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노인, 근데 인내할 줄 모르는

늙음을 핑계삼는 사람이 되지 말자

by 언디 UnD

설 연휴 마지막 날, 서울역에 기차가 도착하는 시간이 되면 사람들의 발걸음은 부산해진다. 기차에서 내려서 다른 이동수단으로 귀가를 재촉하는 사람들, 급하게 찾아온 허기를 달래려 식당으로 향하는 사람들, 동시에 다른 기차를 타러가는 사람들이 뒤섞여 역사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그 중에서도 유난히 복작거리는 장소가 있다면 단연코 ‘여자화장실’이다. 개인적으로 급한 상황이 아니면 되도록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공중 화장실을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 이 날은 화장실을 들렀다 가야 맘이 편할것 같았다. 1층에 줄이 길게 늘어섰길래 2층까지 굳이 올라가 화장실 입구로 들어섰다. 2층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아 줄이 어느정도 있는게 보였다. 줄을 서자마자 내 뒤로도 사람들이 계속 들어오는게 옆 눈으로 보였다.


내 뒤에 선 누군가가 신경쓰이는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내 엉덩이에 본인 배가 닿을 정도로 가까이에 서서 자꾸 몸을 앞으로 미는 것이었다. 한국이 사회적 거리가 이렇게 지켜지지 않는 곳이었던가? 순간 당황스러우면서도, 모르고 그럴 수도 있으니 내가 일부로 몸을 약간 오른쪽으로 빼 접촉을 최대한 피했다. ‘이상한 사람이네.’ 하고 보니 까맣게 염색을 하고 안경을 낀 파마머리의 노인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신체 감각이 좀 떨어지는 분인가 보다 하고 말았다.


점점 줄이 짧아지고 내 차례가 다가온 순간, 갑자기 그 노인이 나를 앞지르고 나서는 거다. 화장실이 화변기(쪼그려앉는 옛날식 변기) 양변기 양쪽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사람들이 대부분 양변기 칸에만 들어가다보니 화변기 칸이 비어있는 곳이 있었다. 나는 그 칸에 들어가려나보다 하고 그 노인의 새치기에 대해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근데 변기 앞까지 간 그이가 그제서야 화변기임을 알고 뒤돌아서서 내가 들어갈 차례인 양변기 칸으로 향하는 것 아닌가. 어이가 없어진 나는 이야기했다.

“여기 전부 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요.”

노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렇게 대꾸하며 안하무인으로 양변기 칸에 들어갔다.

“아이고, 나는 다리가 후들거려서 앉아서 못 싸~ (화변기 칸을 가리키며 양보하듯) 여기 비었으니까 들어가세요~~”

?????

도무지 연민이나 동정심을 가지기 어려운 태도였다. 심지어 그 노인의 뒤에는 딸로 보이는 중년의 여성이 같이 서 있었는데도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는 것이었다. 내가 도대체 이게 뭐냐는 듯한 얼굴을 하자 형식적으로 그 여자는 죄송합니다. 한마디를 남겼다.


나는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대로 넘어간다면 이 상황이 잘못된 것 하나 없는 해프닝처럼 지나가버릴 거라는 것을. 나만 두고두고 억울해서 울화가 치밀 것임을. 나는 그다음 칸으로 들어가면서 그 공간에 있는 모두가 들을 수 있게 크게 이야기했다.


누구는 저 칸 들어가고 싶나요? 다 편한 데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똑같지. 참 이상하네.


솔직히 화장실 이슈는 정말 불가피한 상황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자신의 급한 처지를 이해받고 싶다면 응당 그에 맞는 겸손한 태도로 상황을 설명해야 하는 것인데, 막무가내로 앞뒤 신경쓰지않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게 되어 더 관대해지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도 정말 화장실 급했는데!)


이런 사례들이 반복적으로 축적되면서 노인혐오라는 사회현상이 생기는 걸거라는 생각도 자연스레 들어왔다.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기다리는 법도, 줄서는 법도 망각한 그이. 선심쓰듯 자기가 취하지 않은 선택지를 거짓 양보하던 그 모습 덕분에 노인에 대한 편견의 씨앗이 심긴다. 나이가 들어서 모두 그렇게 되는 거라면, 정말로 나이들고 싶지 않다는 씁쓸하고 절박한 심정이 들었다. 앞으로도 나이 듦을 핑계삼아 기본 인격과 예의를 갖추지 않은 사람들이 활개치는 걸 참을 수 없을 것 같다. 노인과 젊은 세대가 서로를 존중하려면, 나이 이전에 인격과 인격으로서 서로를 대해야만 한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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