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살며 귤 한 박스 못 받으면 안 된다던데.
엄마, 아빠 그리고 성경공부 선생님께 전할 귤 세 박스가 새해 인사하듯 오늘, 육지에 도착했다. 다 함께 같은 귤을 보고 환호하고 싶어서 나도 오늘 귤 박스 테이프를 뜯었지.
귤나무에서부터 박스포장까지의 손길의 주인공은 젊은 농부, 선희 선생님이다. 내 도자기 선생님이자, 요가 도반, 그리고 제철마다 안부를 묻는 친구다. 제주에서 만난 귀한 한 인연.
제주도에서 살면서 겨울철 귤을 사 먹는 사람이라면 인간관계를 살펴봐야 한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제주삶 3년 차였던 작년까지는 애인의 지인들의 손에서부터 나온 달콤한 귤을 받아먹곤 했는데, 드디어 4년 차가 되고서야 내 친구에게로부터 귤박스를 전해받고 집 계단을 올라갔다. 싱글벙글 웃으며 선물 받은 기분을 내내 느끼고 싶은 마음에 현관, 신발장 앞 눈에 잘 보이는 곳에 하루동안 두었다.
드디어 오늘 뜯은 박스 안에는 작고 큰 귤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세척이 필요한 유기농 귤이었기 때문에 선희선생님만큼은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정성껏 한 알 한 알 성한 곳은 없는지 만져보며 큰 대접에 옮겨 담았다. 베이킹파우더와 미지근한 물을 섞어 5분 동안 담가두고, 또 한알씩 수건으로 닦으며 집안 곳곳에 올려두었다. 바람이 잘 드나드는 베란다에도 스무 알, 따뜻한 거실 TV아래에 서른다섯 알, 그리고 내가 만든 과일 바구니에는 열 알 정도, 그리고 정리하면서 까먹은 여섯 알까지.
귤을 이렇게 하나씩 만져보며 나를 위해 준비해 둔 적이 있던가. 아무래도 없었다. 선물 받은 귤박스 덕분에 나를 챙겨주는 시간을 삼십 분 남짓 가졌다. 귤을 정리하는 시간이 마치 요가 수련한 것 같았다. 한 가지에 집중하는 일, 나를 위해 잘 시작하고 잘 마무리 짓는 일. 그 덕분에 몸과 마음은 절로 정돈되었던 일 월 어느 날의 오후 시간.
계절의 속도에 발맞추어 가고 싶은 새해 다짐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 다짐을 도와준 선희선생님 고마워요. 선생님이 챙겨준 마음 덕분에 제가 힘 있게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어쩌면 그 귤 박스들을 주문하기까지의 모든 순간들이 저를 응원해 준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잘 살고 있다' 내 귀에 들릴만큼 말해주며 매일 귤을 까먹다 보면 어느새 밤이 조금씩 짧아져, 겨울의 끝을 바라보고 있겠죠. 빠르게 흐르는 삶에 아쉬운 마음을 내놓기 보다는요. 오늘, '지금 이 순간'을 진심으로 지내는 우리가 되기를 바라며 오늘의 글을 줄입니다.
[제주삶 참고 노트]
제주에서는 귤의 나라 '효돈국'이라 부르기도 해요. 햇빛이 참 따사로운 서귀포 효돈동. 귤이 새콤 달콤하게 잘 자라는 동네라서요.