한국어에서 영어로, 혹은 영어에서 한국어로 통역을 하는 것으로 알고 대략적인 업무 범위를 협의한 뒤 일이 시작이 되었다. 노트를 사용해야할 정도로 복잡한 내용은 아니었고, 일상적인 회화체로 짧게짧게 소통하는 내용을 통역해주는 것이 주된 업무였다. 처음에 외국팀은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영어로 소통하다가, 이내 더 편하고 빠르게 소통할 수 있는 중국어로 말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그렇게 되다보니 처음에 협의한 업무 범위를 넘어서서 B가 현장 전체를 통역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한영 통역사들은 멍하니 벙이 찌기 시작했다. 중국어를 1 모국어, 영어를 2 모국어로 사용하는 외국 팀을 통역해주는 일에 있어서 한중 통역사의 존재 자체가 메기와 다름없었다. B는 스스로를 모두가 편하게 찾는 존재, 모두에게 필요한 존재로 세팅했고, 한영통역사들이 미리 나눠놓은 업무 범위대로 하면 좋겠다고 말하자니 괜히 B를 견제하는 것처럼 오해를 살 수도 있었다. 사실, 현장에서 업무 양을 두고 통역사들끼리 경쟁할 필요는 전혀 없기 때문에 B를 제외한 모두가 처음 겪는 난처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업무 장소 곳곳을 뛰어다니며 앞뒤없이 모든 멤버들의 말을 통역해주는 B. 덕분에 한영 통역사들은 꿔다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되었다. 모든 통역사들이 5일 전부를 일하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이런 경우 다음날 업무 인수인계도 어렵고, B가 부재하는 경우에 대처가 안될 게 뻔했다. 현장에서 통역 서비스를 받는 사람들은 '아까 이야기했던 것', '진행하고 있던 것'이 다 공유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체계 없이 일이 진행되는 경우에는 더욱더 일의 연속성은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통번역대학원 졸업한지도 가장 오래되었고, 경력이 제일 많다고 했던 B가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를까? 굳이 갈등을 일으킬 필요는 없었기에 돌려돌려 이런 애로사항을 전달했지만, 그는 전달할 별 내용이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점심시간에는 서글서글한 통대 선배 역할을 하던 그는 업무 시간만 되면 어김없이 같은 패턴을 반복했다. 나는 그만 질려버리고 말았다.


화룡점정은 퇴근시간인 밤 9시가 되었을 때, 그가 조금 더 남아서 현장 일을 더 돕고 가겠다고 했을 때였다. 통역사들은 인하우스가 아니고, 이렇게 행사단위의 단발성 업무는 시급으로 페이를 지급받기 때문에, 현장 상황 때문에 초과되는 시간이 생기면 공식적으로 더 청구를 하는 것이 정상적인 프로세스다. B는 같은 돈을 받으면서 초과 일까지 하는, 성실하고 믿을만한 사람으로 며칠동안 기억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의사결정이 함께 일하러 나와있는 다른 통역사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다는 게 충격적이었다. 솔직히 이 시점부터는 골이 아팠다.


더욱 경악스러운 것은 이런 패턴을 보이는 사람을 회사 다닐 때 만나봤던 기억이 스멀스멀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일자리에서 진급 심사를 하는 직속 상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영원히 이 행사 통역으로 일할 것도 아닌데, 도대체 이 자의 동기가 무엇인지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 단서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이 "우월하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은 욕구, 그것 하나 뿐이었다. 아무런 베네핏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심지어는 피해를 줄 수 있는 행동을 해서라도 다른 사람들과 경쟁해서 더 나은 평가를 받아 보겠다는 것. 그 맹목성과 사회적 인식의 결여가 끔찍했다.


결국 점심시간에도 다른 통역사들은 B와 밥 먹기를 불편해하고 은근히 피하기 시작했다. 분위기를 조금은 감지를 한 것인지 B는 밥을 먹으러 식당에서 함께 줄을 서서 받다가 갑자기 외국 팀 스탭과 함께 밥을 먹겠다고 하고 훌쩍 가버리기도 했다. 뭐, 별 수 없는 멀어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중반에 C가 합류하면서 상황은 어처구니없게 악화되었다.


C는 처음으로 통역 일을 나왔다고 했다. 그를 보며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 라고 생각했다. 내가 처음 일을 나가서 선배들과 함께 일했던 경험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더 잘 챙겨주고 좋은 기억을 만들면 좋겠다고 순수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업무 분장이 명확하지 않았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고, 오히려 한중 통역사인 B 때문에 계속 체계 없이 일이 진행된 게 문제의 발단이었다.


C는 초심자의 패기를 이상한 방식으로 방출했다. B가 자신의 주도권을 굳힌 채로 현장을 장악하는 상황에서, 한영 통역사들에게 업무 요청이 들어올 때 C는 계속해서 손을 들고 모든 일을 자신이 응대하려고 했다. 심지어는 한 파트에 배정이 되어 앉아 대기하면서 소통을 도와줘야되는 상황에서도, 새로운 요청이 들어올 때마다 엉덩이가 가벼웠다. 나머지 통역사들은 뭔가 이상한 기운을 감지했지만, 현장의 모든 사람들의 눈과 귀가 열려있는 상태에서 통역사들끼리 서로 업무에 대한 코멘트를 하거나 부정적인 멘트를 하는 것 조차도 좋은 일은 아니기에 별다른 내색은 하지 않았다.


C의 열정은 충분히 이해가 가고 높이 살만한 것일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과 협업하고 일을 풀어내는 방식은 옳지 않았다. 현장에는 '너'와 '나', 혹은 '통역사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회사와 구성원이라는 단면적인 관계보다 훨씬 더 복잡한 이해관계가 일용직 통역 현장에는 있는 것이다. 직접 통역사들을 고용한 클라이언트(의뢰인), 그 클라이언트가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통역 사용자(1,2,3...)을 비롯해 통역 상황을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이 이해관계자다. B와 C 모두 자기가 잘해서 돋보이고자 하는 목표만 있는 사람들 같았다. 시야가 너무 좁아서, 그 외의 것에 초점을 맞추지 못하는 부적응자들 같았다. 어쩌면 둘 다 통역은 정말 잘했을지도 모른다. 또 직접 소통하는 팀 멤버에게는 도움이 되었을지 모른다. 근데 절대로 혼자 일할 수 없는 통역사에게 요구되는 다른 중요한 역량들을 그들은 인지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던 장면. C 눈에는 B가 참 멋있어 보였나보다. B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밥도 같이 먹고, 대화도 하고, 그 모습을 그대로 흉내내는 걸 보면서 기가 찼다. 역시 초록은 동색인가, 저걸 보고 배우는 게 맞을까. 하지만 이런 걱정도 노파심도 애정어린 상대에게나 값지다는 것을 상기하면서, 나는 흐린 눈을 하고 말았다. 일 그 자체가 주는 보람이나 의미도 포기하기 힘든 부분이지만,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가 나에게는 참 중요하구나, 다시한번 자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흑백요리사2에서 최강록이 했던 말이 있다.

"친구야, 싸우지 말자. 욕하지 말자"


나는 감히 이렇게 그들에게 외치겠다.

"친구들아, 잘난척 하지말자, 눈치 챙기자,

함께 일하는 방법도 열심히 배우자"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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