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생각 #1
시선은 어디까지 배려해야 하는 걸까?
우리 회사엔 긴 복도가 있다.
복도가 시작되는 지점부터 끝나는 지점까지의 호흡이 꽤나 긴 편인데 자칫 반대편에서 누군가 걸어오기 시작하면 급히 고민이 시작된다.
언제부터 눈을 맞추고 아는 척을 해야하나.
어느 시점에서 인삿말을 건네야 하나.
길은 어느 방향으로 비켜주어야 하나. 등등
사실, 이미 그 복도의 구조는 정해져있고
누구나 그 상황을 알고 있기 때문에 민망함을 느낄 필요가 없는 일인데도 매번 그 곤란함의 크기가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어찌됐건 난 이 복도에서 벌어지는 시선처리의 역동이 궁금해서 각기 다른 사람이 복도 끝에 섰을 때마다 상대방이, 또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관찰하게 된다.
어떤 사람은 미리 이 민망함을 대비하여 스마트폰을 손바닥에 붙인 채로 끝까지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지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꽤 멀리서부터 상대방을 보며 당당하게 걸어오다 복도 정중앙 코앞까지 마주했을 때 인사를 해서 상황을 무마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복도가 비좁다 느껴졌는지 지나칠 때 먼저 지나가도록 길을 터주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보통 상대방이 어떻게 하는 지를 따라 그대로 한다. 그것이 나름 배려라고 생각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라, 학생시절을 보내고 성인이 되버린 내 인식 하에서 처음에는 아마, 상대방은 원하지 않는데, 혹은 상대방이 그렇게 하지 않는데 나는 아랑곳 않고 상대방을 빤히 쳐다보며 관찰하는 일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여겼을 것이다.(또는 어긋난다고 학습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상대방이 나에게 시선 맞추려 하지 않는다는 타이밍과 내가 그것을 알아차리는 타이밍을 정확히 맞추기란 쉽지 않기때문에 나중에는 상대방을 똑바로 쳐다보는일 자체를 예방하려 하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또, 그렇게 하는게 차라리 편하기도 했었다.
희한하게도 감각은 쓰면 쓸 수록 예리해지고, 방치할 수록 둔해진다. 거리낌 없이 볼 수 있던 것들은 더 깊이,가까이 내 마음에 담겨지지만, 보지 않고 넘겨버린 것들은 점차 내 마음에서도 멀어져 더이상 보이지 않게 된다.
결국 나는 궁금한것이 있어도, 보고싶은것이 있어도,
혹은 내 눈 앞에 보고싶지 않은 것이 있을지도 모르기에,
또 상대방이 보여주고 싶지 않을 지도 모르는 그런 풍경일수도 있기에, 나는 눈을 뜨고 있지만 예의라는 이름으로 눈을 감아 버렸다.
하지만, 어느 날, 어디에선가
눈을 빛내며 당당하고 또렷하게, 부끄럼없이 누군가가 나를 직시하는 장면을 마주할 때, 나는 갑자기 부끄러워진다.
마치 민낯을 들킨 껍데기 어른이 된 것 마냥 어쩔 줄 몰라진다. 나도 저런 눈빛을 하던 때가 있었지-
보여짐으로 부끄러웠던 것은 내가 아니라 타인이었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불분명한 타인의 시선을 겹겹이 눈에 씌우고 살고 있었다. 진정한 배려는 나 자신을 방치하지 않는 것이라고 깨닫게 되었다.
잘 보는 것은 오래 바라보고 천천히 말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