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 언제 또 이렇게 시간을 내어 가보겠냐는 생각과 나름의 의의를 담아 시작한 여행이건만,
이미 너무도 다르게 삶을 받아들이고 지내온 두 사람의 동행은 녹록지 않았다.
어딘가로 이동할 때마다 구글 맵을 들여다보아야 하는 나와 그동안의 마가 뜨는 시간을 번거롭고 지루하게 여기는 엄마(엄마.. 나도 여기 첨이야..), 돌바닥 길에서 끄는 캐리어가 유달리도 불편하고 힘든 엄마(가이드가 오며가며 버스 실어주고 꺼내 주고 손끝 안 대게 해주는 건 한국 패키지뿐이야...ㅜㅜ), 착착 딱딱 맞아떨어지지 않는 동선과 플로우에 불안한 엄마(이 정도면 정말 잘 맞는 건데 ㅠㅠ...)
심지어 날씨마저 도와주지 않아 이상기후로 폭염이 왔단다.
6월 말 7월 초에 폭염이라니, 유럽은 언제 가도 날씨를 예상하기가 쉽지 않은 듯하다. 악조건 속에 엄마를 어르고, 달래며, 또 간혹 서로에게 삐치며.. 어찌어찌 일주일 넘는 남프랑스 여행을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파리로 향하려던 아침. 결국 일이 터졌다!
파리에서 하루-반나절 밖에 머무를 시간이 없기에 최대한 이른 시간 8시 40분 출발 비행기를 예약해두고 추가 요금까지 내며 택시를 타고 공항에 도착했다.
이른 시간의 공항은 대부분이 그렇듯이 여유롭고, 조용했고, 평안해보였다. 오히려 늦을까 봐 서둘렀더니 시간이 너무 남아서 화장실도 여러 번 들락거리고 괜히 면세점 구경을 더 하기까지 했다. 드디어 보딩하기 위해 탑승구에 줄을 선다!
엄마 조금이라도 덜 무거우라고, 벤치에 앉혀놓고 홀로 당겨질 차례를 기다리는데, 이상하게 시간이 한참 지나도 앞쪽에 아무 움직임도 없는 거다. 다리도 슬슬 아파오고, 허리도 뻣뻣해진 찰나에 갑자기 사람들이 우르르 한꺼번에 한 방향으로 이동한다. 단순 탑승구 변경인 줄 알고, 따라가자며 엄마와 함께 움직였는데....
모두가 본능적으로 향하는 곳은 내부에 있는 항공 카운터였고, 순식간에 긴 줄들이 늘어서면서 일대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직원은 큰소리로 외치며 뭔가에 대해 설명한다. 뭔가 중요한 공지인듯한데,
프랑스어로만 말하니 대체 알아들을 수가 없다.
의아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리고 있자, 뒤에 프랑스 아자씨가 "캔슬레이션. 캔슬레이션" 하는 거다.
엉?............ 왜요..... 대체 왜....... ㅠㅠㅠㅠ ....
하지만 그 아저씨는 영어에 능숙하지 못했고, 이례적인 케이스로 기내 산소마스크가 어쩌고.. 하면서 우리가 타려던 비행기가 뜨지 못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머리가 아득해졌다.
이것이 바로 그 에어프랑스의 저주인가!!!!? 어이없이 처절한 모습으로 서있던 사람들에게 시간이 좀 지나자 변경된 항공권이 문자로 안내되었다. 외국 유심칩을 사서 끼고 있던 내 폰엔 그게 올리가 없었다.. 이메일을 급히 확인해보니 무려 오후 3시 비행기로 자동 변경되어 있는 항공편. 계속 주변에 서있던 그 프랑스 아자씨는 오를리 공항이 아닌 샤를 드골 공항으로 향하는 더 이른 티켓으로 변경하려면 직접 줄 서서 기다린 뒤 카운터 직원과 처리해야 한다고 했다. 이 모든 일이 벌어지는 동안 엄마의 미간은 찌푸려졌고, 나를 향한 간절하고도 원망과 걱정이 혼합된 눈빛이 뜨겁게 쏟아졌다.. (엄마... 내가 비행기를 주저앉힌 건 아냐..... ㅠㅠ)
길고 긴, 인파 속에서의 답답한 기다림(늘상 그렇지만 직원들, 그들은 급한 것이 없다..)이 끝나고, 결국 두 시간 뒤인 10시 10분 비행기로 변경된 표를 받고 나자 줄 밖에서 기다리던 엄마를 만날 수 있었다. 엄마는 어떻게 된 거냐며, 저 멀리에 있던 나조차도 몰랐던 어느 한국인에게 가서 상황을 물어보고 있었다. 나 또한 너무나 지쳐있었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엄마, 여기선 종종 이런 일이 있대. 그래도 다행이다, 그지?"라고 말을 건넸다.
엄마도 상황을 이해하는 듯했지만, 예상치 못한 일들에서 오는 피로함과 곤혹스러움을 피할 수는 없는 것 표정이었다. 왠지 미안하고, 또 안타깝고, 또 원망스러웠다. 그 대상이 나 자신인지, 엄마인지, 비행기인지, 사람들인지 알 수 없었다.
표를 받고 게이트로 다시 오니, 게이트 앞 카페가 이전과 다르게 활발했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상황 속에 한꺼번에 비행 스케줄을 변경하고 나자 그제야 허기를 느낀 게 분명했다. "엄마, 커피 한잔할까" 하다가 보딩이 시작되어 결국 멍한 상태로 비행기에 오르게 되었다. 타는 게 감지덕지.
비행기 좌석에 앉자마자 엄마와 나는 헤드뱅잉을 시작했다. 반 기절 상태로 있다가 승무원이 음료를 주는 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크레마가 진한 커피 한 모금이 나를 소생시켰다. 정말 신기한 건, 분명히 회색빛 스테인리스 주전자에서 부은 건데도 커피 크레마가 살아있었다.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